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앞둔 무력감의 산물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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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앞둔 무력감의 산물 『남한산성』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30 16: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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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와있는데 언어와 관념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의 상황 그려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2007년, 학고재)이 출간된지도 10년이 됐다. 책이 100쇄를 돌파해 60만부나 찍혔고, 영화로도 나왔다.

역사에 관심이 깊고 역사적 사실을 후벼파는 사람들에게 김훈의 『남한산성』은 말장난을 하는 글로 보인다. 말꼬리를 길게 늘여 말로서 말을 이어간다. 전쟁이 터지게 된 국제적 상황이나 국내 정치적 여건에 대한 설명은 뭍혀 있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서날쇠란 대장장이, 나루라는 어린 여자이아, 뱃사공의 얘기를 통해 전쟁 중 민중들의 고초를 서술했다.

하지만 임금(인조)와 사대부들의 얘기로 넘어가면 허망한 인간들, 무기력한 인간들로 묘사된다. 김훈 스스로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다루는 시각이 무기력하다. 말꼬리를 잡고 길이 아닌 길을 제시하는 소설에 불과하다. 이런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김훈의 소설가로서의 명망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기력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숱하게 전쟁을 한 민족, 가깝게는 동족상잔의 6·26 전란을 겪은 민족으로, 호전적인 북한과 상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무기력, 무감각, 역사의 희화화가 『남한산성』을 통해 드러난다.

 

▲ 소설 『남한산성』의 책표지 /촬영

 

김훈은 6월 7일 『남한산성』 100쇄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언어와 관념의 문제인데 이것은 현대까지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못지 않은 관념에 빠져 있습니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국가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북한은 강한 무력을 가진 군사적, 정치적 실체입니다.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대하는 것 같은 몽롱하고 무지한 관념에 빠진 질문입니다."

 

그 스스로도 ‘남한산성’의 시대에 지도자들이 빠져 있던 언어의 관념에 치중했음을 인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얘기한다. 기자회견을 하던 시점이 대선 직후였으므로,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던 주적 논쟁을 소설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 북한의 핵도발이 국제적 비난을 받는 시점에 우리 지도자들의 논쟁, 즉 북한과의 대화론, 전쟁 반대론 등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김훈은 소설 출간후 호남에서 귀경하는 길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열차에서 만나 『남한산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작가에게 각각 주화파와 척화파를 대표하는 최명길과 김상헌 가운데 어느 편이냐고 물었다.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왜 최명길을 긍정했을까. 김훈은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이 주화파 최명길에 대해서 그토록 긍정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타협할 수 없는 이념의 지향성과 당면한 현실의 절벽 사이에 몸을 갈면서 인고의 세월을 버티어내며 길을 열어간 그분의 생애를 나는 생각했다"고 했다.

그럴까. 김대중은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북한과의 일전을 불사한다는 박정희 독재에 탄압을 받았다. 그는 대북 유화론자이자, 대화론자였다.

 

▲ 김훈 /책표지 날개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소설가다. 기자로 활동하다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는 기자의 이력을 살려 충분한 취재를 통해 팩트를 찾고 거기에 상상력의 나래를 덧붙였다.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뒤늦게 소설 활동을 했지만,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의 유명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친명 사대부들이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시기였다. 대륙에는 여진족이 발흥해 청(淸)이라고 국호를 바꾸며 황제국을 자처했다. 조선은 그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깔봤다.

후대의 사람이나, 후대의 역사가들은 정답을 알고 나서 “거 봐라”고 평가하기 십상이다. 인조 즉위 당시로선 명(明)나라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여진족은 변방의 오랑캐였을 뿐이다.

인조의 그 주변의 조정은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한 것이다. 다만 명나라가 이자성 등의 반란으로 급격하게 쇠약해질 줄 몰랐고, 여진이 그 틈을 타고 중원을 침공할 것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조선의 잘못이었다.

소설 『남한산성』이 배경으로 한 병자호란의 팩트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소설가는 그 배경을 서술하려 한 것이 아니라, 돌구덩이(산성)에 처박히면서도 지도자란 것들이 사대라는 명분과 교린(항복)이라는 현실을 놓고 싸우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진 상황을 소설화했다. 그 상황을 소설로 그려내면서 김훈은 너무나 무력감에 빠진 글체로 글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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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민 2017-12-20 23:33:50
이병헌의 연기가 살렸다. 지적한 내용들 모두 공감이 가지만 무력감 관념의 세계 작가의 너저분한 말꼬리 물기. 북한이 주적인가 아닌가 애매모호 상황에 이르기 까지 맞는 말이다. 문학이 가진 한계가 이런걸까? 김대중대통령은 최명길 옹호로 또렷한데 김훈은 둘다 아닌 흐리멍덩이다. 허구의 세계로 발옮긴 기자이기 때문일까? 팩트를 잡고 허구화 했는데 팩션인지 사대부 의 무기력만 ㄱ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