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삼척출항의 재조명⑤…함대(艦隊)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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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삼척출항의 재조명⑤…함대(艦隊) 구성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17.08.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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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공격하려면 20척에 760명 군사 동원했을 듯

 

[이효웅 이사부기념사업회 기획이사(해양모험가]

 

정보수집에서 우산국의 주민이 400-500명(전투 인원 약 300명)이라고 가정하면, 공격은 수비보다 많아야 하므로 2배 이상의 군사가 필요하며 여기에 맞추어 함대 규모를 정한다. (전선의 수는 정보수집에 따라 증감한다.)

이사부 함대 규모를 20척(38명씩) 760명, 목우사자 20두 결정하고, 5척씩 4개 선단으로 편성하고 선발대 선단은 해로에 밝은 선원들로 항해의 길잡이가 되어 앞장서고 사령관은 본대 2선단에서 총괄 지휘한다. 전선의 크기는 제작하기 쉬운 중형선으로 전선의 형태는 노를 주로 사용하고 돛 1개를 보조로 사용하는 준범선의 다체성형선(多體成形船)으로 선수는 첨형(尖形)이고 선저는 평저형(平底形)으로 제작한다.

노잡이의 수는 좌·우 7명씩 이렬방식 2교대(28명)로 2시간씩 운행하고 교대한다. 항해대형은 일렬종대형과 小자대형으로 한다. 일렬종대 대형은 정방향 항해 시 일출방향과 육지방향을 보면서 항해를 한다.

小자대형은 선발대 뒤에 본대인 2선단과 좌·우에 3,4선단이 위치하여 본대에서 통솔하며 위험지역(안개, 파랑)이나 목표물인 우산국을 확인 시에는 小자대형으로 항해한다. 이사부 전선의 구성원은 선장, 부관, 타수(키)2명, 고수(북),기수(깃발), 범수(돛), 화장(취사), 배수(펌핑)2명, 노군(병사)28명 계38명으로 한다.

 

참고로 약1,000년 후인 조선시대의 삼척포진의 병선은 4척, 38인을 3령으로 나누었다.

삼척포의 병선(兵船)은 4척인데 성종 6년(1475)과 12년(1481)에 다시 수리를 하였으며, 매월 초하 루와 보름에는 연훈(煙燻)을 하였다. 병선을 유실한 자에게는 포 110필을 징수하였다. 병선은 모두 작은 배였고, 수군은 병선 한 척당 38인이었다. 처음에 수군을 3령으로 나누고 호는 각기 4정이었 다. 그러나 나중에 수군이 많이 도망하였기 때문에 2정으로 나누어 6번을 하여 다시 3령으로 만들 었다.

 

우산국정벌 시기는 음력 6월로 과거의 기상과는 좀 다를 수 있으나 장마 직후라고 예상되며 조선시대의 장마 시기는 음력 5-6월에 있었다. 장마 직후 동해의 기상은 아침·저녁으로 조용하고 오후에 기온이 오르면서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다가 저녁 무렵에는 잔잔해 진다. 울릉도 항로 중간에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서 안개와 파랑을 일으킨다. 특히 여름철 기온이 높고 무풍일수록 안개와 파랑이 심하게 나타나 앞을 볼 수가 없어 선단에서 이탈할 수 있다.(꽹가리로 신호)

 

▲ 1일 항해체험(2014.7.21) /사진=이효웅

 

<표> 우산국 정벌 예상 항해 일정표(512년 음력6월)

시각

12지시

항해거리

항해 방법

항해 내용

첫날

04시

인시

 

 

출항 준비 및 조식

 

06시

묘시

 

小대형

평속6km

실직항 출항

선발대 선두, 본대 3렬종대

 

12시

오시

36km

 

중식은 교대로 식사

 

14시

미시

48km

일렬종대

태백산맥이 잘 보이지 않으면 일렬종대 정방향

 

18시

유시

70km

항해 종료

선단 결속, 항해 점검, 석식

 

20시

술시

 

 

취침

둘째날

04시

인시

 

 

기상 및 조식, 선단 해체

 

06시

묘시

 

일렬종대

선발대 선두, 동쪽 정방향 항해, 일렬종대

 

10시

사시

94km

小대형

속력3-4km

안개파랑 지역(수종), 선발대 선두 3렬종대,

속력 낮춤, 선발대 정방향 유지, 시야확보

 

12시

오시

100km

우산국 확인

안개파랑 지역 통과, 선단 이상 유무 확인

 

18시

유시

135km

항해종료

우산국 인근 정박, 선단 결속, 공격준비, 석식

 

20시

술시

 

 

취침

셋째날

04시

인시

 

 

기상 및 조식, 선단 해체

 

06시

묘시

 

小대형 출발

선발대 선두, 본대 3렬종대, 전투 장비점검

 

10시

사시

160km

 

우산국 도착 및 선회, 선전포고

북, 꽹가리, 화살, 목우사자 동원

 

12시

오시

 

상황 종료

우산국 항복, 상륙

 

