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속이론⑥] 미국 돈, 썰물처럼 멕시코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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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속이론⑥] 미국 돈, 썰물처럼 멕시코 이탈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27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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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단일시장 형성 후, 21세기형 첫 공황…IMF에 손 내밀어

 

1995년 멕시코 페소화 폭락의 원인이 무엇일까. 정치불안 때문일까, 시장 개방 때문일까.

정치 불안은 경제 위기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어도 하루아침에 통화가치가 수직 하강하는 파멸을 몰고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 개방이 주요원인이었는가. 글로벌 시대에 시장 개방이 국제 자본시장의 논리다.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는 모두 파국적인 경제 침체를 겪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멕시코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웃나라인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1994년초부터 95년 1월까지 7차례에 걸쳐 3%에서 6%로 두배나 인상했다. FRB는 국내의 인플레이션 조짐을 제거하기 위해 사전에 금리를 인상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 전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유동성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됐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멕시코에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사실 1990년대초 멕시코 경제를 부흥시켰던 원동력은 뉴욕 월가의 자본이었다. 페소화 폭락의 주범으로 찍혀 국외를 전전하던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등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자유주의 경제론자였다. 그들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철철 넘치는 미국의 유동성을 끌어들여 멕시코를 발전시키려 했다.

미국은 멕시코의 번영을 자신의 공으로 생각했다. 인접 미국의 번영이 멕시코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고 착각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캐나다와 함께 멕시코를 하나의 경제권, 즉 자유무역지대로 만들기로 구상하고,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결성했다.

1990년대초 멕시코 경제 붐은 금융 부문에 한정됐다. 예컨대 미국 국채(재무부 채권)를 사면 연간 5~6%의 수익을 얻는데 비해 멕시코 채권은 12~14%의 수익을 보장했다. 미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미국의 단기자본은 고금리를 보장하는 멕시코로 대거 넘어갔다. 멕시코 은행도 저리의 미국 달러를 흥청망청 빌려 썼다. 그렇다고 멕시코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고용이 증대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미국의 유동성이 멕시코에 건너와서 놀았기 때문에 멕시코 시티의 볼사(Bolsa) 주가는 3년만에 세배로 뛰었다. 월가의 뛰어난 펀드매니저와 멕시코 은행 중에서는 연간 80~100%의 수익을 올리는 재주꾼도 있었다. 얼간이 같은 투자자는 이러한 번영이 영원히 갈 줄 생각했다.

그러나 멕시코 경제는 미국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파괴되고 말았다. 월가의 돈이 멕시코 경제 발전을 위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이문이 남지 않으므로 멕시코로 갔던 것인데, 미국 중앙은행이 1년전보다 두배의 이윤을 보장해 주겠다는데 멕시코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정치도 불안한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멕시코에 남아있겠는가.

외국인 투자자, 엄밀히 말하면 미국 투자자들은 94년말 멕시코에 투자한 돈 중 250억 달러를 빼내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대규모 자금 이동이 컴퓨터 키보드 조작 하나로 끝났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국내의 부족 외환을 메우기 위해 비상금으로 확보하고 있던 지하창고에서 보유 외환을 꺼내 풀었다. 중앙은행은 페소를 달러에 묶어놓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해왔으나, 더 이상 페소화 폭락을 방어할 재간이 없었다. 살리나스 대통령의 뒤를 이은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12월초 멕시코의 외환보유고는 61억 달러로 마침내 바닥을 들어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더 이상 멕시코의 채무이행 능력을 의심하고 자금 회전을 중단했다.

신정부는 12월 22일 더 이상 대외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음을 공식선언하고, 이듬해 1월 페소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1달러당 3.45 페소였던 환율이 이듬해 1월 10일 5.78 페소로 66.7%나 절하됐고, 주가는 40%나 폭락, 경제는 일거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멕시코 위기는 국제 금융자금, 좁게 말하면 뉴욕 월가의 투기자금이 이윤을 쫓아다니며 움직이는 머니게임의 산물이다. 멕시코의 번영은 환상에 불과했고, 환상이 깨지면서 멕시코는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이다.

