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마린 르펜, "극우 존재감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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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마린 르펜, "극우 존재감 끌어올렸다"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2.04.2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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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후보는 극우라는 거부감 때문에 주류에 속해본 적 없는 자신의 정치 세력을 프랑스 현대 정치사를 양분해온 기성 정당을 능가하는 존재로 부상시켰다. 사진=EPA/연합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후보는 극우라는 거부감 때문에 주류에 속해본 적 없는 자신의 정치 세력을 프랑스 현대 정치사를 양분해온 기성 정당을 능가하는 존재로 부상시켰다. 사진=EPA/연합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44) 대통령과 대선 '리턴 매치'에서 고배를 마신 마린 르펜(53) 국민연합(RN) 후보에게 극우 존재감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우라는 거부감 때문에 주류에 속해본 적 없는 자신의 정치 세력을 프랑스 현대 정치사를 양분해온 기성 정당을 능가하는 존재로 부상시킨 것이다.

지난 2017년과 2022년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우파 공화당(LR)과 좌파 사회당(PS)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는 르펜 후보가 중심에 있는 RN이 둥지를 텄다.

이번 대선 1차 투표에서 공화당 후보 득표율은 5%, 사회당 후보 득표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해서 결선 투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르펜 후보도 24일 오후(현지시간)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득표율 자체만으로 "눈부신 승리"라고 자평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2017년에 이어 극우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에 두 번 연속 진출한 르펜 후보는 5년 만에 득표율을 7∼8%포인트 오른 41∼42%로 끌어올렸다.

르펜 후보가 이렇게 늘어난 지지층을 기반 삼아 6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의석을 늘릴 수 있을지 이목이 쓸린다. 2017년 대선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RN은 하원 의석 577석 중 8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17년만 해도 마크롱 대통령과 배 가까운 득표 차로 패배한 르펜 후보는 이번엔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여 마크롱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해야 했다.

5년 전 대선 결선에서도 패배하기는 했으나 르펜 후보의 아버지이자 '원조 극우'의 아이콘인 장마리 르펜이 2002년 결선에 진출했을 때보다 배가 넘는 득표율을 얻어내는 성과를 이뤘다.

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 후보로 2002년 다섯 번째 대선에 도전한 장마리 르펜은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6.9%로 2위에 올라 확보해 처음으로 결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당시 2차 투표에서 득표율 17.8%로 연임에 도전한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대패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2012년 대선에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던 르펜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7.9%로 3위에 그쳐 낙선했다.

2017년 대권에 재도전했을 때는 득표율 21.3%로 1위를 차지한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결선에 올랐다.

겉으로 보기에 아버지에게 당을 물려받은 모양새지만 이렇게까지 지지 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1년 당권을 잡고 나서 2015년 아버지를 당에서 내쫓는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RN을 대중 정당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프랑스에서 '악마'와 같은 극우 이미지를 지우려고 노력해온 르펜 후보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종교, 인종 등 논란을 일으킬만한 발언도 자제했다.

그간 세간에 공개하지 않았던 가정사와 같은 사생활도 언론에 공개하면서 소셜미디어(SNS)로 소통하면서 친근하고 온화한 이미지 구축에 힘썼다.

2017년 대선 때와 달리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거나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폐기하고 유럽에 남아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TV 토론에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노출했던 르펜 후보는 5년 뒤 TV 토론에서는 경쟁자 마크롱 대통령을 칭찬하는 노련함도 보여줬다.

이런 노력에도 르펜 후보가 영국처럼 프랑스도 EU를 떠나는 이른바 '프렉시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지 않은 유럽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총리가 결선을 앞두고 일간 르몽드에 유럽의 이름으로 르펜 후보를 뽑지 말아 달라고 기고한 글은 유럽의 걱정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정치적 명운이 달린 선거가 있으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내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외교적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프랑스 대선뿐 아니라 유럽 정계에 르펜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방증이다.

파리에서 근무하는 중부 유럽 국가 출신의 한 외교관은 르몽드에 르펜 후보의 당선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영국의 EU 탈퇴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르펜 후보는 프랑스법이 EU 규칙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EU가 초국가적 기구로 역할 하기보다는. 느슨한 동맹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해왔다.

르펜 대학에서 형법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으로 1993년 총선에서 FN 후보로 파리 16구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처음 발을 들였고 하원, 광역주, 유럽의회 의원 등을 지냈다.

1997년 결혼했다가 2000년 이혼한 첫 번째 남편과 사이에 두 딸과 아들 등 3명의 자녀가 있고 2002년 재혼했다가 2006년 두 번째 결혼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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