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엔화]②日 기업 "엔저효과? 오히려 위험 부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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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잃은 엔화]②日 기업 "엔저효과? 오히려 위험 부담 커졌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2.06.09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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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물가 크게 올라 엔저 효과 메리트 사라져
일 기업들 "급격한 엔화 하락은 오히려 대응 어려워"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엔화 약세는 통상적으로 일본 수출 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한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엔화 약세는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 대응하기가 어렵고, 반대로 수입가격은 크게 치솟으면서 일본 내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일본의 엔화 약세를 억제할 만한 요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일본 기업들 "엔화약세 호재였지만...지금은 메리트 없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엔화가 20년만에 최저치로 급락한 것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원자재 가격의 급등세가 맞물리면서 일본 기업들에게는 오랜 축복이었던 엔화 약세가 이제는 위협으로 바뀌고 있다"고 언급했다. 

엔화 약세는 수출기업들에는 상당한 호재임이 분명하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들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논은 지난 4월말 연간 수익 가이드라인을 상향조정하며, 엔화 약세가 회사에는 큰 플러스 요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엔화 약세가 너무 날카롭지 않으며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한 점도 이를 바탕으로 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엔화 하락을 반기던 분위기는 최근 들어 다소 변화가 생겼다. 

엔화 하락이 수출 기업들에는 호재임은 분명하지만 일본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엔화가 급락하면서 이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유니클로 등을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는 "엔화 약세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고 언급했다. 일본철강연맹 역시 "엔화 하락이 일본 제조업체에는 위험을 초래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일본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고 있는 점도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엔화 강세로 혼쭐이 났던 일본 수출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기업의 수출 비중은 크게 줄었다.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체들의 해외생산비율은 지난 2007회계연도 17%에서 지난 회계연도에는 22%로 증가했다. 

수입물가 급등에 오히려 부담 

최근 원자재를 비롯한 상품가격이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는 점도 일본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일본은 석유와 식품 등의 순수입국인데, 최근 휘발유부터 빵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가격이 비싸지고 있는 상황이다. 엔화가치의 하락은 수입물가를 더욱 비싸게 만든다. 

FT에 따르면, 도요타 자동차는 올해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의 회계연도에 원자재 및 물류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자재비용이 1조4500억엔(약 1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회계연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며, 엔화약세로 인한 이익분 1950억엔(약 15억달러)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엔화 약세로 수출기업들이 이익을 보더라도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는 점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일본 경제에는 부담 요인이다. 

와카바 고바야시 다이와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수출기업들은 엔화 약세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지만 자본 투자는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대응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도요타 부품업체인 아이신의 모리타카 요시다 사장은 "엔화가 3월 초 달러당 114엔에서 4월말 130엔으로 떨어졌을 때처럼 극단적으로 움직이면 오히려 대응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아스와니 굽타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 "달러당 130엔은 좋은 소식도 아니고 나쁜 소식도 아니다"면서 "나는 116~122엔 사이에서 우리의 기업 운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소비심리 위축...일본 경제에 악영향 

엔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일본 소비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제기됐다. 에너지와 식품을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의 경우  일부 필수품은 가격이 두자릿대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1% 올라 7년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은 오랫동안 더 큰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를 추구해왔지만 이같은 방식은 아니다"면서 "물가 상승은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고, 엔화약세는 해외 수요를 자극하기보다는 국내 수요를 더 위축시킬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물가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은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될 정도로 상당한 편이다. 앞서 일본의 물가 상승을 가계가 잘 감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여론 및 정치권의 뭇매를 맞았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7일 "적절치 않은 표현으로 오해를 볼러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노무라 연구소의 키우치 다카히데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가치 하락이 경제의 가장 약한 부분을 경고하고 있다"며 "가계는 수입품마다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 직면, 실제 인플레이션 앞에서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달러당 일본 엔화는 9일 오전 134엔을 돌파했다. 오전 9시30분(한국시간) 현재 달러당 엔화는 134.41엔을 기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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