패닉은 멕시코에만 그치지 않았다. 남미에 투자된 자금이 동시에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1995년초 라틴아메리카 주식시장이 두달 사이에 38%나 폭락했다. 이른바 ‘데킬라 효과(Tequila Effect)’다. 멕시코인들의 술을 ‘데킬라’라고 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경제가 일제히 데킬라를 마신 것처럼 휘청거렸다.

 

▲ /그래픽=김인영

 

21세기형 첫공황

 

멕시코 위기가 터지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재무부 부장관은 ‘21세기의 첫 공황’이라고 표현했다. 그 뜻은 무엇일까. 국제 금융시장은 이미 단일 시장이 됐고, 단일 시장의 첫 공황으로서 멕시코 위기가 등장했다는 뜻이다. 미셸 캉드시(Michel Camdessus) IMF 총재는 “멕시코의 금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제에 대재앙이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소화 방어를 포기하고부터 멕시코의 비극은 시작됐다. 세디요 대통령이 처음으로 내세운 대책은 중앙은행, 노동자, 농민, 재계 대표들을 불러 모아 ‘경제안정 비상대책위원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1월 3일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 억제를, 기업에는 가격 인상 억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중앙은행에 대해서도 공공지출 및 통화 증발을 자제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는 제도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밝혔다. 사회 각 계층이 자기 밥그릇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로 고통을 분담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임금 억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금융 시장은 대책 발표 이전보다 악화돼 공황상태로 빠져 버렸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는 멕시코에 대한 신인도를 하향 조정했고, 테소보노(달러표시 해외채권)의 발행이 좌절됐다.

미국은 IMF를 내세워 멕시코에 개입했다. 멕시코를 돕자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사실은 멕시코에서 투자한 월가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잘못된 투자를 한 금융인은 손해를 보아야 한다. 시장은 투자자의 잘못을 처벌한다. 그게 금융시장의 논리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는 자국의 자본이 멕시코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점검할 겨를도 없이 IMF를 동원 멕시코 지원을 결정했다. 금액도 무려 500억 달러로 IMF 지원 사상 최대규모였다. 이번이 마지막 지원이라는 말도 주석으로 달았다. 그러나 이 보다 많은 금액이 2년후 한국에 지원됐지만...

 

▲ /그래픽=김인영

 

IMF 구제금융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은 미국 정가를 뒤흔들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멕시코에 대한 지원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멕시코에 대한 긴급 수혈을 감행, 낙엽처럼 떨어지던 페소화 폭락을 일단 진정시켰다. 미국 재무부 관리들은 보란 듯이 자랑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No Free Lunch)’는 말이 있다. 특히 국제금융 사회에서는 이 말이 진리에 해당한다. 미국 재무부와 IMF는 긴급 수혈을 해준 채권자로서 멕시코 경제의 거시정책을 쥐고 흔들었다.

미국 재무부와 IMF는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한 거시경제 정책을 멕시코에 주문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을 저지하기 위해 고이자율 정책을 유지하고, 시중은행의 대출을 통제했다. 또 멕시코 정부로 하여금 예산을 삭감하고 세금을 늘려 흑자 재정을 유지하도록 요구했다.

불황기에 경기를 진작시키려면 정부가 적자 재정을 시행해야 한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거나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냄으로써 경기 활성화 정책을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금리를 낮추도록 거시경제를 운용해야 하며, 은행으로 하여금 자금 공급을 확대토록 해야 한다. 그러나 IMF의 처방은 돈을 빌려준 자로서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고금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멕시코에 투자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멕시코 국내 기업들은 높은 이자에 허덕였고, 그나마 돈줄이 꽁꽁 막혀 부도 사태가 줄을 이었다. 정부도 미국과 IMF의 눈치를 보느라 경기 부양책을 운용하지 못했다.

멕시코 정부는 페소 위기를 맞아 다른 선택의 길이 있었다. 즉 국가비상사태를 발동, 외환 유출을 통제하고, 유입되는 외화에 대해 고금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물론 외국 통화와 국내 통화 사이에 이중 이자율이 적용되는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국가비상사태에는 용납되는 일이었다. 멕시코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당시 이 방식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지만, 세디요 대통령은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그 스스로가 미국 동부의 명문 예일대에서 공부하면서 자유시장 경제이론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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