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식-조말수 체제 붕괴②…김만제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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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식-조말수 체제 붕괴②…김만제 시대 개막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25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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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 내부에서 경영진이 나오는 원칙이 무너지고 경제 관료가 회장직 맡아

 

1994년 3월 8일 오후 3시 포철 회장과 사장에 대한 이취임식이 열렸다.

정 회장이 이임사를 읽어내려갔다.

󰡔지금은 여기 계시지 않은 선배들, 그리고 여러분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포항 광양제철소의 성공적인 건설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일은 저로서는 더 없는 기쁨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이제 한시대를 마감하며 떠나는 자리에 서고 보니 성취한 일보다 남겨두고 가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비록 떠납니다만 4반세기 동안 제삶의 터전이었던 포항제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 가운데 「여기에 계시지 않은 선배들...」이란 표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1년동안 일본에 망명객처럼 살아가고 있는 박태준 전회장을 말하는 것이리라. 가뜩이나 새해 벽두에 몰아닥친 정 회장의 조 사장에 대한 견제를 「박태준 측근의 친위쿠데타」라고 해석하는 마당에 정 회장이 한 이 구절은 그렇게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김만제 신임 회장이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저녁 늦게 통보를 받아 취임사를 준비를 못했습니다. 앞으로 일을 같이 하면서 얘기할 기회는 많을 것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변화를 주도하고 스스로 그 물결에 뛰어드는 자에게 주인공 자리를 허락했습니다. 시대적 사명과 책임 앞에 몸을 도시리지 않고 개혁과 변화에 당당할 때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회장에 이어 김만제라는 새로운 인물이 포철의 최고 총수를 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김만제 신임회장은 가까스로 이·취임식에 맞춰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 상오 자택을 출발했던 그가 포항에 도착했던 것은 무려 오후 2시. 날씨로 인한 비행기 이착륙 차질로 그는 부산에 갔다가 그곳에서 승용차 편으로 포항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김 회장은 하오 1시에 있었던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한 채 대표이사 회장으로 추인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어 사장 이임식에서 조말수 사장이 이임사를 읽어 나갔다. 조 사장의 이임사는 정 회장과의 갈등을 책임지고 서울의 기업문화부장 자리에서 물러나 광양제철소로 내려간 권혁수씨가 대필했다. 권씨는 박태준 회장 시절부터 최고경영진의 연설문을 도맡아 대필하는 포철 내에서는 드믄 필사로 평가받고 있었다. 조 사장은 권씨로부터 팩스로 이임사 원고를 받고나서 「회장님」 등 듣기 거북한 표현을 북북 지워버리고 연단에 올라섰다.

󰡔후임 사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채 떠나는 나는 마치 짝 잃은 거위 같은 생각이 듭니다. 30대초에 포스코에 동승한 저는 그동안 분에 넘치는 영광과 보람을 누렸습니다. 이는 신의 가호와 회사선후배 여러분의 뜨거운 보살핌 덕택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능력과 덕이 모자랐으나 포스코의 부름에 순응하여 젊음과 꿈을 남김없이 불태울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면서 물러갑니다.󰡕

조 사장의 눈가에 눈물이 스쳤다. 조 사장의 눈물서린 회한은 각별하다.

한해 전 주총에서 사장에 오른 이후 1년 동안 그는 이른바 「박태준 흔적 지우기」와 「신포스코창조」에 총대를 멨던 사람이다. 그는 포철과 자회사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던 박태준의 인맥과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 칼에 걸리면 누구나 여지없이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한땐 그 의욕이 자만심으로 이어져 정명식회장과 그의 추종세력의 반발을 샀고 그 불화로 인해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 비극의 순간에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강능력(鋼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프랑스의 유지노사실로社를 제치고 일본의 新日本製鐵에 이어 세계2위의 철강회사. 對日청구권자금 1억달러로 출발해, 25년만에 우리나라를 세계7위의 철강강국으로 부상시킨 회사. 자동차, 조선, 전자, 컨테이너, 건설, 기계등 산업 전반에 질 좋은 기초소재를 공급해 이들 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데 원동력이 된 회사.

이런 포철이 정부가 34.7%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하룻밤 새에 경영진이 전격 교체되는 격변을 겪고 말았다. 포철에 밀어닥친 대지각변동은 1993년 3월 12일의 주총에서 박태준씨(당시 명예회장)가 물러난지 두번째다. 첫번째 지각변동은 포철에 의한 박태준 측근의 제거라면, 두번째 지각변동은 포철 출신이 아닌 외부인물이 포철의 총수자리에 오른 것이 특징이다.

김만제 회장이 포철총수로 등극하자 포철 내에는 어수선했다.

󰡔정 회장과 조 사장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는 등 나름대로 경영성과가 인정돼서 두 사람중 한사람은 유임될 줄 알았는데...󰡕

󰡔4반세기 동안 지켜온 포철의 내부인사 원칙이 깨지고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으니, 이제부터는 전직관리나 정치인들이 간부자리에 줄줄이 들어앉는 것 아닌가...󰡕

󰡔김만제씨가 5共 시절 재무부장관을 할때 인사에는 칼 같다고 하던데, 포철에도 대대적인 인사바람이 부는 것이 아닌가...󰡕

언론은 물론 재계의 반응 또한 비판적이었다.

「정부가 김 전부총리를 영입, 포철 사상 처음으로 낙하산 인사를 단행한 것은 박태준 전회장의 인맥과 경영스타일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공기업인 포철이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과거처럼 개인에 의한 경영을 방임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직할 하에 두기 위한 것이다.」

「포철내의 박태준 뿌리를 한꺼번에 차단하기 어려우므로, 과도적으로 정명식-조말수의 체제에게 1년간 맡겨놓은 것인데, 이제는 그 유예기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런 비판과 함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단어가 언론지상에 떠올랐다. 이 말은 「토끼를 잡으면 토끼를 잡으면 더이상 용도폐기된 사냥개를 잡아서 삶아먹는다」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김영삼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대선기간 손잡았던 동지를 개혁의 도마 위에 올리면서 유행했던 단어다. 즉 정명식-조말수체제는 박태준을 제거하기 위해 개혁정부가 1년동안 이용했던 대상이고 이제는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졌으니 퇴진시켰다는 해석이다.

김만제 회장의 등장에 대한 당시의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기개 같은 것도 포철 내외에서 흘러나왔다. 즉 정치인 출신이 포철 최고사령탑에 오르는 것보다 경제를 아는 사람이 왔다는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 정치인 출신이 포철을 무슨 꿀단지로 알고 정치자금을 마련하려기 위해 포철을 넘보았던 적이 있었다. 어차피 외부인이 들어올 바에야 경제를 알고 포철의 기업적 속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낫다는 게 포철사람들이 「불행중 다행」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김만제의 등장이 포철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라면, 이 필연에 직접적 동기로 작용한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전임 박태준 회장이 주인 없는 정부 회사를 25년이라 기나긴 세월 동안 경영을 했고, 마지막 판에는 대권 도전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어 오명을 남겼지 않은가. 그리고 포철은 조강생산능력 2천1백만톤 체제의 구축을 완료, 경영에서 질적 변화를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무언가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적으로 충격이 가해져야 하는 필요성을 포철 사람들은 물론 대주주인 정부도 느끼고 있었다. 이 필요성의 인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사장 간의 갈등이었다. 그들의 갈등은 최고경영진에 오를 때부터 내재해 있었던 일이나, 사건의 발단은 94년 정초 시무식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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