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주의적 입장에서 쓴 『낙엽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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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주의적 입장에서 쓴 『낙엽이 지기 전에』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15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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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전 영국 체임벌린의 유화주의가 끝내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

 

김정섭 저 『낙엽이 지기 전에』를 읽으면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사정을 상세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저자는 1차 대전이 발발한 전후 과정을 서술하면서 전쟁의 위협에 가위눌려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 시사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 /사진=김인영

저자는 『낙엽이 지기 전에』라는 시적 제목이 함의한 것처럼 1차 세계대전이 “침략자 없는 비극”, 혹은 “일어날 이유가 없던 비극”이라고 해석했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났다는 주것이다.

논리 전개를 위해 저자는 독일 빌헬름 황제가 8월 첫째 주에 출정하는 자신의 군대에게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한 발언을 제목으로 다뤘다. 전쟁을 주도한 황제가 전쟁이 4년간 지루하게 이어질지 모를 정도로, 준비 없이, 우연하게 발생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포커 게임”과 같은 상황 때문에 일어났다고 서술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블러핑’과 같은 선전포고와 외교적 군사적 행위로 이어졌고, 막상 상대방이 강한 패를 가지고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불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1차 대전은 온갖 아이러니가 가득 찬 수수께끼 같은 전쟁이었다. 어느 나라가 일으켰는지,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서부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2차 대전이라고 하면 히틀러를 떠올릴 수 있지만 1차 대전은 주모자를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침략자 없는 전쟁에 가까웠다. 영토 정복과 경제적 이권 같은 탐욕의 충돌도 아니었다. 일부에선 식민지 경쟁을 둘러싼 제국주의 전쟁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땅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가 방어전쟁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며 뛰어든 전쟁이었다. 상대방의 호전성을 억눌러야 한다고 믿었을 뿐이며,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독일의 베트맨-홀베크Bethmann-Hollweg 재상은 소위 ‘계산된 위험calculated risk’ 정책에 의해서 ‘조절된 강압’ 전략을 구사했지만, 위기가 어느 임계점을 넘자 위험은 계산되지 않았고 상황은 조절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1차 대전은 누군가 의도하고 준비한 전쟁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실패해서 터져 버린 전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탐욕이 아니라 상호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었다. 침략자가 없이도, 모든 나라가 방어적 동기에 의해 움직였는데도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1차 대전은 또한 당시 유럽인들이 빠져 있던 집단적 오류와 잘못된 믿음의 산물이기도 했다. 1900년대 유럽인들은 한편으론 평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안일함에 젖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있었다. 8월에 전쟁을 시작하면서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 독일 빌헬름 황제의 호언장담은 바로 이런 단기전 신화의 일면이었다.

 

▲ 1910년 1차 대전 직전의 군사동맹 /위키피디아

 

이 책은 6월 26일 출간됐다.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한국학술연구원 주최 제14차 코리아 포럼 북핵 문제 국제학술회의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칫 사드의 정치적 함의가 더 커져서 그것이 미·중 간 갈등으로 표출되고 또 남북 간 오해가 있고 한다면 그 피해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은 돌발적인 것이고 예고편도, 징후도 없다. 그 나라의 결정권자가 전쟁이라고 선언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사드가 마치 특별한 방책·비책이고, 사드만이 한·미 동맹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미 북한은 사드를 뛰어넘는 비대칭적인 전략무기를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있고, 일부는 성능이 실전 배치가 가능할 정도가 돼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전쟁 등을) 어떻게 피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런 방법을 모두 구사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있는 상황이다.”

