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파산④…LTCM 창업
상태바
천재들의 파산④…LTCM 창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01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리웨더의 재기…Fed 부의장을 비롯해 유명 학자들을 총동원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살로먼 브러더스의 채권 사기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갔다. 존 메리웨더는 실업자 신세가 됐다. 살로먼의 옛동료들이 메리웨더를 복직시키자고 회사에 요구했으나, 살로먼의 최고경영자들은 거절했다. 그러자 메리웨더의 부하 6명이 줄줄이 살로먼에 사표를 내고 메리웨더에게 동참, 실업자 대열에 가담했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로젠펠드도 그중 하나였다.

실업자로 전락한 메리웨더와 그의 부하들은 할일없이 2년간을 빈둥거렸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무엇을 할까, 머리를 싸매고 궁리했다. 살로먼이 아닌 다른 투자은행에 파트너로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보험회사나 상업은행에 용역을 제공하는 일을 할 것인가. 궁리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 즉 사업 밑천이었다. 그들은 사업 밑천을 구걸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LTCM 설립

 

우선 워렌 버핏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 “살로먼을 떠날 때 버핏은 메리웨더를 아까워하지 않았던가. 월가의 금융황제로 불리우는 버핏이 도와준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투자자들도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워렌 버핏은 뉴욕 월가에서 가장 천재적인 투자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투자방법, 인생을 서술한 책만해도 여러권으로 미국의 어느서점에서나 찾을수 있다. 그만큼 열성적인 팬이 많다는 얘기다. 버핏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곳,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는 곳에 투자를 한다. 그가 은 시장에 투자하면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은가격이 폭등한다. 버핏은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혜안의 소유자이며, 그가 투자한 곳에 손해가 없다는 신뢰가 월가에 깊숙히 깔려있다.

메리웨더는 로젠펠드를 데리고 버핏을 찾아갔다. 버핏의 본거지는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였다. 그러나 버핏은 냉정했다. 돈의 시장은 인정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버핏을 만나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하며 투자를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버핏은 관심이 없었다.

메리웨더는 이때 버핏에게 무척 서운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몇년후 버핏이 LTCM을 매입하겠다고 제의했을 때 메리웨더는 단호히 거절했다. 버핏은 메리웨더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어했지, 독립적인 경쟁상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역으로 메리웨더는 버핏의 도움을 바랬지만, 그의 휘하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둘의 자존심 대결은 평행선을 그렸다.

버핏에게서 바람을 맞은 메리웨더 일행은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가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를 찾아갔다. 그들은 장래 포부와 계획을 밝히고 투자를 요청했으나, 보수적인 스위스 은행가들은 월가의 첨단 투자기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월가에서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유럽 바닥에서는 냉대를 받기 일쑤다. 메리웨더라고 다를리 없었다.

무거운 발길을 돌려 뉴욕으로 돌아오려는데 메리웨더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길하나를 두고 UBS 은행 건너편에 있던 율리우스 배어 은행의 실세 레이몬드 배어(Raymond Baer) 전무의 전화였다. 그는 살로먼에 근무한 적이 있어 메리웨더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배어 전무는 메리웨더가 헤지펀드를 차리면 돈을 투자하겠다고 선선히 나왔다. 2년째 굶주린 하이에나로서는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헤지펀드 설립 준비에 착수했다. 이름하여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였다.

그들은 헤지펀드의 본부를 커네티컷 그린위치에 두고, 등록지는 카리브해 해상의 섬인 케이만 군도(Cayman Islands)로 했다. 케이만 군도는 영국 자치령으로 인구 3만6,000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그러면 왜 메리웨더가 이곳을 등록지로 했을까. 바로 세금 도피와 비밀 보호 때문이다.

예금자의 비밀과 세금을 감면해줌으로써 많은 예금을 예치하려는 정책은 멀리 18세기에 스위스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스위스 비밀 구좌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독재자, 마피아, 악덕업자들의 더러운 돈도 스위스에서는 받아주었다. 그런데 2차 대전후 스위스는 더 이상 예금자 보호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수 없게 됐다. 카리브해 해상의 케이만 군도, 바하마등도 스위스가 했던 방식을 취해 미국의 많은 돈을 예치받았다. 우리나라의 과거 대통령들이 이런 사실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퇴임 직전에 스위스로 갈 필요도 없이 미국 방문길에 케이만 군도나 바하마에 들러 잠시 머리를 식히며 국정 구상을 한다는 쇼를 연출할수 있었을 텐데.

