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 자영업자 '팔 비틀기' 우려…"부실채권 정리, 은행이 직접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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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 자영업자 '팔 비틀기' 우려…"부실채권 정리, 은행이 직접 나서야"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04.06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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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배드뱅크 설립 검토
배드뱅크 채권 추심 과정에서 자영업자 부담 가능성
"박근혜 정부 국민행복기금 전철 밟지 않아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차기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부실 채권을 탕감해주는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효율성에 대해 논란이 제기된다.

배드뱅크가 채권을 추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배드뱅크 설립보다는 은행이 직접 빚을 탕감하는 방안이 금융소비자에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인수위, 배드뱅크 설립 검토…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 잔액 133조원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사들여 정리하고, 채무재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배드뱅크가 설립되면 은행은 소상공인 대출 중 부실채권을 배드뱅크에 양도하고, 배드뱅크는 소상공인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채무를 재조정하고 연착륙을 지원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한계에 다다른 기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올해 1월 말을 기준으로 코로나19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가 적용된 대출 잔액은 133조4000억원으로 대상 건수는 70만4000건에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만기 연장이 116조6000억원(65만5000건), 원금상환 유예가 11조7000억원(3만7000건), 이자상환 유예가 5조원(1만2000건)에 달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20년 4월부터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가이드라인'을 진행 중이다. 이는 지금까지 4차례 연장됐으며 오는 9월 종료될 예정이다. 다만 금리상승 등의 영향으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경우 또 다시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드뱅크, 국민행복기금 전철 밟지 않는 것이 중요"

문제는 자영업자들이다. 배드뱅크가 싼 값에 채권을 사서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채권을 추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드뱅크가 은행에서 채권을 사 온 후 자영업자에게 은행보다 강도 높은 채권추심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는 "배드뱅크의 목적은 싸게 채권을 사온 다음에 비싸게 풀어서 돈을 많이 회수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은행은 장부가 깨끗해지겠지만 자영업자들이 배드뱅크의 채권추심을 견딜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배드뱅크가 채권 추심을 위해 자영업자의 팔을 비틀다가 신용정보업체 등으로 넘겨버리면 그게 과연 자영업자들을 돕는 길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에 국민행복기금이라는 배드뱅크를 만든 바 있다. 당시 자본금 6970억원 중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출자금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21개 금융사에서 출자했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20조원의 자금을 조성해 원금의 70%까지 탕감해준다는 계획이었다. 은행은 싼 값에 부실채권을 넘기고 사후 정산을 하기로 하고 남으면 또 돌려받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행복기금을 주식회사로 세워 주주로 은행들이 나섰다. 부실 채권을 팔아서 남긴 이익도 챙기고 주주로서의 이익도 이중으로 챙긴 것이다. 

전 교수는 "당시 은행은 채권자로서 인센티브를 받는 한편 국민행복기금의 주주로서도 돈을 챙겼다"며 "국민행복기금은 은행의 채권추심 대리기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국민행복기금이 실패했는데 이번 배드뱅크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배드뱅크 설립의 목적은 은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영업자를 위해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이자를 탕감해주는 편이 바람직"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부실은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자영업자 부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887조6000억원으로 2019년 말 대비 30%가량 뛰어올랐다. 이러한 자영업자들이 배드뱅크로 인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이자를 탕감해줘도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며 "굳이 배드뱅크를 세워서 탕감해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배드뱅크는 자칫하면 은행의 또다른 부담이 될 것이며, 정권 초기라 보여주기 경쟁이 일어날 수 있고 실속은 없을 수 있다"며 "은행이 이자 탕감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채무를 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은행도 채권자로서 기여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일정 규모의 추경을 지원해 일부는 정부가, 일부는 은행이, 일부는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배드뱅크 설립보다 훨씬 낫다"며 "배드뱅크는 자칫하면 은행을 위해 자영업자를 압박하는 채권추심 대행기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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