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히노마루연합의 도시바 구제…SK 말려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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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히노마루연합의 도시바 구제…SK 말려드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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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 견제 위해 단합하는 일본 산업계…배후엔 경제산업성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히노마루를 내걸었다. 히노마루(日の丸)란 하얀 바탕에 태양을 의미하는 둥근 원을 그린 깃발로, 일장기(日章旗)를 의미한다. 도요토미가 전국의 다이묘들에 군사를 동원시켜 조선을 침공할 때 독자성이 강한 지방군을 통일시키기 위해 히노마루를 앞장 세운 것이다.

이 히노마루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한세기가 지난 지금, 히노마루는 일본 산업계 연합의 상징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른바 히노마루 연합군이다.

 

일본 산업계의 히노마루 연합은 반도체 산업에서 시작됐다.

1970~80년대만 해도 일본 반도체가 세계 시장을 주물렀다. NEC(니폰전기), 도시바, 히타치 등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70~80%를 차지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삼성전자가 부상, 1993년에는 메모리 부분에서 세계 1위에 오르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1999년 NEC가 히타치와 손잡고, 2003년에는 미쓰비사가 가세해 엘피다(Elpida) 메모리를 설립했다. 그리스 신화 중에 판도라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희망’(Elpis)을 본따 일본반도체의 부활을 의미하며 지은 사명이라고 한다. 엘피다는 ‘삼성 타도’를 외치는 일본 반도에 연합군이었으며, 일본 언론들은 일본을 구할 ‘히노마루 반도체’라며 거국적인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통합 이전의 각사 기술 인력이 현장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결국 엘피다는 희망과 달리 2012년 파산해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넘어갔다.

 

2012년엔 일본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연합군이 형성됐다. 소니, 히타치, 도시바 3사는 ‘저팬 디스플레이’(JDI)를 출범시켰다. TV·LCD 분야에서 한국의 삼성·LG에 선두 자리를 내주면서 위축된 회사들끼리 합쳐 생존을 모색한 것이다. 일본 1위 LCD 업체인 샤프는 빠졌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분야의 히노마루 연합은 성공하지 못했다. 독자노선을 걸었던 샤프는 지난해 대만의 폭스콘에 인수됐다. 3사 연합의 JDI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3년 연속 순손실을 내고 있다.

 

그후에도 히노마루 연합군은 계속된다. 가장 최근의 움직임은 조선업이다.

일본 조선업은 한국에 치이다가 최근에는 중국 조선업에 밀려나 왜소해졌다.

지난해 미쓰비시중공업은 이마바리조선(일본 내 선박건조 1위), 오시마조선소(3위), 나무라조선소(4위) 등 3사와 상선사업에서의 제휴 협상을 벌였다. 4개 조선사의 선박건조량을 합치면 1위인 현대중공업을 바짝 따라잡아 2위 조선사가 된다. 미쓰비시가 가진 기술력과 엔지니어링 능력, 조선 3사의 조선 역량을 조합해 비용절감을 추진해 한국·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우선(日本郵船, NYK) 등 해운회사가 가세해 해운·조선 10개사가 공동으로 자동운항 시스템 공동 개발에 나섰다. 개발비용이 수백억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동개발을 통해 회사별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각 기업의 지식을 총동원해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 조선소가 기술을 개발하고 해운사가 그 배를 운용해 일본식 선단을 구성한다는 전략이다.

또 지난해말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이 원자력 발전용 연료사업 통합을 목표로 한 협상에 들어갔다. 생산 거점을 합치고 원자재 조달 비용을 절감하면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일본 산업계의 히노마루 연합군 움직임은 한국과 중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도요토미의 군대가 히노마루를 내걸고 조-명 연합군과 전쟁을 했듯, 이젠 산업분야에서 쇼군의 지휘 아래 일장기를 내걸고 다이묘 군대들이 통합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히노마루 연합군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엘피다는 파산했고, JDI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계 히노마루는 형성 중에 있다.

일본 히노마루 연합의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다. 2009년 일본정부는 일본산업혁신기구(INCJ)를 만들었다. 외형으론 민관펀드다. 하지만 자본금 3,000억1,000만엔 가운데 95%를 일본 정부가 출자하고 나머지 5%를 일본정책투자은행을 포함해 26개 기업이 5억엔씩 출자했다. 이 조직은 정부 보증을 통해 채권을 발행해 2조엔의 자본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구가 2012년 디스플레이 연합군인 JDI 통합에 참여했다. JDI는 사실상 파산할 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영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히노마루 연합의 경쟁력은 정부 개입에 의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니케이 신문은 최근 LCD 연합인 JDC의 연속 적자와 관련한 사설에서 “히노마루의 관제 개편의 한계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니케이 사설은 "기업경영의 두 바퀴는 인간과 돈"이라며 "시장동향을 신속히 파악, 시의적절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재가 JDI에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정부 펀드의 자금력은 그 나름대로 크지만 "돈만으로는 경쟁에 이길 수 없고, 애초의 목적인 기술 방위도 불안하다"라고 사설은 지적했다.

 

 

최근 일본 히노마루 연합군은 파산한 도시바(東芝) 구하기에 집결하고 있다. 총 지휘부는 일본 경제산업성. 실전 책임자는 일본산업혁신기구(JDIC)다.

일본 간판회사인 도시바가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해 운영하다가 거액의 적자가 나는 바람에 미국과 일본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도시바의 반도체만은 살리겠다며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모양새는 한미일 연합에 투자자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했다. 여기에 국내 기업으로 SK가 참여키로 했다. 조달 금액은 총 2조엔. 이중 SK하이닉스가 대기로 한 금액은 3,000억~5,000억엔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히노마루 연합의 기치에서 출발한 매각이었기 때문에 쇼군의 지휘를 받는 JDIC는 50.1%의 지분을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고, 미국계 베인캐피털, 한국의 SK등은 돈만 대라는 식이다.

이런 해괴망칙한 계산법이 어디 있나. SK하이닉스가 생존가능성이 불투명한 회사에 수천억씩 대출해주고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투자다.

SK는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할수 있는 전환사채(CB) 방식으로 투자한다는 조건의 약속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일본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기술이 해외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정서로 인해 일본 정부가 왔다갔다 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SK에 지분은 갖지 말고, 대출 형식으로 돈만 대라는 것이다. 도시바 반도체의 기술과 경영권을 지키면서 해외에서 투자를 받겠다는 속셈이다. 차라리 전액 일본 돈으로 구제하면 될 것 아닌가.

도시바 반도체 부분 매각에서 보여진 히노마루 연합도 결국 일본 관치의 연장일 뿐이다. SK는 수천억을 국내에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도시바에 투자해 그 기술을 배우는게 싸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본 히노마루군이 쉽게 내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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