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아니 매뉴얼 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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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아니 매뉴얼 대로 살아라
  • 김이나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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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매뉴얼이 있어야…멋대로 하지 말라

최근에 “청년경찰”이라는 영화를 봤다. 예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투 캅스”의 21세기 주니어 버전인 셈이다. 단지 주인공은 형사가 아니고 경찰대생이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자신들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만든 홍보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어린 대학생들의 활약은 정의롭고 용맹스럽고 한편으로는 코믹스럽다. 그들은 우연치 않게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직업으로서의 경찰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들의 신념은 더욱 공고해진다는 스토리다.

 

▲ 영화 '청년경찰' /네이버 영화

영화 중간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두 경찰대생은 가출 소녀들의 납치 사건을 목격하면서 이를 파출소 지구대에 신고를 하러 가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신고자의 신상을 먼저 밝히라는 지구대 소속 순경의 냉정하고 매몰찬 반응이다.

조금 전 눈 앞에서 사건을 목도했다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그 순경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수칙대로 신고자의 신원을 먼저 파악한 후에 그 신고 내용을 접수해야 한다고 되풀이 할 뿐이다.

말하자면 매뉴얼 대로 그 순경은 진행한 것이다. 물론 여성 관객들이 보기엔 그런 절차가 잘 생긴(?) 두 경찰대생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테지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건국 이래 일어난 사건·사고들이—특히 인재(人災)인 경우—처음부터 매뉴얼과는 다르게 시공되었거나 사용되었거나 혹은 관리되었음을 큰 희생을 댓가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공권력의 행사는 개개인의 성격, 기질 혹은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영역에 사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매뉴얼이고 그런 매뉴얼대로 집행되는 권력이나 공적인 업무 등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들이다.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미사 역시 매뉴얼에 따르는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제들은 같은 전례에 따라 미사를 주관한다. 단지 언어만 다를 뿐이다. 그 전례 매뉴얼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그야말로 코어(핵심)는 변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런 탄탄한 매뉴얼 덕분에 어느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더라도 문제없이 진행되는 장점을 지녔다. 반면 사제의 개인적 능력이 크게 두드러지 못한다는 단점을 지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흔히들 미국은 시스템의 나라라고 한다. 미국만 유일하게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런 나라의 대표로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멜팅 팟(melting pot). 즉 여러 인종,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 우리나라 국민들 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공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강력한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개개인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 하던 일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더라도(심지어 대통령이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인종 차별과 성차별도 없다. 인종 차별, 성차별에 해당하는 말이나 행동이 발견되면 매뉴얼에 따라 곧바로 법적인 처벌을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는 그 어느 나라 보다 무한함을 자랑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현직 대통령을 패러디하고 비판하는 나라가 아닌가!)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매뉴얼대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나 큰 상처를 받은 사람.

그 유명한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 사무장.

스스로 만든 매뉴얼을 무시한 오너 일가에 의해 그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매뉴얼을 무시하고 갑질했던 오너.

부디 앞으로는 “내 멋대로”가 아닌 매뉴얼대로만 살길 바란다.

 

 

김이나씨 ▲몽고식품 마케팅 총괄 고문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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