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톺아보기]② 반도체 육성 핵심 인재 양성…수도권 쏠림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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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톺아보기]② 반도체 육성 핵심 인재 양성…수도권 쏠림 경계해야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6.14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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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달 중 반도체 학과 증원 가이드라인 발표할 듯
수도권 쏠림 및 지방대 고사 우려 목소리 커져
국가의 체계적 투자와 지원 확대 촉구하는 요구도 커져
정부의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사진=연합뉴스

최근들어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국가 안보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전 세계 국가의 반도체 패권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 TSMC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역시 아태지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가 곧 국력의 척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 지금, 반도체의 의미를 되짚어 봤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지난 2016년 8월 국토교통부는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에 의뢰해 '산업구조 및 입지수요에 기반한 산업입지 공급체계 마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관계자 인터뷰를 종합해 연구개발(R&D) 입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력확보이며 고급인력이 올 수 있는 위치는 서울과 판교까지라고 밝혔다. 이후 판교는 시쳇말로 '취업 남방한계선'으로 불리며 고급인력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됐다. 최근들어 기술직을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있는 기흥까지로 취업 마지노선이 확장되기는 했지만 '제2의 분단'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반도체와 ITC 등 첨단기술 중심 고급인력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 증대 방침에 대해 국토균형발전을 외치는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학과 수도권 정원 확대 최선의 선택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고 말하며 첨단 분야 인력 양성에 대해서 국가의 역할 강화를 주문했다. 이후 교육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풀어 수도권 대학들이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릴 수 있는지 살피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관련 학과정원 확대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1982년 인구 및 산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풀기 위해 제정됐다. 이어 1998년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대학 입학정원을 국토부 장관이 심의를 거쳐 정하는 '학교 총량규제'를 포함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지역에선 그동안 대학을 새로 짓지도 못했고, 정원도 늘릴 수 없었다. 수도권 대학과 기업들이 완화를 요구해왔지만 지방대 황폐화 지적에 따라 지난 24년 동안 유지됐다. 

교육부는 2015년부터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정원을 1만2000명 정도 줄였고, 국가가 주도하는 첨단분야 학과를 만들 때 대학설립 및 운영규정 내 4대 요건(교지, 교사, 수익용 기본재산, 교원)을 충족하면 증원을 허용했다. 지금까지 반도체학과 350명을 비롯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에서 모두 4000명 정도 정원이 늘었다. 교육부는 이렇게 줄어든 8000명 정도를 반도체학과에 대폭 할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기자재가 부족하더라도 학과를 개설할 수 있게 해주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현재 전국 30개 대학이 반도체 관련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졸업생 모두가 관련 학과에 취업하는 건 아니다. 기업과 대학이 절반씩 나눠 공동으로 학과를 설립한 뒤 대학에서 진행한 교육과정을 마친 졸업생을 기업이 데려가는 계약학과 졸업생의 경우만 대부분 기업에 취직한다. 

대학 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 등에 따르면 2023학년도 반도체 관련학과 신입생 모집 규모(정원)는 모두 1382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권이 475명, 경기권이 269명 등 수도권이 744명이고 지방이 638명이다. 국·사립으로 나눠보면 지방의 경우에는 국립 비중이 매우 높다.

이 중 기업과 채용조건을 계약한 계약학과 신입생 모집 정원이 360명에 달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석·박사까지 반도체 전공자는 한해 약 2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외에 부품소재학과, 화공학과 등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학문을 전공한 인원까지 모두 포함하면 한해 배출되는 인원은 약 2만4500명 정도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부족한 인력은 1년에 3000여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때문에 규제를 풀고 특혜를 주면서까지 반도체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영·호남·충청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을 가중화하는 조처"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공명하게 하는 수도권 대학 첨단학과 증원 추진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은 비수도권 대학에 우선권을 줘야 한다"며 "비수도권 지방대학을 살리는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반도체 회로를 점검 중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인력 부족 원인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인재가 부족한 이유는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대학이 기업의 수요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꼽는다. 그 결과 정부와 기업이 대학이 아닌 기관을 통해 인재 공급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포스코, KT 등 국내 주요 테크 기업은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9만명을 길러내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학은 사회와 기업의 수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일정부분 수용하면서도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이들이 지목한 한계는 크게 ▲대학 학과 정원 조정의 어려움과 ▲사립대의 투자 한계 그리고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투자 부족을 꼽는다. 국내 모 대학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학 대부분은 학과체제로 운영되다 보니 감축 대상 학과 교수와 동분의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다"면서 "한때 학부체제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실제 학부 안에 학과는 그대로 유지하는 기형적인 형태를 띄기도 해 결국 다시 학과제로 돌아선 바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첨단산업 분야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시설과 교수 인력 확보 등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사립대학은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한 이런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여기에 최근 10여 년간 등록금이 지속적으로 동결되고 지방의 경우 학생 미달사태가 벌어지는 등 사립대학은 등록금만으로는 대학을 운영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분야 학과 정원을 늘리려는 대학은 많지 않다. 일부 유력 대학 중에서도 자체 정원을 통해 반도체 및 첨단산업 기술 분야 정원을 늘린 경우는 거의 없고, 증원이 허용되는 계약학과 방식으로 인력을 배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외국의 경우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하는 이공계는 주로 국공립대학이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프로그램 개설과 운영이 저렴한 인문사회계 쪽은 사립대학이 담당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학과 교수들의 낮은 대응력도 문제다. 반도체와 ICT 분야 등의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현장 요구를 교수와 대학이 교육과정에 즉시 접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과거와 달리 대학 교수들이 아니라 실제 현업 종사자들이 첨단 기술과 첨단 시설 및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기업과 대학이 공동 설립한 계약학과의 경우 이론 중심의 연구를 제외한 나머지 교원의 경우 산업체 인력을 직접 활용하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대학이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오히려 선도할 수 있으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국가 차원의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면서 "대학이 첨단 분야 인력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필요한 지원을 할 때 국가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계약학과에 투자하듯이 대학이 육성한 인력을 가져다 쓰는 기업이 대학에 직간접적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면서 "가장 핵심적인 청잭은 첨단분야부터 시작해 고등교육에 대한 구가 투자를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고 점차 국가 경제 규모에 맞게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덧붙엿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액(2018년 기준)은 1만1290달러다. 이 지표는 전체 고등교육기관(대학)의 직접 투자비를 학생 수로 나눈 것으로 OECD 평균치인 1만7065달러의 약 66%에 불과했다. 이는 초·중등교육과 대조적이다. 2018년 기준 한국 학생 1인당 초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액은 1만2535달러로 OECD 평균(9550달러)보다 2985달러 높았고, 1인당 중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액은 1만4978달러로 OECD 평균(1만1192달러)보다 3786달러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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