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관동대로(평해길), 구둔고개에서 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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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관동대로(평해길), 구둔고개에서 봄을 걷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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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로 중 평해길 9코스 총연장 16Km '구둔고갯길' 도보기행
관동대로는 지금의 서울 동대문을 나서면 시작
두물머리-양평-원주-횡성-평창-강릉-울진평해로 이어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옛길은 앞서 살아간 선인(先人)과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끈이다. 봇짐을 지고 가는 보부상, 과거를 치르러 가는 선비, 시대를 이끌고 나가던 인물들을 길에서 만난다. 그들의 삶은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었다. 

한양에서 출발하는 길은 관동대로(關東大路·평해길), 관서대로(關西大路·의주길), 관북대로(關北大路·경흥길), 영남대로(嶺南大路·영남길), 삼남대로(三南大路·삼남길), 강화길 등 이렇게 여섯 개의 대로가 조선 팔도를 사통팔달했다.

한양과 경기지역의 옛 지명은 관내도(關內道)라. 동으로 가면 관동대로이고, 서로 가면 관서대로이고, 북으로 가면 관북대로이다. 

관동대로는 한양의 동문 흥인지문(興仁之門)을 나서며 시작한다. 도도한 한강을 거슬러 가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다. 두물머리에서 양근(지금의 양평)으로 접어들고, 이어서 원주와 횡성을 거쳐 평창과 대관령을 넘고 강릉에 이른다. 강릉에서 바다를 따라 남하하고, 정동진과 북평(지금의 동해시)을 지나 울진의 평해(平海)에 도달하면 천리길 관동대로의 종착지다. 

일신 1리 노곡마을 표석. 일신역 앞에 있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일신 1리 노곡마을 표석. 일신역 앞에 있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관동대로의 또 다른 이름인 평해길은 구리에서 양평까지 총 10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매 코스의 시작과 끝 지점이 중앙선 기차역으로 연결되어 접근하기가 좋아 서울에서 가벼이 다녀올 수가 있다. 아직 이른 봄이어서 봄꽃이 제대로 올라오진 않았으나 쉬엄쉬엄 봄맞이 구둔고갯길로 나선다. 

일신역에서 구곡역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일신역에서 구곡역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평해길 9코스 구둔고갯길의 시작점은 일신역이다. 일신역엔 하루 열차가 몇 대 서지 않는 간이역으로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가롭다. 

일신1리 노곡마을 이정표를 지나 신작로를 따라간다. 구둔고갯길인데 구둔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구둔마을이 일신리로 포함되면서 일신리가 구둔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인적이 없는 길을 걷는 호젓함으로 느릿느릿 가다 보니 벌써 구둔역이다. 

구둔역을 지나는 옛 중앙선 철도는 평해로와 노선이 유사하게 놓여있다. 구둔마을을 돌아가는 철도는 직선화가 되어 구둔역은 폐역이 되고 역사(驛舍)만 남았다. 

이제는 역사만 남아 관광지가 된 구둔역.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이제는 역사만 남아 관광지가 된 구둔역.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아 이제 역으로의 역할을 다하였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적으로의 건축물 원형을 간직한 역사는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구둔역 철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역 철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폐역은 영화 또는 다양한 뮤직비디오의 촬영장으로 다시 살아나고 철길의 옛 정취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분주케 하여 관광지로 환생하였다. 우리 곁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에 아쉬움을 느낀다면 이곳에 와보라 권하고 싶다. 

일신2리 느티나무. 뒤로 일신분교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일신2리 느티나무. 뒤로 이젠 폐교가된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역을 지나 일신2리 마을로 들어서자 440년 된 느티나무가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를 가렸다. 느티나무 밑동은 열 아름도 부족할 만치 크고 우람하다. 정자를 지나 일신분교를 끼고 좌측으로 돌아 고추산 자락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3km에 걸친 구둔고갯길이다. 

