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6번째 주인은 누구…68년 기구한 역사
상태바
쌍용차, 6번째 주인은 누구…68년 기구한 역사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3.28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쌍용차, 에디슨모터스와 M&A 계약 파기
'창업주→쌍용→대우→중국→인도 자본' 주인으로
국내 최초·최장수 자동차 기업이지만…풍파도 거세
쌍용차 새 주인 찾기 원점에서 재시작
쌍용자동차가 28일 에디슨모터스와 인수합병 계약을 파기한다고 공시한 가운데 향후 쌍용차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쌍용자동차의 운명이 또다시 격랑 속에 휩싸였다. 쌍용차는 현대자동차(설립 1967년)보다 13년이나 앞선 1954년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효시로 설립한 국내 최장수 자동차 기업이자 한국 자동차 산업의 산증인이다.  지난 68년간 주인만 다섯 번 바뀐 쌍용차는 28일 인수·합병(M&A)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에디슨모터스와 계약을 파기한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여섯 번째 주인 찾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섰다. 

한국 첫 자동차 수출 기업

1930년 개성에서 태어난 창업자 하동환은 24살이던 1954년 서울시 마포구 창천동에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직후 물자가 귀하던 시기 하동환은 드럼통을 두들겨서 편 차체에 미군 폐차에서 엔진이나 변속기, 차축 등을 떼어내 '드럼통 버스'를 만들었다. 이 드럼통 버스가 쌍용차의 출발점이다. 사세를 넓혀 하동환은 1966년 일명 '하동환 버스'를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에 수출했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이다. 현대차 포니의 수출은 이 보다 10년 후에 이뤄졌다. 

이후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쌍용차의 전신인 '동아자동차'로 상호를 바꾸고 1984년 '디젤지프'를 만드는 거화(옛 신진자동차)를 인수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업체로 발돋움했다. 인수한 거화는 1969년 미국 카이저 지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국내 최초로 민간용 지프를 조립 및 생산하는 업체였다. 동아자동차는 거화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4륜구동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때 탄생한 차량이 '코란도'다.

1997년 쌍용그룹 해체는 쌍용차의 과도한 부채가 한 몫했다. 사진=연합뉴스 

쌍용그룹 해체 트리거 된 쌍용차 부채

하동환 창업주는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투자 여력이 있는 쌍용그룹에 1986년 동아자동차를 전격 매각했다. 당시 40세의 젊은 총수였던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은 1조원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동아자동차를 인수했다. 1988년 쌍용그룹은 동아자동차의 상호를 '쌍용자동차'로 바꾸고 그해 11월 '코란도 훼밀리'를 출시했다. 쌍용차는 1991년 독일 벤츠와 기술 제휴를 맺은 뒤 이듬해 중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SUV 전문 기업으로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노력 끝에 1993년 벤츠와 기술제휴를 통해 '무쏘'를 출시했다. 이어 1996년 뉴코란도를 내놓으며 4륜구동 차량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쌍용차는 1992년부터 이어진 적자에도 플래그십 세단 '체어맨' 개발을 위해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었고 결국 3조원이 넘는 부채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쌍용그룹은 1998년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매각했다. 쌍용차의 부채를 쌍용그룹과 대우그룹이 각각 절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쌍용차가 남긴 부채는 시멘트와 제지 등 안정적 재무구조의 계열사로 구성된 쌍용그룹이 무너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쌍용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를 넘지 못하고 해체됐다.

2009년 서울중앙지검은 상아하자동차의 기술유출 사건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우그룹마저 해체…상하이차 인수

