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런던 입성(入城), 34년전의 첫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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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런던 입성(入城), 34년전의 첫 출근길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9.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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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사람에게 가능성이···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다

 

[조병수 프리랜서] 한국상업은행 런던지점에서의 첫 해외근무는 출장이나 연수 등 해외여행을 갔다가 오면 인사부에 여권을 반납하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해외파견연수시험 합격자에게 수개월간 해외 금융기관들에 파견연수기회를 부여한 후 해외지점에서 근무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은행이 1980년대 초 연속되는 대형금융사건으로 힘든 시기를 겪던 터라, 파견연수시험은 치렀으나 해외연수는 중단되어버렸다.

그런 상태로 1983년의 대부분을 명성(明星)사건의 회오리와 크고 작은 금융사고들에 휩싸여 지내다가, 그 해 10월 하순에는 급기야 주요경영진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임기 중에 물러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은행이 워낙 큰 사건들에 휘말려서 급박하게 돌아가고 경영진들이 사임하는 와중이라, 개인적인 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어진 일에만 매달리고 있던 중에 느닷없이 발령이 났다.

그렇게 해서 떠나게 된 부임(赴任)길에, 20여 시간을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런던의 히드루(Heathrow)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젖먹이 딸과 아내를 대동하고 처음 타본 비행기에서, 기체고장으로 인한 불시착과 이에 따른 환승(transfer) 연결 등 예상치도 못했던 경우를 두루 겪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이 “그저 부딪치면 통한다”는 생존의 법칙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고 서고 만나는 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이후로 수십 년이 흘러서야 겨우 깨우치게 된다.

그렇게 장시간의 여행 끝에 기대와 긴장감을 잔뜩 안고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입국장을 나서니, 총무책임자인 K선배댁에서 우리 가족을 위한 저녁식사준비를 해두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 깔린 꾸불꾸불한 도로와 로터리(roundabout), 낮은 보도(步道) 턱이 인상적이던 런던근교 길을 한참 달려서 그 댁에 도착하자 말자, 염치 불구하고 전혀 예상할 수도 없었을 부탁을 드리고 말았다.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댁에서 샤워 좀 하면 안될까요?”

꼬박 하루 동안 비행기안에 갇혀 있으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겠다, 긴장과 초조함으로 그 긴 시간 동안 눈 한번 못 붙였으니, 우선 몸에 물이라도 좀 적셔야만 살 것 같았다.

엉뚱한 요청에도 웃으면서 허락해 준데 감사하며 샤워를 하는 동안, 몸에 흐르는 그 물줄기가 그렇게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마치 무사히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 /사진=조병수

 

그 댁에서 정성스레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치자, 미리 구해둔 주택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런던외곽 남서쪽의 뉴몰든(New Malden)에 있는 그 집은, 앞 쪽으로 베벌리 공원(Beverley Park)을 내려다 보는 연립주택(semi-detached house)이었다.

옆집과 벽이 붙어있는 이층으로 된 건물인데, 현관으로 들어서면 좁은 통로 옆으로 거실이 있고. 안쪽으로 식당과 주방이 있으며, 2층에 침실과 화장실 등이 있는 구조였다. 건물 뒤로는 아담한 잔디밭이 있고, 그와 대칭되게 다른 집들이 포진해 있는 전형적인 영국의 주택이었다.

그 선배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열쇠꾸러미와 재물조사 목록을 건네주면서, “그릇이나 가구들의 개수와 상태를 잘 챙겨서, 나갈 때 피해를 업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임차주택을 인수하면서 재물조사까지 마치고 건네준 그 명세표에는 그릇에다가 담요, 숟가락 숫자까지 그 상태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내일 아침 출근 때 데리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분 내외가 떠나자, 낯선 영국주택에서 기대와 설렘 속에서 짐을 풀었다. 그렇게 해서 난생 처음인 해외로의 긴 여정(旅程)은 막은 내리고, 런던에서의 첫날 밤이 시작되었다.