구둔고갯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고갯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고개(九屯峙)는 16세기 동국여지승람에 구질현(九叱峴)으로 기록되어있고, 19세기 후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구존치(九存峙)로 기록되어있다. 이후 1914년 일제 강점기에 구둔고개(九屯峙)로 이름이 바뀌었다. 즉, 이 고개 이름의 시작은 고개에 습지가 발달해 처음엔 구질고개라 불리다가 이름이 저렇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철로를 걷어낸 철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철로를 걷어낸 철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역에서 끊어졌던 폐철로는 다시 이어진다. 폐철로의 레일은 거두어지고 없어져 철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레일 밑에 깔아놓았던 잔돌만이 이 길이 철로였음을 증명할 뿐이다.

막아버린 터널.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막아버린 터널.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발길에 차이며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기적 소리처럼 이명으로 들리며 기억을 소환한다. 길이 막혀 산자락을 돌아 올라가니 다시 철길과 터널이 있던 자리다. 문득 기차가 터널을 통과해서 동해로 내달렸을 모습이 그려진다.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이곳에 스며져 있었을까...

구둔고갯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둔고갯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폐철로는 여기에서 어느 순간 없어지고 야트막한 산길과 제법 무성한 숲길을 지난다. 구둔고개로 접어드는 길이다. 관동대로의 대표적인 고갯길로 아름답고 숲길을 나오면 신작로를 만난다. 신작로를 따라 잠시 걷다 보면 못저리 세하마을을 지나고 쌍학리 임도 입구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매월교까지는 7.6킬로 임도다.

쌍학리 임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쌍학리 임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임도 입구에서 산길을 오른다. 해발 150여 미터를 올라가는 것이지만 제법 숨이 가쁘다. 임도에 올라서자 길이 평탄하다. 발도 편하고 시야가 트이니 모든 풍광이 발아래로 보이는듯하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높낮이가 없는 임도를 따라 두런두런 걷는다.

4킬로 남짓 걸어 한 구비를 돌자 산판이다. 아름드리 베어나간 나무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 밑동은 굵은 송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새로운 나무를 심어 새 숲을 가꾼다는데 잘려나간 나무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쌍학리 임도의 벌목된 나무들. 새숲을 가꾼다는데 아깝고 아프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쌍학리 임도의 벌목된 나무들. 새숲을 가꾼다는데 아깝고 아프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쌍학리 임도가 끝나고 매월교에 이르렀다. 매월교 밑으로 흐르던 매월천은 석곡천에 합류한다.

소나무의 눈물 송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소나무의 눈물 송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쌍학리(雙鶴里)란 이름은 석곡천에 학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학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석곡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석곡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석곡천의 흔들철다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석곡천의 흔들철다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학이 무리지어 살았다던 쌍학리의 옛 시간, 가까운 과거가 묻어 있는 폐역과 폐철길 저 너머 더 오래전 이 길을 지났을 조선 선비의 발자취가 못내 그리운 것은 어떤 아쉬움 때문일까?  양동역에 이르니 마음은 만화방창 벌써 만춘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중에서 (지은이 정철)

강호(江湖)에 병(病)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 리(關東八百里)에 방면(方面)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罔極)하다
연추문(延秋門) 들이 달아 경회 남문(慶會南門) 바라보며,
하직(下直)하고 물러나니 옥절(玉節)이 앞에 섰다.
평구역(平丘驛)* 말을 갈아 흑수(黑水)*로 돌아드니,
섬강(蟾江)은 어디메오, 치악(雉岳)이 여기로다.
소양강(昭陽江) 내린 물이 어디로든 든단 말고.
고신(孤臣) 거국(去國)에 백발(白髮)도 하도 할샤.

*평구역(平丘驛): 경기 양주 부근
*흑수(黑水): 여주에 있는 강

평해길 9코스 구둔고갯길 16km 가는 길 : 일신역 ~ 구둔역(폐역) ~ 일신2리 느티나무 ~ 일신분교 ~ 구둔고개 ~ 못저리 세하마을 ~ 쌍학리임도 ~ 매월교 ~ 상록다리 ~ 석곡천 둑방 ~ 양동역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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