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청 노동자의 절규..."진짜 '사장'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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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청 노동자의 절규..."진짜 '사장'을 찾습니다"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7.21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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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불법의 기준 '실질적 지배력'
불안정한 노동자 지위, 사회갈등 증폭
노조법·근로기준법 상 '원청 교섭' 명문화 주장도
지난해 6월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관계자들이 원청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거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노동력을 제공하고 경제적 보상을 얻는 '노동자'와 타인의 노동력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사장' 사이 연결 관계를 흔히 '고용'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1명의 노동자와 1명의 사장이 고용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인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예외가 원칙을 깼다고 해야할까.

최근 '진짜 사장 찾기' 열기가 뜨겁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CJ대한통운 택배 과로사로 촉발된 노동쟁의,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파업 등은 "진짜 사장 나와라"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간접고용이다. 이런 간접고용에서는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도, 어느 날 갑자기 해고돼도 따질 곳이 없다.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사장에게 따지면 "원청이 계약을 해지했다"거나 "원청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원청 탓을 한다.

이 말을 듣고 원청 사장에게 따지면 "나는 네 사장이 아니"라며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혼자 말하니 들어주지 않는구나 싶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요구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노동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장은 없다. 그래서 '진짜 사장'을 찾겠다며 노동자는 쟁의에 돌입한다. 단식도 하고 점거농성도 하고 원청 앞에서 노숙농성도 한다. 그러다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간접고용이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정규직과 달리 해고가 쉽고 임금을 적게 줘도 돼서다. 그런데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는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조건이 까다롭다. 그래서 법적 제한이 없는 도급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도급을 주면 업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정규직 직원처럼 일을 시키고 싶지만 정규직으로 고용하긴 싫다. 그래서 ‘위장도급’이 생깁니다. 도급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파견처럼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지시한다.

대법원 판례와 최근 법원의 판결 추세를 보면 직접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하청노동자가 원청의 정규직이라고 보고 있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라고 보는 셈이다. 핵심은 원청의 지휘·명령 여부다. 원청의 개입이 있으면 파견이다. 파견법에 맞게 파견했으면 합법파견, 파견법을 어기고 파견했으면 불법파견이 된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소속 조합원이 19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소속 조합원이 19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

노동계는 '진짜 사장'이 하청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야 지금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금속노조 법률원,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7개 단체 노동법률가는 20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하도급계약을 맺은 업체의 노동자(하청 노동자)라도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정한다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에 대해 '택배기사 노조와 단체교섭하라'고 판정하고 지난 3월 현대제철에 '산업안전보건감독에 한해 하청 노동자 쪽 노조와 단체교섭하라'고 판단한 것도 이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부당 노동행위'로 받아들여져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동학계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본다"면서 "현재 법으로도 집행할 수 있지만 사용자 측은 모든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져가려 하며 시간을 끈다"고 비판했다.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봐야한다는 주장은 2010년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다. 당시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의 원고용주인 하청업체와 유사한 정도의 지배력을 갖거나 행사하면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행위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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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엇갈린다. 노동계는 원청사의 직접 고용을 주장한다. 사실상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취지다. 반면 경영계는 파견 허용 업종에 제조업을 포함하자고 맞선다. 제조업에서 비정규직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겠다는 포석이다. 두 방안 모두 노사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오기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권두섭 변호사는 법 개정을 통해 원청 책임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2010년 현대중공업 판례가 있으니 노조법 상 사용자 정의 조항에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라는 문구를 넣으면 된다"면서 "글로기준법에도 원청이 하청업체와 연대해 사용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면 명쾌히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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