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파산⑬·끝…LTCM 구제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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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파산⑬·끝…LTCM 구제금융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26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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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과 뉴욕 연준, 팽팽한 긴장…집단 구제 결정

 

(9월 23일)

아침 10시 월가 은행가들이 또다시 뉴욕 연준 사무실에 모였다. 이날 회의에는 영국에서 급히 돌아온 뉴욕 연준의 윌리엄 맥도너 총재가 주재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어제 못한 얘기들을 오늘은 어떻게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는 큰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가 연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워런 버핏이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컨소시엄의 한 멤버였던 골드만 삭스의 코자인 회장은 회의가 열리기전에 맥도너 총재에게 버핏의 LTCM 인수 제의 소식을 전달했다.

코자인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뉴욕 연준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참여, 연준과 월가 은행들의 동향을 점검하는 한편 버핏을 통해 실리를 챙기려고 했다. 골드만 삭스의 양다리 걸치기를 나중에 확인한후 컨소시엄에 참여한 다른 월가 은행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살벌한 세계에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의리와 도덕성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당시 골드만 삭스의 양면성을 이렇게 논평했다.

“골드만 삭스가 두 제의에 동시에 개입한 것은 월가 회사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제금융에 참여한 은행들은 골드만의 이중 역할에 눈을 부릅뜨며 불쾌감을 보였다.”

 

연준으로선 버핏이 LTCM을 사주면 좋다. 중앙은행이 나서서 은행들을 독려해 구제금융을 주었다는 비난을 면할수 있기 때문이다. 맥도너 총재는 즉시 버핏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LTCM 인수 제의가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맥도너는 LTCM의 메리웨더가 버핏의 제의를 받아들일지 의문을 가졌다.

 

그 시각 버핏은 소프트웨어 업계의 황태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과 함께 알래스카의 해안을 여행 중이었다. 버핏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큰 거래가 있는데 빙하가 깎아내린 피요르드 협곡을 즐기며 안이하게 보낼 때가 아니었다.

미국동부 시간으로 11시 40분, 알래스카 시간으로 새벽 6시 40분, 버핏은 메리웨더에게 팩스 한장을 보내 LTCM인수에 관해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주식 전체를 2억5,000만 달러에 매입하겠음.

▲주식 매입자금 2억5,000만 달러를 포함, 버크셔 해서웨이 30억 달러, AIG 7억 달러, 골드만 삭스 3억 달러등 세회사가 모두 40억 달러를 투자하겠음.

▲12시 30분까지 대답하지 않을 경우 제의는 없었던 일이 될 것임.

 

시간은 50분밖에 없었다. 메리웨더도 버핏만큼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팩스를 받자마자 그 내용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임을 깨달았다. 버핏이 주도하는 그룹이 LTCM의 주식 100%를 인수하게 되면 버핏은 최대주주가 된다. 골드만 삭스가 자신과 파트너들을 살려둘리 없다.

대신에 연준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을 보자. 메리웨더는 월가 컨소시엄이 지분 90%를 인수할 것이라는 제의를 연준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전달받았다. 16개 은행이 90%의 지분을 가지면 개별은행당 지분은 5~6%에 불과하다. 메리웨더와 파트너들은 최대주주로서 지분 10%를 행사할수 있다. 일단 구제금융을 받은후 몇 달 지나 시장이 호전되면 빚을 갚고 경영권을 다시 찾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

메리웨더는 50분이라는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버핏에게 답장을 보냈다. 대답은 ‘노(NO)’였다. 혼자서 펀드 매각을 결정할수 없고, 전체 파트너의 동의를 얻으려면 50분으론 부족하다는 이유를 둘러댔다. 버핏은 마지막 코너에서 50분간의 짧은 시간을 주며, 메리웨더의 숨통을 죄려고 머리를 썼지만, 메리웨더는 이를 역이용한 것이다.

메리웨더는 뉴욕 연준의 전화를 받았다. 역시 안된다고 대답했다.

“변호사들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을 모아서 회사 매각을 결정해야 하는데 시간 없습니다”

채무자는 파산 직전에 어떻게 버티기에 성공하느냐가 중요하다. 회사가 벼랑에 몰려 있지만, 메리웨더는 그 자체를 큰 투기로 삼아 베팅을 걸었다. 버핏보다는 연준이 유리하다는 것이 메리웨더의 순간적 판단이었다. 버핏의 제안은 알래스카 협곡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뉴욕 연준 사무실. 버핏의 제안이 무산되자 월가 은행들은 하오 1시 회의를 재개했다. 긴장이 흘렀다. 역대 뉴욕 연준 총재들의 사진이 굽어보고 있었다. 월가 뱅커들은 웃옷도 벗지 않았다.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사람, 종이에 낙서를 하는 사람 등등...

다섯 시간 동안 중앙은행 간부와 은행가들은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헤지펀드 하나가 무너진다고 금융시장이 정말로 붕괴될 것인가. 금융시장이 붕괴되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게 아닌가. 점차 의견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졌다.

이게 미국식이다. 한국에선 정부나 중앙은행이 지시를 하면 시중은행이 아무소리도 않하고 따라간다. 하지만 미국에선 결국 따라가지만 논쟁을 벌여 한쪽 방향으로 좁혀간다. 한국에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의 강압에 의해 따라갔다고 핑계를 대지만, 미국에선 모두가 책임을 진다.

이젠 은행별로 얼마씩 내느냐 하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만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LTCM의 결제은행인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대표 제임스 케인(James Cayne)이 돈을 낼수 없다며 벌떡 일어섰다.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다른 은행들이 웅성거렸다. 결제 은행이 무언가 다른 사실을 알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메릴린치의 데이빗 코만스키(David Komansky) 회장이 케인을 따로 불러내 다독거렸다. 케인은 결제은행으로 다른 은행보다 많은 손해를 냈는데, 똑같은 돈을 내는게 화가났던 것이지, 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코만스키는 그러면 됐다며 회의장으로 데리고 갔다. 케인도 따라 들어갔다.

회의가 속개됐다. 코만스키는 케인이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며 다른 은행을 설득했다.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리처드 풀드(Richard Fuld) 회장은 회사가 어려워 2억5,000만 달러는 정말로 어렵다고 통사정을 했다. 리먼 브러더스도 당시 파산 위기에 있다고 루머가 떠돌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다른 은행들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면 돈이 모자랐다. 큰 원칙이 마련됐으므로 절충점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참석자들은 큰 회사가 3억 달러씩 내고 작은 회사는 사정에 따라 2억 달러를 내는 선에서 결론을 냈다.

하오 6시. 월가 16개 은행은 빅딜을 마무리했다. 구제금융 총액은 36억5,000만 달러. LTCM의 지분을 90%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메리웨더는 버핏의 제안보다 3억5,000만 달러가 모자라는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남은 10%의 지분을 이용해 회장과 펀드매니저 자리를 보전했다.

 

▲ 2001년 9·11 테러 이전의 뉴욕 맨해튼 남단 전경 /조병수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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