창 밖으로 인적 없는 도로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밤안개와 불그스레한 가로등불이 이방인의 마음을 적셔왔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들었으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였다.

 

날이 밝자 첫 출근길을 도와주려고 다시 찾아준 K선배와 함께. 워털루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칸마다 좌석 2개가 마주보고 있고 문이 따로 있는데, 그 문들의 안쪽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영국신사들은 역무원이나 짐꾼들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차 내에서 그대로 기다렸던 과거의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창틀을 내리고 바깥에만 있는 손잡이를 돌려서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들이 신기했다.

그리고 기차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서류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고, 조용히 앉아서 신문을 펼쳐 보거나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늘 안개와 보슬비 같은 비가 자주 오는 런던의 기후 탓이겠지만, “대부분의 가방에는 우산 하나와 읽을거리 등을 넣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 워털루 역의 밤 풍경 /사진=조병수

 

그런 생경한 모습들에 어리둥절해하며 워털루 역에서 뱅크(Bank)역으로 연결되는 지하철(The Waterloo & City Line)에 들어서니, 온통 영어로 된 광고판들과 네모난 가죽가방을 든 외국인(?)들의 조용한 분위기에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낯선 영국 땅에서 사무실로 오가는 길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한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런던지점 근무는 정말 녹녹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점철되었다고 하겠다. 매일 수작업 계산을 마친 거래를 다시 일괄처리(batch)시스템에 입력해서 정합성이 확인된 뒤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월말에는 본점에 보고할 자료의 텔렉스 천공(穿孔)과정까지 마치려면 자정을 넘기 일쑤였고, 연말에는 밤새워서 결산숫자를 뽑느라고 새해아침을 사무실에서 맞기도 했다.

그리고 넘쳐나는 일 때문에 주말에도 혼자서 사무실에 나가는 날도 많았다. 그 당시 가게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토요일 하루는 가족들과 장도 보고 잠깐씩 주변도 둘러보면서 지내고, 일요일에는 밀린 일을 처리하러 나간 것이다.

물론 그때 그렇게 배운 실무경험과 1페니(penny)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덕분에, 은행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자세와 계수관리능력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그 시절, 야식비(夜食費)나, 기차가 끊겨서 타게 되는 비싼 택시비가 마음에 걸리는 날에는, 아예 저녁도 거른 채 일에 매달렸다. 그럴 때는 워털루역에서 마즈(Mars)라는 초콜릿 바를 사서 그 고소한 맛으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니 낮에는 사무실에서 커피나 들이키고, 늦은 저녁 빈속에 초콜릿 같은 자극성 있는 것을 먹고, 집에서는 와이셔츠나 갈아입고 나올 정도로 계속되는 야근 속에서, 일 배우랴 영어 따라잡으랴 온통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했으니 속이 성할 리가 없었다. 결국 십이지궤양까지 얻으며 고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해외근무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이상향(理想鄕)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의 강도나 긴장의 정도가 국내와는 또 다른 노력과 대가가 따랐던 것이다.

 

20세기 후반기 한국경제발전의 시기에 대우그룹 신화로 일세를 풍미했던 김우중 회장은, 『김우중과의 대화』(2014, 신장섭著)란 책에서 '미국 같은 선진국은 금융 오퍼레이션(operation) 한 번 하는 것이 웬만한 나라 경제규모보다 큰 때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금융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별로 없다. ···한국 같은 중진국에서 은행이 외국에 나간다고 경쟁력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분도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중진국의 문턱에 들어서지도 못했을 때부터, 일찌감치 그렇게 어렵다는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에 맨몸으로 부딪히며,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간 우리의 은행들과 금융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한 자락에서, 비록 눈감고 코끼리 다리 더듬듯 이나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음"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기에, 나름대로의 시간과 열정을 그렇듯 불태워 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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