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전기차 정책 흔들…보조금 축소 및 중단 속출
전기차 친환경성 논란 재점화…회의론 확산
불과 40년전 노트북은 공상과학 영화의 소품 정도였다. 20년전 스마트폰은 먼 미래의 상징일 뿐이었다. 이제 인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버금가는 이동 수단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10년 후 늦어도 20년후 세상을 또 한번 바꿔 놓을 ‘모빌리티’. 아직도 모빌리티에 대한 개념은 모호하다. 모빌리티는 인류가 육·해·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 자동차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모빌리티를 준비하는 글로벌 자동차·IT업계 동향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전기차 가격이 심상치 않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 등 영향으로 줄줄이 오르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1위 테슬라는 올해에만 세 차례 가격을 올렸다. 이어 GM도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전기차 아이오닉6도 이전 모델보다 높은 가격대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전기차는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뼈 있는 농담처럼 퍼지고 있다.
기술 개발 등으로 수년 내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지거나 저렴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여기에 각국은 전기차 보조금 축소를 검토하고 있으며 '탄소제로'를 목표로 전기차 도입을 서두르고 있지만 오히려 탄소배출을 조장하고 있다는 '전기차의 역설'로 전기차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전기차 가격 왜 오르나
지난달 테슬라는 미국 전기차 가격을 최대 6000달러(약 780만원) 인상했다. 통상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연식변경 때 가격을 높이는 게 일반적이나 테슬라는 아무런 변화 없이 가격만 올렸다. 테슬라는 자사의 전기차 모델Y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가격을 올해에만 네 차례 올렸다. 그 결과 현재 미국에서 모델Y SUV 가격은 올 들어 9% 상승한 6만9900달러가 됐다. 포드, 리비안, 루시드 등도 최근 몇 달 사이 자사의 전기차 가격을 인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D파워 자료를 인용해 5월 미국의 전기차 평균 판매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22% 높은 대당 5만4000달러(약 6900만원)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내연기관차 가격 상승률(14%)을 웃돌았다. 지난달 내연기관차 평균 가격은 4만4400달러였다.
미국 자동차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용 증가 때문에 전기차 가격을 올리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에 비해 두 배씩 뛰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사의 전기 픽업트럭인 GMC 허머 가격을 최근 대당 6250달러(약 800만원) 올렸다. GMC 허머의 기존 가격은 대당 8만5000~10만5000달러였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업들이 가격 상승에 부담을 덜 느끼게 된 점도 이유라는 분석이다.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달러를 넘기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적극 고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국내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전기차 ‘아이오닉6’의 공식 가격은 5000만 원 중반대로, 아이오닉5보다 500만 원 가량 높게 책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 확대도 중요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을 견디긴 어렵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이오닉6 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존 모델보다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전기차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전기차 제조 비용의 30~4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은 2026년까지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CNBC는 미국 배터리 시장조사 업체를 인용해 현재 kWh당 배터리 가격이 2023년 110달러에서 2026년에는 138달러까지 약 2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흔들리는 전기차 보급 정책
전기차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 세계의 전기차 보급 정책도 흔들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재정 지출을 통해 전기차 확산에 나서면 기술 개발 등으로 수년 내에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지거나 더 저렴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봤다.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런 변화의 촉매가 됐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변화가 주목된다. 지난 8일 EU는 의회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기 위해(핏 포 55) 내연기관차 판매금지안을 표결에 부쳤다. EU 회원국 중 45%(기권표 포함)가 전면적인 내연기관차량 판매 금지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비록 찬성표가 더 많기는 했지만 과거에 비해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한 건 감출수 없는 사실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선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영국은 이미 전기차 보조금을 폐기했으며 독일은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최대 6000유로를 지급해온 것과 달리 내년부터 4000유로, 2024년엔 3000유로로 줄여나가다 2026년에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 지난해 신차 판매 중 65%가 전기차였던 노르웨이는 최근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도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한국은 전기차 1대당 국고보조금 감소로 종전 8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지원 규모를 줄인다. 다만 전기차 관련 전체 예산은 확대해 2030년까지 친환경차 785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대비 30% 예산 삭감을 계획 중인 중국은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
반면 전기차 보조금을 늘리는 국가도 있다. 미국은 한 대당 7500달러에서 1만2500달러로 지원금을 늘려 2030년까지 친환경차 판매비중을 5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또한 최대 80만엔으로 지원금 폭을 상향 조정했으며 2035년부터 친환경차만 판매하기로 했다.
전기차의 역설
이른바 '전기차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전기차의 친환경성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전기차(EV)는 수소전기차(FC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하이브리드(HEV)와 함께 '친환경차'로 분류된다. 하지만 전기차를 '진정한 친환경차'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자동차 업계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전기차의 동력원이 무엇인지, 배터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운행단계에서 오염물질이 주로 배출되는 반면 전기차는 전기 생산단계에서 나온다. 전기차 구동을 위해 충전용 전기(수송용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가 배출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동일한 주행거리(㎞)당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및 미세먼지(PM10) 배출량을 비교하면 전기차가 온실가스는 내연기관차의 약 절반(53%), 미세먼지는 92.7% 수준을 배출하고 있다.
전기차 운행과정에선 이산화탄소가 적지만 생산 및 폐기과정에선 이산화탄소 배출이 오히려 높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기차가 49.12g, 내연기관차가 44.55g이다.
안상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전기차의 역설'이라는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으로 도로오염원(차량)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양은 감소하나 전력생산을 위해 배출되는 양은 오히려 증가한다"며 "결과적으로 전기차 보급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배출되는 미세먼지 양은 증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기차는 희귀금속 배터리 원재료, 전기 저장 문제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전기차는 전기를 저장할 순 있어도 생산은 못하기 때문에 비상시 전력공급 측면에서 수소전기차보다 불리하다. 반면 수소전기차는 10만대가 보급되면 원자력 발전소 1기 분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약 33만 가구(3kW 가정용 발전기 기준)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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