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파산⑨…파생상품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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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파산⑨…파생상품의 모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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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생금융상품 활용해 떼돈 벌었지만, 러시아 위기 이후 손실 발생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존 메리웨더는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엄청나게 활용했다. 파생금융상품은 평상시엔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 환율, 이자율은 끊임없이 변동한다. 일주일 사이에 엔-달러 환율이 10% 이상 변할 때도 있다. 투자가로선 수시로 변하는 환율과 이자율에 대한 방어책을 써야 한다. 그 수단이 파생금융상품이다.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이자율 스왑(interest rate swap)을 보자.

LTCM이 브라질의 브래디 본드에 1억 달러를 투자할 경우 A라는 은행에서 1억 달러를 변동금리 조건부로 차입한다. 차입금 1억 달러가 이자율 변동에 의한 손실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B라는 은행과 이자율 스왑 계약을 체결한다. LTCM과 B은행은 일정 이율의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사이의 차액을 서로 교환하기로 약정한다. 즉 1억 달러를 3년 동안 변동금리 조건으로 빌려줄 때 발생하는 이자와 같은 기간동안 고정금리로 할 때 이자의 차액이 서로의 지급액이다. 변동금리에서 이자가 더 많이 나오면 LTCM이 B은행으로부터 고정금리와의 차액을 지급받고, 고정금리에서 이자가 더 많이 나오면 LTCM이 차액을 물게 된다.

이 거래는 실질적으로 이자액 차이만 오감으로써 변동금리에 대한 위험을 헤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장부상으로는 LTCM이 B은행에 변동금리 조건으로 1억 달러를 빌려주고, 다시 B은행으로부터 고정금리로 빌려오는 형식을 취한다.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헤지시킨 1억 달러를 C브로커 회사에 지급해, 브래디 본드를 산다.

LTCM은 은행에서 1억 달러를 빌려 파생금융상품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A, B, C의 금융기관 세곳을 거치면서 대출 2억 달러, 투자 2억 달러등 총 4억 달러의 돈을 회전시켰다. 실제 거래에서 이 헤지펀드는 여러 은행의 손을 거치며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1억 달러가 때론 수십억 달러의 거래로 부풀어 났다.

LTCM은 파산직전에 모두 1조2,500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돈이 복잡하게 거래됐기 때문이다. 국제 스왑 및 파생금융상품 협회(ISDA)에 따르면 LTCM이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통해 빌린 회전한 금액 1조여 달러는 전체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30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국제금융시장에 나와있는 파생금융상품의 종류가 수천 가지에 이른다. 교과서에 나오는 상품만 해도 통화 스왑, 이자율 스왑, 통화 선물, 통화 옵션, 이자율 선물, 이자율 옵션, 선도금리계약등 다양하다.

파생금융상품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백화점에 진열된 가전제품처럼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상품은 대량 제작되어 시장에서 거래되지만, 요트나 호화 주택과 같은 경우는 시장을 통지 않고 개인간의 일대일 거래에 의해 매매된다. LTCM은 시장에서 통용되는 정형화된 파생금융상품을 사용하지 않고, 특별 조건이 붙은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거래했다.

LTCM은 쉽게 돈을 융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생상품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신속하게 작동하는 기계였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붕괴되면서 파생상품 사장도 왜곡이 생기기 시작했다. 잘 돌던 파생상품의 돈 거래가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거래를 피한 것도 이유가 된다. 1년후 1달러=2,500루피아(인도네시아 통화)를 전제로 헤지시킨 통화 옵션이 만기가 도래했을 때 1달러=1만이 됐을 때 은행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금융시장이 혼조를 보이면 은행은 손해보는 상품을 피하게 되고,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ISDA에 따르면 아시아 위기 발생한 1997년 하반기의 파생상품 시장은 97년 상반기에 비해 40% 줄어들었다. 98년 상반기들어 파생상품 시장은 다소 회복됐으나 러시아 모라토리엄이 발생한 98년 3.4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25%가량 줄어들었다.

LTCM이 거래한 특별 파생상품 시장의 위축은 더 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시장의 경우 거래물량이 풍부한 IBM이나 인텔과 같은 불루칩의 경우 주당 50달러의 주식 1만주를 거래하더라도 주가가 1센트도 오르고 내리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량의 물량이 거래되므로 사고 파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중소형 주식을 1만주 팔 경우 50달러짜리 주식이 25달러로 폭락할 경우가 흔하다. LTCM은 남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했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위축이 발생할 때 돈이 거의 돌지 않았다. LTCM이 물량을 부어내면 곧바로 가격 폭락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사태를 맞아 LTCM은 파생상품 거래를 풀고 돈을 회수하려했으나, 헐값에도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던 것이다.

 

롱텀 캐피털은 엄청나게 돈을 빌렸다. 채권은행들이 메리웨더와 노벨 수상자들이 운영하는 그룹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돈을 대주었다. LTCM은 자본금의 25배나 차입, 이 자금으로 흥청망청 투자했다. 미국 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때 선급금 지불을 요구하는데, LTCM에는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헤지펀드는 거의 남의 돈으로 투자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월가의 유명 투자회사보다는 차입금 비율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지의 분석에 따르면 LTCM은 파산 직전에 자산 1달러당 25.59 달러의 돈을 빌렸다. 그런데, 레만 브러더스의 경우 35.20 달러, 메릴린치 31.90 달러, 도널드슨, 루프킨 & 젠릿(DLJ)은 29.00 달러로 LTCM보다 높은 차입금 비율을 유지했다.

 

러시아의 북극곰이 월가를 짓밟고 다닌지 한달 후인 9월 LTCM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파산직전까지 몰리게 됐다. 9월 20일 뉴욕 연준 관리들이 그린위치의 LTCM 본사에 닥쳐 장부를 들여다보았을 때 러시아가 아니라 LTCM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월가가 쑥대밭이 될 것처럼 보였다.

9월 셋째주 LTCM의 파산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뉴욕 연준이 개입해 월가 은행들로 하여금 자금을 지원하도록 종용했다.

맥도너 뉴욕 연준 총재는 의회 증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융시장이 신경과민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만일 LTCM이 붕괴하면 시장이 며칠동안 시장의 기능이 정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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