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이국(異國)의 골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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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이국(異國)의 골프 문화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8.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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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골프이야기②…골프라는 운동, 원한다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조병수 프리랜서] 우리나라사람들의 골프에 대한 관심과, 골프를 못하면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분위기는 신대륙에서도 여전하였다. 물론 누구나 각자의 형편에 따라 큰 부담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그곳의 골프환경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뉴욕에 도착한 후 처음 몇 개월은 “골프를 못 친다”고 하고 지내다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섭외나 모든 모임의 주축이 되는 골프를 마다하고는 일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고 달려들긴 했지만, 바쁜 일상 중에 틈틈이 짬을 내보아도 혼자서 하는 연습은 발전이 없었다.

 

그래도 왠 일인지 연습장 한구석에서 건성으로 하는 듯한 몇 십 분짜리 개인교습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골프명사들이 쓴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사보기도 했으나, 공은 여전히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날아다니고, 스코어도 늘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경지에 머물렀다.

 

그러면서도, 주말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동료들과 어울려서 괜찮은 퍼블릭골프장을 찾아 다녔다. 겨울철에는 문을 연 골프장을 찾아서, 눈이 내리지 않은 뉴저지 주 남쪽 해안가까지도 내려갔다.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려가서 주머니 난로에 손을 녹여가며 꽁꽁 언 땅에서 공을 굴렸다.

 

선착순으로 내보내는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베스페이지 주립공원 골프장(Bethpage state Park Golf Course)을 이용하려고 뉴저지의 집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하기도 했다. 이 집, 저 집 돌면서 동료들을 태우고 가서 줄을 서있으면, 새벽 4시부터 참석자 4명(foursome) 전원을 확인하며 티-오프 시간을 배정해 준다. 그러면 대개 오전 9시이후로나 배정되는데, 그때까지의 대여섯 시간을 또다시 차 안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그 퍼블릭골프장에는 나중에 두 번씩이나 US Open 개최지가 된 블랙코스를 포함해서 5개의 코스가 있지만, 그곳에서 운동 한번 하려면 “사서하는 고생”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어느 여름날에는, 잠을 설친 채로 꼭두새벽부터 그렇게 웅크리고 있다 보니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전반을 마칠 즈음 혹시나 해서, 정장제와 함께 티 그라운드 옆 펌프의 찬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되려 탈이 나버렸다. 우리나라처럼 중간중간에 휴게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손수레에 실은 골프 백을 각자 끌고 걸어 다니는 곳이었으니···.

 

벌써 사반세기(四半世紀) 전의 일들이지만, 그렇게 밤을 새며 일하고, 잠을 설치고 눈보라를 뚫으며 골프장을 쫓아다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10년전에는 남들의 골프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이, 가로 늦게 그 묘미에 빠져들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골프라는 운동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 사회의 이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다니다 보니 허구한 날 야근에, 때때로 한잔 술에,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바깥으로 나도는데, 좋은 계절의 주말에는 골프라는 복병까지 숨어 있으니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이국(異國)의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성원해준 그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 뉴저저 주 솜머빌에 있는 Fox Hollow Golf Club /사진=조병수

 

그 시절에 선배가 회원으로 있는 골프장이 있었다. 그 선배가 다른 약속이 있는 주말에, 자기 이름으로 예약하고 가서 “한 사람 회원대우 받고 3명의 게스트 요금을 넷이서 나누면 퍼블릭골프장 가는 것과 비슷하다”며 동료들과 같이 가보라고 마음을 써주었다.

예약된 대로 접수를 하려고 혼자서 골프숍으로 들어갔더니, 카운터에 있던 매니저가 “미스터 K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복잡하게 얘기하기도 그래서 그냥 “오고 있다”고 했더니 아무 말없이 계산을 해주었다.

그런데 절차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보니까, 어느 틈엔가 같이 간 동료들이 모두다 그 좁은 골프숍에 들어와서 용품들을 살피고 있었다.

‘회원이 오고 있다고 했는데, 다들 여기로 들어오면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접수도 끝난 터라 그냥 가벼이 넘겨버렸다.

 

그리고는 첫 번째 홀로 옮겨서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계산서 명세를 보았더니, 아무래도 요금 (green fee)이 잘못 계산된 것 같았다. 이야기 들은 대로라면, 한 명 회원대우를 받고 3명 분만 계산되어야 되는데, 더 많이 지불된 듯 했다. 카운터로 달려가서 “계산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대뜸 “미스터 K가 오지 않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매니저는 같이 간 동료들이 들어선 것을 보고는 회원이 오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 4명다 게스트 요금을 받은 것인데, “회원이 오고 있다”고 둘러댄 사람이 오히려 자기 계산대로 되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따지러 간 꼴이 되었으니···. 게스트 요금이래야 20달러 정도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조차도 잊은 채, “아”하는 탄성과 함께 손만 들어 인사하고는 황급히 뒤돌아 섰다.

 

사람이 살면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이유에서건 사소한 거짓말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해프닝이었다.

 

뉴저지 주 중서부 솜머빌(Somerville)의 78번 고속도로 가까이 있던 그 팍스할로우 골프장(Fox Hollow Golf Club)은, 하얀 목책으로 둘러 싸인 목장 길을 굽이쳐 들어가면 조용한 주택가를 끼고 평온하게 자리잡고 있다. 오가는 길가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하면서도 꾸밈없는 코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곳이다.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 오르는 파란하늘아래서 편안하게 푸르른 산하(山河)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여러 해가 흐른 후 다시 미국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골프장을 찾았다.

어느 날 그곳에서, 거동도 크게 자유롭지 못해 보이는 연로(年老)한 부부가 전동카트를 타고 늦은 오후의 햇살을 가르며 한가로이 공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 꾸부정한 노인들이 조용히 서로 챙겨주며 초원 위에 서있는 모습에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란 그림이 떠올랐다. 그런 정적과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오래도록 서로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과, 또 그 연세가 되도록 자신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그렇게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 사회의 여건이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사회도 이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부담 없이 골프라는 운동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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