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소공동(小公洞)길에 머무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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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소공동(小公洞)길에 머무는 기억들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8.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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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임하는 태도는 우리의 선택

 

[조병수 프리랜서] 차를 타고 소공로를 지나다 보니, 옛 한국상업은행 본점이었던 건물에 붙어있는 ‘한국은행 소공별관’이란 간판이 눈길을 끈다. 아직도 익숙한 간판과 건물들이 남아있는 거리인데도, 유독 이 건물만 참 많이도 낯설어 보인다. 그전에는 저쪽 벽면에 서양화가 손동진 화백의 조각작품도 있었는데···.

건물의 주인이 바뀌고 리모델링을 한 것은 IMF사태 즈음으로 거슬러가는 옛 얘기가 되었다. 그 부근 거리를 종종걸음 치던 신입행원 시절도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어느새 구닥다리 활동사진 같아진 기억들만 남겨주고 아련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1980년대 초, 당시 모시던 은행장이 일정 때문에 구내식당에 올라갈 시간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집무실에서 요기(療飢)를 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다. 그때가 바로 비서실 주임인 내가 북창동에 있는 M일식집으로 출동하는 시간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하기도 애매한 거리의 그 식당에 생선초밥을 주문하고 달려가면, 미소국도 같이 가져와야 했다. 요즈음처럼 일회용 용기가 사용되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아예 주전자를 들고 뛰어갔다. 그리고는 한 손에 도시락, 다른 한 손엔 노란 주전자를 들고, 국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곤 했다.

짙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가 서울의 중심가에서 주전자 들고 뛰는 모습이 좀 우습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선친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있다.

“직장에서 상사를 모실 때는 집안의 어른을 모시듯 정성으로 해라.

무릇 직장에서는 앞에서 당겨주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들도 있어야 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들과도 잘 지내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해라.”

그리고 “사람을 접할 때는 봄바람처럼 하고, 자기를 돌아볼 때는 서릿발처럼 하라”며, 붓글씨로 ‘춘풍접인 추상임기(春風接人 秋霜臨己)’이라고 써서 액자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물론 살아오면서 나의 부족함 탓에 그런 말씀과 경구(警句)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만, 그 당시에는 오로지 최고지휘관의 식사를 제때에 맞춰서 갖다 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 옛 한국상업은행 본점(출처: 1986년도 은행年報) /사진=조병수

 

바로 옆의 한국은행 본관건물도 제법 들락거렸다. 그곳에도 나 혼자 미소 짓는 얘기가 걸려있다.

은행의 임원부속실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비서역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한국은행 총재 비서실에 가서 초청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소공동 지하도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지척이지만, 불쾌한 감정이 앞섰다.

‘무슨 이런 친구들이 다 있나? 아니, 초청장은 초청하는 쪽에서 보내야지, 가만히 앉아서 받으러 오라는 매너는 뭐냐?’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한국은행 본관으로 갔다. 책임자급은 되어 보이던 담당자가 초청장을 건네주려고 찾는 순간, 그만 젊은 혈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그런데, 초청장을 보내려면 초청하는 쪽에서 보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한 사람 보내서 초청대상 기관들을 한 바퀴 쭉 돌면 되지, 모든 은행들이 일일이 다 이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받아가게 하는 것은 인력낭비 아닙니까?”

“아 그래요? 그러면 갖다 드릴 테니 그냥 돌아가세요.”

“아니, 이왕 왔으니 그냥 주시면 되지, 뭘 또 돌려보내고 다시 사람을 보냅니까?”

그 담당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그냥 돌아가라"고 하는 걸 못들은 척하고, 초청장을 빼앗듯이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한국은행 총재실 앞에 와서 감히 불평을 늘어놓는 시중은행원은 없었을 텐데, 새파란 행원이 겁도 없이 그런 불편한 말을 불쑥 내뱉고 있으니 기가 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소공동 길을 건너서 은행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괜히 분개해서 씩씩거렸다. 초청장을 찾아오라고 시킨 비서역에게 "한국은행 가서 한마디하고 받아왔다"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부하직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찌 벌집을 건드리고 온 것 같았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까 비서역 책상의 전화벨이 울렸다. 나직나직하게 뭐라고 통화를 하는데, 예상대로 그쪽에서 불편한 마음을 전하는 모양이었다. 혈기 방장(方壯)한 부하직원을 둔 탓에 그 분이 한국은행 직원에게 "앞으로 교육 잘 시키겠다"고 사과하고 상황은 끝이 났다.

어쨌던 그 후로는 한국은행에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초청장을 받으러 오라고 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 혼자서는 한참 동안, ‘우리나라 중앙은행총재 비서실에 가서 혼내고 온 유일한 시중은행원’이라는 쓸데없는 자부심을 가졌었고···.

 

반평생을 매달렸던 직장이 있던 그 소공동 길을 지나다가 보면, 문득문득 그렇게 노란 주전자를 들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패기(覇氣) 있게 내달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딸들이 그네들의 직장에서 힘들다고 투덜댈 때마다, "성심(誠心)을 가지고 맡은 일을 긍정적으로 해나가라"고 다독이면서, 젊은 날 소공동 거리에서 주전자를 들고 뛸 때의 마음가짐과 무용담(?)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2000년대 초반 베스트셀러였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Fish)』에도 “직장에 임하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한다. (We can choose the attitude we bring to our work.)”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공자(孔子)님도 “일생의 계획은 젊은 시절에 달려있다(一生之計在於幼)”고 했는데, 기왕에 주어지고 또 해야 하는 일에 그렇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임(自任)한다면? 아무래도 이것은 교만(驕慢)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그렇게, “삶의 순간들이, 시간의 조각들이 우리에게 의미가 새겨지도록 한다면, 실패나 성공에 대한 저울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존 가드너(John W. Gardener: 린든 존슨 대통령시절 장관 역임)의 말을 되새기게 만드는 소공동 거리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살며시 어루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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