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농다리 복구, 돌의 각을 잘 맞춰야
상태바
진천 농다리 복구, 돌의 각을 잘 맞춰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10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 역사의 돌다리…돌과 돌을 짜맞춘 선조의 지혜 돋보여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을 가다가 진천에서 차창가를 내려다보면 개천에 돌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진천 농다리다. 충북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 93.3m. 고려 무신란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래된 다리로 꼽힌다.

 

이 돌다리가 지난달 31일 충청도 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크게 유실됐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돌다리도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했다. 하천 수위가 3.5m까지 오른데다 엄청난 이물질이 떠내려와 다리에 걸치면서 교각 돌덩이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지금 농다리엔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크레인이 동원돼 폭우로 떠내려간 돌 수십개를 일일이 찾아내 건져 올리고 있다. 천년 세월을 다시 이어가는 복구작업은 오는 10월에야 마무리될 예정이다.

 

▲ 지난달 말 폭우로 무너진 진천 농다리 복구공사 /KBS 캡쳐

 

필자는 몇 년전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오다가 이곳을 들른 적이 있다.

1m가 넘는 돌을 들어올려 교각을 쌓고, 교각과 교각 사이를 평평한 돌을 놓아 길게 이었다. 교각에는 듬성듬성 구멍이 뚤려 그 틈새로 물이 흘러간다.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는 소리도 난다. 큰 돌을 쌓아 그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이 엉성한 다리가 어떻게 천년을 버텼을까, 궁금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엉성하게 보이지만 치밀하게 쌓았다. 돌의 각이 하나하나 정밀하게 맞아 떨어졌다. 각과 각이 맞아 비틀림을 방지했고, 돌 틈새로 물이 흐르도록 해 수압을 약화시켰다.

어려서 시골에서 살 때, 태풍으로 인한 엄청난 홍수로 냇가 주변의 가옥 담장이 여기저기서 무너진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벽돌로 지은 담장이 거의 다 무너지고, 돌담은 하나도 무너지지 않은 것이었다. 벽돌 담장보다 돌담이 더 강했음이 입증된 것이다. 벽돌 담은 물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수압을 이겨내지 못해 무너진데 비해 돌 담은 물이 담 사이로 빠지면서 수압을 견뎌 낸 것이다. 당시 공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더니, 돌을 각에 맞게 차곡차곡 쌓으면 웬만한 콘크리트보다 강하다고 했다. 그후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화산암으로 쌓은 제주 돌담이 삼다도의 거센 해풍을 이겨내는 원리를 이해하게 됐다. 진천 농다리도 그런 원리였다고 생각한다.

 

농다리엔 우리 선조들의 건축 기술과 지혜가 담겨 있다.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쌓되, 속을 채우지 않았다. 교각의 폭은 대체로 4~6m 범위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설계했다.

작은 돌로 다리를 쌓았지만 웬만한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상판석의 돌은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축조 기술은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다.

농다리는 한자로 농교(籠橋)라고 한다. 농(籠)은 ‘대바구니 농’이다. 대바구니는 쪼갠 댓가지를 얼기설기 짜서 만들고 구멍이 숭숭 뚤려 바람이 드나든다. 그래서 곡식을 그 안에 넣고 말린다. 농다리도 돌을 얼기설기 놓아서 물이 숭숭 빠져 나가도록 했다.

장마 때는 물이 다리 위로 넘어간다 해서 수월교(水越橋)라고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듯한 형상이라 하여 지네다리라고도 한다. 겨울 저녁노을이 질 때 다리에 눈이 쌓인 설경은 ‘농암모설(籠岩暮雪)’이라 하여 진천 8경으로 꼽힌다.

 

농다리는 고려 고종때 권신인 임연이 지었다고 한다.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 아침, 임연(林衍) 장군이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다가 강 건너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일로 내를 건너려 하는 게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

임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성을 딱하게 여겨 즉시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농다리를 놓아서 부인이 발을 적시지 않고 내를 건너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을 실어 나른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고, 이때 용마의 고삐가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원래는 길이가 100m 이상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길이 93.6m, 너비 3.6m, 두께 1.2m, 교각 사이의 폭 80㎝ 정도다. 당초 28칸의 교각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양쪽 2칸씩이 줄어 24칸만 남아 있다.

행정 주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그 밑을 흐르는 강은 세금천(洗錦川)이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으면 이 농다리가 며칠씩 운다고 한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상산 임씨의 집성촌이다. 고려 때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지역을 가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다리라고 하지만 폭우가 내리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일부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큰 물이 나면서 무너졌다.

 

어느 복원사업자에게서 들은 얘기다. 옛날에 사용하던 봉화 터가 오래전에 무너져 주변의 돌을 모두 걷어 복원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이리저리 맞추어도 돌의 각을 맞추지 못해서 완벽하게는 복원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이번 농다리 복원 작업에 중장비가 동원되고 현대식 기술자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돌의 각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

 

▲ 진천 농다리 /사진= 김인영
▲ 진천 농다리 /사진=김인영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