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알린 美 특파원의 집 ‘딜쿠샤’ 문화재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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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알린 美 특파원의 집 ‘딜쿠샤’ 문화재 등록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08.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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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1운동 100주년 맞아 개방 예정

 

일제 강점기에 서울에서 미국 특파원으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저택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됐다. 일명 행촌동 ‘딜쿠샤’라고 불리는 저택이다.

문화재청은 8일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를 비롯해 「경기도청사 구관」, 「경기도지사 구 관사」,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석고상)」 4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 ‘딜쿠샤’ 외관 /문화재청

 

앨버트 테일러(Albert W. Taylor, 1863~1949)는 일제강점기에 UPA 통신사(현재 미국 통신사 UPI의 전신) 특파원으로 서울에 근무했다. 그는 금광 기술자인 아버지와 함께 1896년 한국에 들어와 은산금광 직원으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사업을 하면서 UPI 특파원을 겸임했다.

▲ 앨버트 테일러 /문화재청

테일러는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타전함으로써 3·1운동을 세계만방에 알린 인물이다. 이후 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스코필드,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을 항의 방문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도왔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테일러 일가족은 가택 연금 상태에 들어갔고, 이듬해 5월 조선총독부의 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광복 직후인 1945년에는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찾기 위하여 美군정청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기도 했다. 1948년 6월 29일 미국에서 73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는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이송돼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됐다.

그가 한국에 살던 집은 독립문과 사직터널 근처 언덕배기에 있다. 이름하여 「딜쿠샤」(Dilkusha)다.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가옥으로, 총면적 624㎡에 이르는 붉은 벽돌의 장방형(사각형) 평면을 가진 서양식 2층 대저택이다. 건축적 가치도 있다.

‘딜쿠샤’라는 명칭은 테일러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의 뜻에 따라 붙인 것. 인도어로 '기쁨, 이상향'을 뜻하며, 인도 북부 러크나우 지역 곰티 강 인근에 자리잡은 딜쿠샤 궁전에서 따왔다고 한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 89.

이 집은 1926년에 낙뢰 화재로 손상되기도 했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테일러 일가가 추방된 뒤 자유당 의원 조경규가 소유했지만, 5·16 후 그가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을 몰수당해 현재 정부(기획재정부 산하 캠코) 소유로 되어 있다.

이 가옥은 1995년부터 서울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 및 박물관 조성이 추진되어 왔지만, 건물 기초에 새겨진 'DILKUSHA 1923'이라는 명문의 진위를 밝히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2월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한국을 방문해 이 집에의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 브루스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고, 소장하고 있던 서울 사진 17점을 서울특별시에 기증했다.

지난해엔 브루스의 딸 제니퍼 테일러(Jennifer L. Taylor)가 방한해 조부모의 유품과 딜쿠샤 거주 당시 소장품 등 총 394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중에는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딜쿠샤 내부 사진이 있어 딜쿠샤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딜쿠샤를 원형으로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민간에 개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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