[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헌트’,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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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헌트’,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감이 된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8.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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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헌트'는 선입견을 깨는 영화다. 우선 신인 감독이 그것도 배우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니까 엉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면 깨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미남 배우가 주인공이니 얼굴만 내세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깨져 버릴 것이다.

신인 감독 이정재가 제작과 감독을 맡고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헌트'는 두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만드는 영화다. 지난 18일 기준 9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헌트'는 이번 주말 300만 관객을 바라본다. 

첩보와 스릴러, 그리고 액션이 잘 버무려진 '헌트'

영화는 5공화국 시절인 1983년을 배경으로 한다.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 분)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 분)가 조직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 ‘동림’을 찾기 위해 벌이는 암투가 주요 이야기다.

박평호는 안기부 경력 13년 차에 차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조직에서 인정받은 인물이고, 김정도는 안기부에 합류한 지 4개월 된, 1980년 광주에 주둔했던 7공수여단 장교 출신이다.

'헌트'는 전형적 스파이물 영화다.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80년대를 돌아보면 왠지 영화처럼 서로에게 간첩과 무장 군인들을 보내는 것은 물론 상대측 주요 인사를 포섭했을 것 같다. 

영화는 조직을 배신한 스파이 ‘동림’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정체가 밝혀진 후에는 그가 왜 스파이가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배경과 설정이 '헌트'를 스릴러물로도 만든다. 파편처럼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뭔가 밝혀지려 하면 사건이 터져 이야기에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스파이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던 순간은 관객들이 낮은 탄식을 뱉을 만큼 큰 반전을 준다. 여러 복선이 한꺼번에 무너지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진짜 변절자인지 알 수 없게 하는 '헌트'는 관객들을 긴장의 극치로 몰고 간다. 그 긴장을 풀어주는 처방이 곳곳에 배치한 액션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터 벌어지는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 장면은 이 영화가 본격 액션물이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두 주인공이 맞부딪치는 계단 격투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들이 왜 성난 늑대처럼 서로를 물어뜯을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단지 멋지고 격렬한 액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고조되어 가던 두 인물의 서사와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이처럼 시작 지점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휘몰아친다. 마치 급류타기처럼. 그렇다고 숨 가쁘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덕분에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하게 이끈다. 신인 감독 이정재의 연출력이 빛나는 순간들이다.

어디에서 본듯한 사건과 캐릭터가 주는 몰입감

영화 '헌트'를 보다 보면 과거 여러 순간순간이 떠오른다. 우선 5공화국을 연상케 하는 배경이 그렇다. 

특히 김정도 차장이 7공수여단 소속 군인으로 광주에 있었던 회상 장면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광주 진압군 김정도 소령은 다른 군인들과 달리 민간인 주검들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국민을 학살한 정권에 항거하는 이들의 모습도 그렸다. 교정에서 데모하다 진압당하는 대학생부터 남산으로 불리던 안기부에 끌려가 속칭 ‘기술자’의 고문을 받은 후 간첩으로 조작당하는 이름 없는 시민까지.

이런 조작은 안기부 직원들에게는 흔한 일상이었을까.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를 스파이 ‘동림’으로 지목하고는 정황과 증거를 짜 맞춘다. 목적 달성을 위해 고문까지 자행하며 허위자백을 유도하기도. 70년대와 80년대 국가가 자행했던 각종 조작 사건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헌트'의 이런 배경 설정은 실제 역사를 떠올리게 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재해석한 장면들도 현실감을 더했다.

그중에서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중좌(황정민 분) 에피소드는 1983년에 실제로 발생한 이웅평의 미그기 귀순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남한 전역에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과 함께 사이렌이 울렸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도 그 소리를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남한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 총 책임자 ‘천보산’은 이야기에 큰 전환을 이끄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나이 지긋한 여자가 등장해 반전을 준다. 이 장면은 80년대에 암약한 ‘할머니 남파간첩 이선실’을 떠올리게 한다.

‘아웅산 테러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만약 그때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사건 재해석과 영화적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화 '헌트' 스틸컷
영화 '헌트' 스틸컷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사는 멍청이?

좋은 영화는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관객이 많이 들거나,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거나, 혹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무엇보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면 좋은 영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헌트'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필자 관점에서 본다면, '헌트'는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하게 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고, 지난 역사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헌트'의 두 주인공은 영화 속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잘못된 역사를 되돌리고자 각자의 방법으로 거대한 힘과 맞섰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내게 영화는 사실처럼 읽혔고, 지난 역사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중에 나온 어느 대사가, 정확한 문장으로는 아니지만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뇌리에 남았다.

“독재자보다 더 나쁜 놈이 독재자의 하수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살면 멍청이다.” 

영화 '헌트'는 관객들에게 지난 세월 ‘멍청이’로 살았어도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외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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