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종위 위의 산책자', 필사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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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종위 위의 산책자', 필사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8.0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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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의 산책자' 표지. 사진제공=출판사 구름위의시간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잠들어 있던 내 존재를 깨워 준 것이 필사였다." -양철주 作 '종이 위의 산책자' 中 37페이지 발췌

한때 시인을 꿈꾸고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것이 이력의 전부인 양철주 작가는 최신작 '종위 위의 산책자'(구름의시간)를 통해 필사의 즐거움을 설파한다. 

책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필사에 도전장을 내밀어 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필사에 좌절하곤 한다. 예쁘지 않은 글씨체가 자꾸 눈에 거슬리고, 어딘지 불편한 자세와 커져만 가는 통증 그리고 필사에 신경쓰다보니 자꾸만 끊기는 독서 흐름 등 필사에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헤매는 이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굳이 베껴 쓸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마음 한 켠에서 밀려 올라온다. 대부분 이 지점에서 필사를 포기한다.

저자 역시 같은 진단이다. "이 바쁜 시대, 시간이 돈인 시대에 연필을 쥐고 필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가롭고, 구태의연하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라고. 

그럼에도 저자는 필사를 멈추지 않는다. 많은 시인과 작가의 문장을 필사하며 마음에 새겼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권까지 필사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년 동안 릴케의 '말테의 수기', 카뮈의 '결혼·여름',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헤르만 헤세의 '헤르만 헤세 시집',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몽테뉴의 '몽테뉴 인생 에세이',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섬', '지중해의 영감'과 그밖에도 수많은 시를 필사했다.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택한 양철주 작가는 왜 필사를 계속하는 걸까. 그의 고백은 이랬다. "잠들어 있던 자신을 깨워준 것이 필사였다." 그러면서 '누군가 저자에게 그 시간에 책을 더 읽거나 자기 글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겠노라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었고 문학을 향한 사랑이 필사를 넘어서 나 자신 만의 문장을 쓰도록 했다"고 말이다. 

저자는 필사의 수행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기 글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문장을 정성껏 베껴 쓰는 동안 글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깨닫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가게 됐고, 그렇게 풍부해진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단순한 베계 쓰기를 넘어 '나의 글'을 쓰는 것. 그것이 팔사의 궁극적인 종착점이자 즐거움이 아닐까라고.

문학청년의 꿈이 좌절됐을 때에도, 책 만드는 자리에서 삶이 고단했을 때에도, 오로지 독자로 남아 필사적으로 필사를 하게 됐을 때에도, 양철주 작가는 자신의 손과 눈과 시간을 통과해 간 문장들이 그저 의미 없고 허무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으리라 믿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의 진솔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문장은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양철주 작가는 자신의 글 '종이 위의 산책자'와 함께 산책을 떠나자고 독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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