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끝, 한반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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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끝, 한반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 황헌
  • 승인 2017.07.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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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헌 MBC 앵커 /페이스북

 

“중국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없어지는 걸 걱정합니다. 그래서 연신 도발만 해대는 북한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전 미 국무장관 키신저는 따라서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중국에 약속하면 중국도 북핵 해결에 나설 거라고 트럼프 정부에 조언했다고 합니다.”

 

오늘 뉴스를 마치면서 끝말로 덧붙인 코멘트입니다. 사실 이 내용은 오늘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인용한 글이다.

신문은 지난 금요일 밤(한국 시각) 북한이 ‘화성-14형’ ICBM을 발사한 이후 뉴스를 종합 분석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북의 시험 이후 남한 독자 미사일 체계 구축에 나서’라는 제하의 기사 가운데 들어간 내용이 바로 키신저의 조언이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금요일,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열었던 주역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좀 더 강력한 스탠스를 취할 수 있도록 중국에 확신을 주는 새롭고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트럼프 정부에 강하게 주장했다.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에 대해 중국과 미국이 사전에 합의만 잘 하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라고 키신저는 강조했다. 그 합의(agreement)는 바로 “북한이라는 완충지역(the buffer)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공포를 갖고 있는 중국을 안심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키신저는 그러면서 “그것은 곧 대다수의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키신저는 이 내용을 자신의 40년 후배 장관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다수의 고위 관료들에게 강조했다고 <뉴욕타임즈>는 보도했다.

 

▲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캡쳐

 

키신저의 조언을 의식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에 대한 불만과 압박 메시지를 날렸다.

“난 중국에 매우 실망했다. 우리의 바보 같은 과거 지도자들(오바마 등을 의식)은 한 해에 수천억 달러의 교역을 중국에게 허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위해 북한에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단지 말뿐이었다. 미국은 더 이상 이런 상황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쉽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 트위터 정치를 보고 국내 주요 신문들은 ‘열 받은 트럼프, 中에 통상압박 시사’ 등의 기사를 통해 이제 중국에 대해 트럼프가 무역 보복 등 경제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전망하는 기사를 냈다. 물론 북한에 대한 직접 군사 행동 가능성보다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상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시야를 심플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작년 1월 북한이 핵실험 도발을 강행했을 당시 필자는 한 세기 전 조선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상황과 작금의 환경이 유사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1. 북한에게 핵은 전부이다. 핵탄두 개발은 완성 단계이고 그걸 운반하는 수단이 바로 ICBM이다. 그게 완성됐다는 걸 과시하고 국제사회로부터 핵과 ICBM을 보유한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아야만 존속할 수 있다고 믿는 집단이다. 지위 인정과정에 남한은 불필요한 존재다. 곧바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으로 지위를 보장받겠다는 게 북의 생각이다.

2. 미국에게 북한보다 더 중요한 건 중국 견제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조해왔지만 어디까지나 G2의 지위에 오른 중국을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견제하는데 효율적인 범위에서만 유효한 동맹일 뿐이다. 6.25가 발발하게 만든, 김일성의 오판이 나오게 만든 것도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1950년 1월에 나온 애치슨 라인)에 기인한다. 미국은 여차하면 남북한 인구 다수의 희생을 부를 수도 있는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3. 중국은 현재와 같은 남북 분단 구도를 선호한다. 1953년 이후 중국은 두 개의 한국이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 공산주의 초강대국 성장을 완성했다. 마오쩌뚱(毛澤東)은 맥아더가 만주 지역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중국에게 김씨 세습 정권이 지배해온 북한은 최상의 효율적 완충지대였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게 써먹고 싶어 할 것이다.

4. 러시아는 대미 견제를 위해 중국과 공동보조를 취한다. 북한은 러시아 입장에선 맘에 하나도 들지 않지만 미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완충지대적 성격으로 기여하는 측면에선 중국과 속내가 같다. ICBM 성능이 확인됐는데도 ICBM이 아니라며 유엔 제재를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1971년 죽의 장막을 뚫고 베이징으로 마오쩌뚱을 찾아가 비밀리에 미중 핑퐁외교의 문을 연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그는 지금부터 8년 전인 2009년 6월 3일자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북한의 도전에 대해 과소평가한 것도 모자라 거의 ‘한가한 방법(almost leisurely manner)’으로 대응했다고 비난했다.

키신저는 1972년 자신이 모시고 있던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1978년 미국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수교한다. 대신 미국과 대만은 국교를 끊었다. 그 미-중 수교교섭을 지휘한 키신저는 그때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중국 지도부가 가진 생각은 ‘완충지대(buffer zone)’로 이용 가치가 높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없는 경우 주한미군이 압록강 경계까지 레이더기지를 비롯한 첨단 장비를 배치해놓고 중국을 감시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그들 중국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에겐 최고의 공포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오늘 현재 사드에 대해 이토록 강력하고 줄기차게 반대하는 이유도 그와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북한 정권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특징을 지닌 국가로 변해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후견과 두둔이 있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키신저는 그래서 틸러슨 국무장관 등 트럼프 정부 최고위 집행부에게 이제 새롭고 차원이 다른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중국이 가진 공포의 근저에 있는 주한미군의 실체를 갖고 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키신저의 이런 판단엔 상황변화에 대한 현실인식이 존재한다. 바꿔 말해 이미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 보유의 끝마무리 단계에 와있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는 많지 않다. 그건 미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김정은이 국제사회에 ‘에햄~’하고 나타나 ‘미국, 너거 아직도 날 모르겄냐? 인자 함 너 죽고 나 살고 맞장 뜨려면 떠봐야~’라고 나오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키신저는 중국의 가장 큰 공포의 씨앗을 협상 테이블로 올려놓고 중국을 설득하라는 것이다.

 

마침 오늘자 중앙일보 8면엔 아시아 태평양 안보 이슈 전문가인 휴 화이트 호주 국립대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다. 화이트 교수는 한마디로 중국은 북한의 ICBM 보유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나라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미국이 이야기하는 대북 송유관 단절 같은 조치는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바라는 중국이 어떻게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세 마디 키워드로 상황은 압축된다.

첫째, 북한은 핵보유국을 지향한다. 거의 다 왔다.

둘째, 중국은 한반도의 미국 영향력 약화를 원한다.

셋째,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이익과 미국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그런 조언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정치는 현실이다. 현실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결정된다. 키신저의 조언대로 미국이 중국을 설득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게 한 뒤 주한미군이 철수한 다음의 한반도는 누가 지배하는가? 서글프게도 그 뒤엔 중국이 기득권을 주장할 것이고, 불안한 일본은 미국을 부추겨 또 다른 대립전선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구경만할 거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북핵 해결 과정에 숟가락을 얹는 수준이 아닌 중국과 같은 영향력과 지분 행사를 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핵과 ICBM 보유를 싫어하지 않아 하는 중국, 나아가 러시아의 속내와 지난 60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천사를 잠시 생각해 본다. 이럴 때 남한 사회만이라도 북에 대한 시각, 사드 배치에 대한 생각,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 일본과의 외교 지향점 등에 대해 이견이 적으면 그나마 좋겠지만 그 또한 요원한 꿈이다. ‘8월 한반도 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다. 하늘에 드리워진 짙은 구름이 7월의 마지막 한반도를 더욱 어둡게 짓누르고 있다. /황헌 MBC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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