케이만 군도에는 1998년말 현재 5,000억 달러의 예금이 예치돼 있었다. 이는 4년전의 두배에 해당하며, 뉴욕에 예치된 예금보다 많은 규모다. 케이만 군도의 주민이면 갓난이까지 합쳐 1인당 평균 1,400만 달러의 돈을 예치하고 있는 셈이다. 유령 회사와 은행도 많다. 서류상으로 등록해놓은 페이퍼 은행이 575개, 페이퍼 컴퍼니가 2만 개에 이른다. 그중 하나가 LTCM이다.

케이만 군도등 해외에 서류상으로 등록해놓은 금융기관을 ‘역외 펀드(off-shore fund)’라고 한다. 헤지펀드는 물론 뮤추얼 펀드도 대개가 역외 펀드를 두고 있다. 나중에 뉴욕 연준이 LTCM을 구제했을 때 케이만 군도 국적의 펀드를 구해줄 이유가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제기되기도 했다.

 

▲ 존 메리웨더가 창업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로고 /위키피디아

 

아카데미 백화점

 

어쨋든 LTCM이 창립되자 연준리(FRB) 부의장으로 있던 데이비드 멀린스(David Mullins)씨가 메리웨더에 합류했다. 하버드대 교수출신인 멀린스씨는 미국 중앙은행에서 앨런 그린스펀 의장 다음으로 권력을 쥐고 있는 연준리 2인자 자리를 그만두고 어느날 갑자기 헤지펀드에 찾아왔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로 있을 때 87년 10월 블랙먼데이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시장 붕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했던 학자였다. 그가 나중에 미국 금융시장 교란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메리웨더는 이론과 현실을 접목하려고 한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을 좋아했다. 멀린스도 그런 부류의 하나였다. LTCM에는 파산 직전에 모두 25명의 경제학 박사들이 모여 있었으니, 웬만한 연구소에 못지 않는 학벌의 보고였다.

199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샤프(William Sharpe) 스탠포드 교수는 “LTCM이야말로 세계 금융기관으로는 가장 경제학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아카데미 백화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어쨋든 93년말 LTCM은 자본금 1억 달러의 헤지펀드로 정식 설립됐다. 본사는 뉴욕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커네티컷주의 그린위치(Greenwich)로 정했다. 미국에서 부자 마을로 알려진 이 타운엔 유명 헤지펀드들이 집결해 있었다.

메리웨더와 학자군단은 본격적으로 투자자 유치에 나섰다. 그들은 “전세계 채권시장에서 황금의 투자 기회를 찾을 것이며, 금융시장에 불황이 닥쳐 오면 얼른 가장 안전한 투자처인 미국 재무부 채권으로 옮겨가겠노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메리웨더는 이들을 믿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예 세일즈맨들이었다. 뉴욕 월가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사에서 세일즈맨을 스카웃해서 전면에 내세우고, 숄스 교수와 연준리 부의장이었던 멀린스씨를 지원조로 동원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메릴린치 출신이라면 알아준다. 게다가 파생금융상품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정립한 세계적인 경제학 교수와 연준리 2인자 출신이 자신감을 주었으니, 웬만한 투자자들이 빨려들어가지 않을수 없었다.

오하이오주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테리 설리반씨도 LTCM의 스타군단에 반한 사람이다. 그가 94년 2월 그린위치를 찾았을 때 말쑥한 양복 차림의 멀린스씨가 영접했다. 오하이오주는 한국으로치면 강원도 정도쯤 되는 시골 주다. 그런 곳에서는 연준리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들다. 그런데 연준리 부의장을 지낸 사람이 떡하니 나와서 자신은 연준리 사람들과 친하고, 연준리가 어떤 금리정책을 취할지를 잘 알고 있으니, 믿고 투자하라는데 시골 사람에 빠져들지 않을수 없었다. 또 피츠버그 대학에 다닐 때 사사한 머튼 교수도 이 헤지펀드에 있질 않는가. 설리반씨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거금 1,000만 달러를 LTCM에 맡겼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