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청자' 이병철과 '백자' 이건희…'어느 수집가의 초대'展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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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청자' 이병철과 '백자' 이건희…'어느 수집가의 초대'展을 가다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5.27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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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기증 1주년 2만3000여점 중 335점 엄선
4월28일부터 8월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
어느 수집가의 집 앞뜰을 표현한 고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展 모습. 사진=박대웅 기자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수집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8월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선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후 유족이 기증한 수집품들이 전시된다. '故 이건희 콜렉션 기증' 1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콘셉트로 일반 관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만3000여점의 기증품 중 엄선한 355점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준비하고 광주시립미술과, 대구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이 같이 출품했다.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대(代)를 이어 수집에 시간과 정성을 쏟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사진=박대웅 기자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전시는 수집가의 집을 형상화해 관람객을 초대하는 형식을 취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수집가 집의 앞뜰, 거실과 작가의 방, 정원 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공간 구성이 돼 있다. 그리고 전시관 벽면 한켠엔 "우리 나름의 문화 정체성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문화는 좋고 나쁜으로 우열을 논할 수 없다. 단지 다름 뿐이다" 등 평소 미술품 수집에 있어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던 생각들이 엿볼 수 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에서 처음 공개되는 다산 정약용의 서예작품 '정효자전'(위)과 '정부인전'. 사진=박대웅 기자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차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차향과 함께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는 다산이 쓴 서예작품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이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인간'과 '삶의 지혜'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다산이 강진 유배 중 마을 사람 정여주의 요청으로 쓴 두 편의 글로 '정부인전'은 다산의 문집 '여유당전서'에도 수록되지 않아 그 내용도 처음 공개된다. '정효자전'은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정여주의 아들 정관일이 생전에 효행을 기록한 작품이고, '정부인전'은 홀로 남은 정관일의 부인이 엄격하게 아들을 양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 한 유배지 어느 주민의 마음에 공감한 다산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 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다산의 작품 이외에도 곳곳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다산의 이야기를 지나 눈길을 사로 잡은 건 '수집장'이다. 백자나 청자, 희대의 명화 등이 즐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시회 한 공간을 가득 채운 수수한 수집장은 생경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시회 관계자는 "수집장은 수집자의 안목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면서 "수집장 중 일부는 왕실에서 쓴 것도 있지만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도 있다'고 귀뜸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얼마나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려 노력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어렵고 비싼' 미술품이 아닌 미술품 그 자체의 가치에 주목한 '수집가' 이건희인 셈이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에 전시된 백자(왼쪽)와 청자 모습. 사진=박대웅 기자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수집가의 집을 지나 본격적인 수집품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라는 주제로 기획된 전시는 모두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두 번째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세 번째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네 번째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을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첫 번째 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산수화와 현대 회자, 두 번째 공간은 토기와 도자기, 금속공예품 그리고 세 번째 공간은 불교미술과 전적류, 네 번째 공간은 개인의 주체적 각성을 다룬 작품으로 채웠다. 

주목할 건 한 작가의 작품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닌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문화재와 미술품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이다. 강요배 작가의 '홍매'와 분청사기를 나란히 배치했고, 화려한 색감의 '십장생도 병품'과 생명력을 담은 김흥수 작가의 '작품'을 같이 배치해 조선과 현대를 아우르는 생명력을 전달했다. 하이라이트는 겸재 정선이 그린 국보 '인왕재색도'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교과서 삽화로만 보던 '인왕재색도'의 실물 앞에 한 동안 발을 뗄 수 없수 없고, 모네의 대표작인 '연못' 시리즈를 가까이 서 본 감동도 잊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수월관음도 모습. 사진=박대웅 기자 

불교미술과 전적류를 전시한 세 번째 공간도 인상적이다. 범종의 은은한 타종음이 귓전을 때리는 동시에 쉽사리 독해는 할 수 없지만 선조들의 지혜를 담고 있는 문서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작품들을 보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다.  백남준 작가의 미디어 아트로 마침표를 찍은 네 번째 전시 공간 역시 현대적 감각과 '나'라는 존재를 되새김해 볼 수 있는 주체적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선사시대 토기(맨 왼쪽 위)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다양한 자기 모습. 사진=박대웅 기자 

이번 작가는 고 이건희 회장 때 수집한 작품부터 선대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 수집한 작품도 일부 전시됐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부자(父子)'의 성격을 극명하게 대비한 청자와 백자를 함께 전시한 부분이었다. 고 이건희 회장은 생전 백자의 진위 여부를 감별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조예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백자를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백자수업을 따로 들었을 정도로 백자를 사랑했다. 반면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은 '청자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전시는 고 이건희 회장의 문화사랑 정신을 전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고인은 2004년 10월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중섭의 '소'. 사진=박대웅 기자
박수근의 '아이업은 소녀'. 사진=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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