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부동산 신화에서 깨어나지 못한 『강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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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동산 신화에서 깨어나지 못한 『강남몽』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25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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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본 한국자본주의 30년을 그려

 

1995년 6월 29일 저녁 6시. 그날의 기억은 2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경제신문 기자였을 당시, 초판 마감을 마치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간식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TV 화면에서 속보가 날라 들었다. 직업적 의무로 무슨 내용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서초구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는 뉴스였다.

화들짝 놀라 편집국으로 뛰어들어갔다. 모두들 그동안 제작했던 초판을 갈아 엎고 새로 신문을 만들었다. 왜 무너졌는지, 몇사람이 매몰되었는지, 얼마나 죽었는지는 그 순간에는 알수가 없었다. 일단 가판 신문을 새로 만들었다.

허겁지겁 신문을 새로 만들면서도 틈틈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엔 핸드폰이 없었다. 근무처로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락이 없었다.

아내는 당시 거의 매일 오후 5시반에서 6시 사이에 삼풍백화점에 들렀다. 근무지가 교대역 근처였기 때문에 그 시간에 삼풍백화점에 들러 아이에게 필요한 분유며, 사는데 필요한 것들을 샀다. 정확하게 오후 5시 52분에 삼풍백화점은 무너졌다. 바로 그 시각은 아내가 쇼핑을 가는 시간이었다.

저녁 늦게 삐삐가 울려왔다. 당시엔 기자들에게 최신의 통신기기가 삐삐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전화였다. 급히 받아보니, 그날은 점심시간에 백화점에서 장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십년 감수했다. 나는 느닷없이 화를 냈다. 왜 전화가 안 되느냐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초구에는 전화가 폭주해 거의 모든 전화가 불통이었다. 어쨌든 무사함을 알고, 저녁약속 자리로 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온 모회사 사람이 안절부절했다. 부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의 얘기를 해주며 걱정말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는 양해를 구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의 부인은 무사했다고 한다.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2010, 창비)은 읽은지 꽤 오래 된다. 책장에 꼽혀 있길래 다시 뒤적거렸더니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의 기억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 강남몽 표지

소설 『강남몽』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시간의 기둥으로 하면서 해방후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황석영은 “30년에 걸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과 엄청난 에피소드들을 캐릭터화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황석영은 강남몽의 창작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1995년 무렵을 일단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게 된 시기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되어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 들면서 욕망에 얽혀가는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바로 그즈음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최초의 출발점을 향하여 거슬러 올라간다.”

 

5장으로 구성된 소설에는 다섯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① 박선녀

평범한 가정의 딸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화류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강남에 룸살롱을 개업한 그녀는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기도 하고 폭력조직의 위협에 처하기도 하면서 악착같이 술집을 경영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대성백화점 김진 회장을 만나 그의 후처가 된다. 드디어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상승을 이루어 상류층의 생활에 진입하게 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백화점이 붕괴하는 사고를 당한다.

② 김진 회장

만주에서 헌병대 밀정노릇을 하다가 해방후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청 산화 특무기관의 요원으로 변신한다. 5.16군사정변 직후 건설업을 시작한 그는 권력과 돈의 행방을 가늠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미군정청에게 불하받은 서초동 땅에 아파트와 백화점을 지어 올려 인생의 정점에 이른 듯이 보인 순간, 1995년 6월 그의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맞이한다.

③심남수

군복무 후 백수로 지내던 그는 어느 날 부동산 업자인 박기섭을 만나 강남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 처세에 능한 그는 1970년대 말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정보통을 이용해 모든 재산을 처분해 외국으로 떠났다. 십 년 후 대학교수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집에서 TV를 통해 백화점이 붕괴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④ 홍양태

광주의 전설적인 주먹. 이십대 초반인 1960년대 상경해 유흥가를 장악한다. 그러나 조직 간의 다툼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도 강남호텔로 사업을 확장하던 그는 유신체제가 끝나고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정치권에 이용만 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만다.

⑤ 임정아

백화점 지하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는 여직원. 어려운 살림에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의 부모 역시 적수공권으로 상경해 공장노동, 파출부 등 갖은 고생 끝에 집을 마련하지만 딸이 일하는 백화점이 붕괴하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17일만에 구조된다.

 

▲ 황석영 /강남몽 표지날개 사진

 

소설 『강남몽』을 다시 훓어보았다. 강남을 무대로 한 서로 다른 다섯편의 스토리를 억지로 잇댄 느낌이 든다. 작가는 한국자본주의 30년을 다섯명의 캐릭터로 소화하려 하다가 논리전개에서 무리를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본 헌병대 밀정을 하던 김진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전환시키고, 화류계 박선녀를 졸부의 첩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더하는 것일수 있다. 하지만 1980~90년대 강남 부동산 투기가 친일파의 소산이라는 인식은 극히 일부분의 사실을 일반화한 오류를 저질렀다는 생각이다.

특히 앞부분에서 상당한 분량으로 친일파,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일화등을 서술한 것은 황석영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는 남과 북,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었다. 황석영은 1989년 3월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만났다.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1991년 11월까지 독일의 베를린에 체류했다. 1993년 4월에 귀국한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3월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2009년 5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에 참가하기도 했다. 곧이어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 지지를 철회했다.

그는 남쪽과 북쪽을 비판하는 경계인이자, 회색인으로 양측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강남몽』에서 황석영은 한국의 권력집단과 부유층을 친일파요, 부패한 세력으로 그린 것이다.

 

황석영은 ‘몽자’(夢字) 돌림의 소설, 즉 『구운몽』 『옥루몽』, 중국 소설인 『홍루몽』등, 모두가 주인공이 꿈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파란만장을 겪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개달음을 얻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며 그래서 소설의 이름을 『강남몽』(江南夢)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여기(강남)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몽』이 발간된지 10년 가까이 지났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지 22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강남의 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강남 재개발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뛰더니만, 전국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집에 대한 욕망, 부에 대한 욕망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강남신화와 굼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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