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대 경제위기 온다"···위기대응 국제기구 역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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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최대 경제위기 온다"···위기대응 국제기구 역할 한계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2.07.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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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서방 vs 중·러 구도로 주요국간 협력 붕괴"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식량부족, 에너지 수급 불안 등의 복합 위기에는 G7이나 G20도 대처 능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FutureLearn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식량부족, 에너지 수급 불안 등의 복합 위기에는 G7이나 G20도 대처 능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FutureLearn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범 지구적인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만든 국제 협력체들이 기능과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세계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등 선도국들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촉발된 197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발족했고, 1990년대 신흥국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를 위해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출범시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주요국의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촉발된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식량부족, 에너지 수급 불안 등의 복합 위기에는 G7이나 G20도 대처 능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G7·G20 만들었지만···러시아발 복합 위기에 한계 노출

1970년대 초 세계 경제를 떠받치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1차 석유파동이 터지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도국들은 새로운 경제위기에 대처할 협의체 구성을 모색했다.

1973년 미국 재무장관이던 조지 슐츠가 영국, 프랑스, 독일 재무장관에게 제안해 이른바 '도서관 그룹'이라는 4개국 재무장관 모임이 결성됐다. 이 모임이 G7의 모체다.

1975년 일본이 참여하면서 G5 재무장관 체제가 됐고,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지스카르 데스탱과 독일 재무장관 헬무트 슈미트가 이후 대통령과 총리가 되면서 G5 재무장관 회의가 자연스럽게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같은 해 11월 프랑스 랑부예에서 이탈리아까지 포함한 첫 G6 정상회의가 열렸다.이듬해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G7이 정식 출범했다.

G7은 당시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GDP의 4% 이상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들로 구성돼 1·2차 석유파동과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베트남 전쟁,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초래된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G7 출범 이후 약 20년 동안 세계 경제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가 1997∼98년 한국 등 아시아와 신흥국을 휩쓴 외환위기로 세계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새로운 국가 간 협력체 결성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1999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첫 회의를 열었다.

G20에는 G7 외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국제적 영향력이 급속히 커진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한국 등 신흥국이 다수 포함됐다.

G7이 있는데도 G20이 새로 결성된 것은 중국을 위시한 신흥 경제국들의 위상이 갈수록 커지면서 소수 선진국의 협력만으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G20 회원국의 인구를 합치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고, 이들 국가의 GDP는 전 세계의 85%를 차지한다.

이후 G20은 매년 정기적으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회의를 주도하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2008년 11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선진국과 신흥국 간 공조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상급 회의로 격상됐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제1차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래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16차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올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7차 회의가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20 회원국 간 협력이 거둔 성과 중 하나는 세계 경기침체를 가속할 수 있는 보호주의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하고 그런 합의를 효과적으로 이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가 이에 반격하면서 G20이 분열된 상황에 빠졌고 G20은 더는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체제로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G20 핵심 회원국인 중국과 인도도 사실상 러시아를 막후 지원하면서 G20이 과거와 같이 하나 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미 외교협회의 에드워드 알덴 선임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재닛 앨런 미 재무장관은 러시아의 G20 배제를 요구하며 러시아가 참석할 경우 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러시아 배제 시도는 실현될 것 같지 않다"며 "G20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면서 세계 경제를 강화한다는 생각에 동조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세계무역기구(WTO)가 만장일치 규정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 하게 되고 G7과 G20도 유효성을 잃게 되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그룹이나 조직은 없다"고 덧붙였다.

"전후 최대 경제위기 온다···국가 간 협력 붕괴가 가장 큰 문제"

과거 세계적 경제위기 대응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G7이나 G20 등이 분열되면서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주요 경제권에는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은 지난 1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상 최고치인 8.6%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9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유로존의 급격한 물가상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부문별로 에너지 가격 상승률이 41.9%로 가장 높았고 식품·주류 등 상승률이 8.9%로 뒤를 이었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5일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데릭 할페니 미쓰비시 UFG 파이낸셜그룹(MUFG) 글로벌시장 연구소장은 "에너지 상황이 나빠지고 경제 성장 리스크가 현저하게 커지는데 유로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작년 동월 대비 8.6% 오르며 1981년 12월 이후 40년 5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오는 13일 발표될 예정인 미국의 6월 CPI도 8∼9%대의 상승률이 예상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공개한 '미국 경제가 연착륙·경착륙·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후퇴) 가운데 어디로 향해 가는가' 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가 더블딥과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더블딥은 경기후퇴 후 회복기에 접어들다가 다시 경기가 후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더블딥이 현실화하면 1980년대 초 2차 석유파동 이후 40여년 만이 될 전망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기존 0.75~1%에서 1.5~1.75%로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고 있지만 물가가 잡힐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전쟁과 인플레이션, 식량부족, 에너지 수급 불안 등이 겹친 지금의 위기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주요 강대국 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합의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주요국 정부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성'을 발휘했지만 러시아, 중국 등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대립하면서 더이상 그런 협력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전쟁, 인플레이션, 식량부족이 겹친 전후 최대의 세계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과거의 위기와 다른 점은 주요국 정부 간 협력관계가 붕괴해 총의를 모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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