여름철에는 일조시간이 길므로 오전6시에 출발하여 2개조로 나누어 2시간씩 교대로 쉬지 않고 오후6시 까지 항해한다면 6km x12시간=70km의 항해가 가능하다. 아침 일찍 무풍에 노젖기 항해를 하다가 한낮에 적당한 순풍을 만나면 돛을 펼쳐서 범주항해를 한다. 그러나 5-6m/s 이상의 바람은 범주항해에 도움이 되나, 3-4m/s 이하의 미풍이나 측풍은 범주항해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필자는 <도-17>의 투어링카약으로 2013년 한려수도 137km를 4박5일 동안 단독 투어링해 본 경험이 있다. 또한 이사부항로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1일 항해체험으로 2014년 7월 21일(음력 6월25일), 죽변 봉평해변에서 야영하고 06시에 단독으로 출발하여 삼척까지 54km를 9시간 동안 세일페들링해 본 경험이 있다. 이 항해의 특징은 장마가 끝난 후 동해바다 기상이 안정되어 아침시간에는 바람이 없거나 미풍이었다. 그러나 오후1시경부터 남동풍이 5-6km/시 정도 불어 1-1.5m의 파랑으로 인하여 카약투어링이 힘들어 궁촌항에서 3시간동안 피항하고 오후6시에 삼척 오십천에 도착하였다. 미풍에서는 페들세일링을 하고 바람이 강해지면 세일페들링으로 항해를 하였다. 세일링 결과 54km/9h=6km/h=3.2knot로 보통 세일 없이 장거리 항해 시 평속 5km/h 정도였는데 결과는 6km/h였다. 세일(돛)의 영향으로 약 20%의 체력감소와 속력 증가가 있었다.

 

윤명철은‘삼척지역의 해양 도시적 성격과 김이사부 선단의 출항지 검토’에서

‘신라군은 음력 6월에 우산국을 공격하였다. 이는 한여름이며 무풍에 가깝거나 서풍 계열의 바람 이 미미하게 부는 계절이다. 따라서 공격 선단은 돛을 이용하기 보다는 노를 주력으로 사용하였을 확률이 높다. 삼척에서 울릉도 간의 거리는 대략 78마일이다. 무풍과 노젖기만으로 항해 시 4마일 로 1일에 8시간 항해하면 32마일(약59km)을 항해한다. 대략 3노트로 24시간 동안 항해한다면 1일 72 마일을 항해 할 수 있다. 급습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용된 선 박도 검토할 필요성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 독도탐사(2015.7.29) /사진=이효웅

 

동해안의 무동력선 항해기록은 1998년 발해1300 뗏목탐사팀, 2003년 조나단 코웰즈의 노보트(쌍노) 한반도일주, 2010년 최종렬 탐사팀의 롤링보트(2대 쌍노 6명) 한반도일주, 2011년 사이몬과 마린의 카약 한반도일주 등이 있다. 2003년 하와이 출신의 조나단 코웰즈는 단독으로 노보트의 쌍노를 사용하여 서해안에서 제주도를 거쳐 연안항해로 한반도일주를 하였고, 2010년 최종렬 탐사팀은 서해안에서 롤링보트의 쌍노를 사용하여 2명씩 3대가 출발하였으나 도중에 한 척이 파손되어 2대에 3명씩 한반도일주 중 포항에서 독도항해를 하였다. 그러므로 유능한 선원들이나 훈련받은 병사들이라면 돛이 없어도 우산국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전선이 거의 만들어지면 우산국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을 준비한다.

첫째, 실직에서 바로 공격하느냐? 둘째, 하슬라를 공격한 다음 우산국을 공격하느냐?

이사부 장군이 실직군주로 있을 당시 고구려와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으나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동해시 사문재와 강릉시 옥계재로 사문재 까지는 직선거리로 16km, 옥계재 까지는 28km로 우산국을 공격하려고 실직에서 많은 전선이 떠나면 금방 이웃지역에 소문이 날것이다. 실직을 비운 사이 적이 공격하면 실직을 빼앗길 위험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우산국을 점령한 아군은 피항지가 없어 울진이나 영덕까지도 밀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하슬라를 공격하고 우산국을 정벌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하슬라를 점령하면 양양의 남대천(직선거리 87km)까지도 신라의 영토로 만들 수 있다.

하슬라를 먼저 점령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쟁에 나가려면 전선 이외에도 수전에 강한 수군, 각종병기, 화살, 식량, 군복 등 많은 군사와 물자가 필요하다. 당시 보급로가 먼 신라나 실직의 백성들로 전선을 건조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511년경 하슬라를 먼저 공격하여 국경을 멀리하고, 512년 하슬라군주가 되어 군사와 군비를 보충하여 실직의 군사와 함께 512년 6월, 이사부 전선에 목우사자를 싣고 우산국정벌에 나섰다. 장마가 끝나고 날씨 좋은 6월 어느 날, 실직항에서 20여척의 이사부 함대가 목우사자 20두를 싣고 출동하였다. 우산국 해안을 선회하면서 북과 꽹가리를 치고 큰 소리로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 너희를 밟아 죽이겠다.”하니 우산국의 수장 이하 군졸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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