“사드가 자칫 정치적으로 너무 과잉되고,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 때문에 저는 집권 여당 대표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남북 간 긴장을 반드시 완화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때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은 김정섭 저 『낙엽이 지기 전에』에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 추 대표가 이 책의 내용에 관한 개요를 알고 있었던듯하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이 책은 집권세력의 기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사라예보 총격사건 /위키피디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이 책은 수많은 가정을 전제로 논리를 이끌어 나갔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가정법을 사용하면 무리가 온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이 발생했는데, ▲ 오스트리아군이 혐의가 밝혀지지 않는 세르비아를 공격했다 ▲ 러시아가 슬라브 민족주의에 이끌려 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군대 동원령을 내렸다 ▲ 독일 빌헬름 황제가 전쟁을 원치 않았는데 군부의 요구에 이끌려 갔다 ▲ 프랑스가 중립을 선언했으면 전쟁이 확전되지 않았을까 ▲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는 동맹에 이끌려 전쟁에 나가야 했나 등등…

 

역의 논리도 성립한다. 황제국가에서 황태자부부가 살해됐는데, 살해범을 두둔하고 관련성의 개연성이 농후한 나라에 대해 징벌하지 않을수 있을까. 러시아는 동족이 이웃국가로부터 침공을 받는데 전쟁을 피해야 했을까. 빌헬름 황제가 전쟁을 원치 않았다고 했는데, 그는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킨 이후에 확장정책을 취해왔지 않는가. 전쟁을 피하면서 어떻게 확장정책을 유지할수 있나. 프랑스의 중립은 가능한다. 삼국 동맹은 전쟁을 전제로 체결됐는데, 실제 상황에서 이탈이 가능한가.

 

▲ 1916년 베르뎅 전투에 참가한 프랑스 87연대 /위키피디아

 

저자는 1차 대전을 우연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느낌은 유화정책의 관점이 잔잔히 배여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피할수 있었는데 하는 평화주의적 감정에 이끌려 서술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없었으면 1차 대전은 피할수 있었을까. 역사는 가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굳이 가정을 하더라도 전쟁을 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번의 세계대전, 2차 대전에서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은 아돌프 히틀러에 끌려 다녔다. 그는 전쟁을 피하려고 했다. 영국국민들도 전쟁을 피하고 싶어 했다. 전쟁을 원하는 국민이 어디에 어디 있나.

체임벌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거주지역 수데텐을 내놓으라는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프랑스는 체코의 동맹국이었다. 이 비겁한 총리는 영불 해협을 오가며 프랑스로 하여금 체코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설득했고, 체코의 혈맹이라고 부르짓던 프랑스도 체임벌린의 설득과 히틀러의 위협에 굴복했다.

당시 체임벌린과 영국인들의 반응은 가관이다. 체임벌린은 의회에서 “어떤 사정이 있어도 대영제국을 전쟁으로 끌어넣을 수는 없다, 무력 충돌은 악몽이다. 나는 영혼 깊숙한 곳까지 평화 애호가다”라고 외쳤다. 영국국민들은 전쟁을 거부하는 체임벌린총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체임벌린은 연설 후 독일 뮌헨으로 날아가 히틀러와 회담하며 대부분의 요구를 들어주어 평화를 사는데 성공했다. 체임벌린은 영국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선언문을 들어 보이며 “여기 우리시대의 평화가 있다”고 외쳤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에 대해 “그 사나이는 냉혹하지만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며 지지자들에게서 다시 안도의 박수를 받았다. 자신이 마치 대단한 협상가(negotiator)인양 자부했다.

그때 처칠은 “총리의 협상 결과는 전면적 절대적 패배입니다”라고 부르짖었지만, 많은 의원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아야 했다.

 

체임벌린은 2차 대전을 피할수 없었다. 체코는 동맹국이 배신 때리자 여지 없이 무너졌다. 히틀러는 차근차근 유럽을 먹어들어갔다.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마침내 벨기에와 프랑스를 침공했다. 최근 상영된 영화 『덩케르크』는 체임벌린이 막으려 했던 전쟁이 결국엔 발발했고, 그 전쟁으로 인해 영국인들이 격는 수난을 그렸다.

 

『낙엽이 지기 전에』의 저자 김정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국제안보분야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방부, 청와대 NSC 전략기획실, 국가안보실 등에서 한미동맹, 국방개혁, 국가안보전략 분야의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국방부 고위공무원으로 재직중이다.

전문가임은 인정하지만, 시각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유화정책을 할 때도 있지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 전쟁은 우연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누적된 역사적, 정치적 관계의 복합성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빌헬름 황제가 ‘낙엽이 지기 전에 귀국할 것“이라고 한 말은 출정에 나선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말이지 속내를 드러낸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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