1998년 1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쌍용차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1999년부터 무쏘, 체어맨, 뉴코란도, 이스타나 등에 쌍용차가 아닌 대우마크가 붙었다. 하지만 판매부진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우그룹의 무리한 확장으로 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면서 1999년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다.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와 함께 기업개선 작업 대상 업체로 선정됐던 쌍용차는 2000년 대우자동차에서 분리돼 채권단 주도 아래 독자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채권단 관리 아래 경영 정상화에 들어간 쌍용차는 사업부문을 SUV로 재편하고 기업개선작업에 속도를 냈다. 특히 2001년 출시한 렉스턴은 SUV 시장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시쳇말로 '대박'을 쳤다. 그럼에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004년 중국 상하이기차에 쌍용차를 매각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국부유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된 후 쌍용차는 이후 신차를 발표하지 않았다. 주력인 SUV 시장에서도 현대차에 추월 당했다. 업계 안팎에서 상하이자동차의 인수 목적이 기술 유출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결국 2006년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 불법유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당시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하청 조립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이후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하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반면 쌍용차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주력 차종인 SUV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경영난에 직면했다.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먹튀' 논란을 남긴 채 상하이자동차가 떠난 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 철회와 상하이차 처벌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옥쇄파업과 경영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를 틈타 상하이자동차는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승인은 얻은 쌍용차는 3000명 이상의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저항했고 쌍용차는 직장폐쇄로 맞불을 놨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며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강경진압을 택했고, 33명이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파업 77일 만에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쌍용차의 생산라인은 정상화됐지만 상하이자동차의 먹튀는 막지 못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쌍용차는 2012년 국내 유일의 레저용 픽업트럭 코란도 스포츠를 출시했다. 가까스로 청산 위기를 모면한 쌍용차는 법정관리 신청을 통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2010년 재매각을 추진했다. 결국 2011년 4월 인도의 자동차 회사 마힌드라가 쌍용차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2020년 한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산업은행을 찾은 파안 코엔카 마힌드라자동차 사장. 사진=연합뉴스

마힌드라 인수

두둑한 현금 동원력을 자랑하며 쌍용차 경영 안정화와 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마힌드라는 9억 달러의 기술 개발 투자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3년 쌍용차의 판매량은 14만5649대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2015년 1월 출시한 소형 SUV 티볼리가 렉스턴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며 쌍용차 정상화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흑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티볼리의 선전에도 현대차와 기아의 굳건한 시장 지배력을 뚫기는 힘들었다. 판매고가 정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경영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결국 마힌드라는 2020년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재정난을 이유로 쌍용차의 지배권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쌍용차는 자금 확보를 위해 부산물류센터와 서울서비스센터를 매각했지만 2020년 12월21일 600억원의 채무를 갚지 못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쌍용차의 주식 거래는 정지됐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의 쌍용차 인수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사진=연합뉴스

실패로 끝난 새우의 고래품기 에디슨모터스

결국 쌍용차 인수·합병 우선협상 대상자인 에디슨모터스가 동원할 수 있었던 자금은 계약금 304억8000만원 뿐이었다.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업은 인수대금 잔금 납입 기한인 지난 25일까지 계약금 304억8000만원을 제외한 인수잔금 2743억원을 납부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부터 불거졌던 '새우의 고래품기'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에디슨모터스는 지상파 방송 PD 출신 강영권 회장이 운영 중인 전기버스 생산 전문 업체로 2020년 기준 매출 897억원 정도다. 반면 같은 해 쌍용차의 매출은 2조9297억원이다.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들 때부터 자금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받아왔다. 부채 7000억원을 더해 정상화와 미래투자를 위한 금액이 1조5000억원대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인수자금으로 3000억원 가량을 써낸 에디슨모터스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우려와 의심이 더욱 커졌다. 

에디슨모터스는 FI(재무적 투자자)인 사모펀드와 개인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경우 인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인수 후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모펀드 키스톤PE가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면서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른 사모펀드 KCGI도 컨소시엄 탈퇴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투자 방식조차 확정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투자에서 손을 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주채권단인 산업은행도 날을 세웠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 방식에 대해 "가장 나쁜 인수 구조인 전형적인 차입매수(LBO)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LBO는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실제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 측은 쌍용차 평택공장 부지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해 운영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노조와 채권단도 에디슨모터스의 인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국 국내 최장수 자동차 기업인 쌍용차 인수에 나섰던 에디슨모터스는 애초 써냈던 인수자금 3049억원 중 계약금 304억8000만원만 떼인 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인수대금 납입과 운영자금 대여 의무를 위반한 귀책사유가 에디슨모터스에 있는 만큼 쌍용차는 이미 입금한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쌍용차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여섯 번재 주인을 찾아야 할 위기에 처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