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의 전쟁을 치른 뒤”…한시간에 특집방송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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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의 전쟁을 치른 뒤”…한시간에 특집방송 만들기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7.07.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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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황헌 앵커, 6일 아침 ‘특집 뉴스의 광장’ 어떻게 만들었나

 

MBC 황헌 앵커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고 발표한 다음날인 6일 아침 7시 ‘특집 뉴스의 광장’을 꾸려나간 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황 앵커는 ‘한 판의 전쟁을 치른 뒤’라는 제목을 달았다.

라디오 새벽방송을 만드는 과정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른 새벽에 인터뷰를 섭외하고 원고를 작성하고 해외 특파원을 연결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남은 시간은 불과 한시간여.

라디오 청취자들은 그냥 뉴스가 흘러 나오는줄 안다. 그 안에서 얼마나 긴장하는지를 모른다. 황헌 앵커의 글을 읽으면서 방송인들의 고충을 한번 느껴보기로 하다.

 

황헌 앵커의 페이스북 글과 사진

 

뉴스는 따끈따끈한 새 것으로 채워야만 하는 걸까? 적어도 뉴스 밸류의 측면에서 볼 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보도국은 지금 텔레비전 뉴스 중심으로 운용되는 조직이다. 필자가 1985년 사회부 사건 담당 경찰서 출입 기자를 할 때와는 딴판이다. 그때는 일단 매시 정각에 방송되는 라디오 뉴스에서 MBC에는 안 나오는데 KBS엔 나오거나, 반대로 MBC에만 나오고 KBS에 나오지 않는 사건 뉴스가 방송이 되는 날, 낙종한 회사의 사회부는 초상집이 된다. 물론 담당 기자는 온갖 욕을 들어가며 심지어 선배로부터 “사표 내라”는 얘기까지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라디오 뉴스의 속보성이 소중한 걸 몸으로 배운 세대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때의 라디오 속보 기능을 스마트폰 검색포털이나 뉴스포털이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방송사 보도국도 텔레비전 뉴스에 맞게 조직과 운용이 이뤄진다.

 

 

오늘 아침 일어난 일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보면 대략 이러하다.

05시 28분: 회사 도착, 방송 3사 뉴스 모니터 틀고 조간신문 1면 제목을 훑어본다.

05사 38분: 오늘 예정된 출연 기자 아이템이 뭔지 기사는 어떤지 살펴본다.

05시 45분: 북한의 ICBM 도발 기사가 라디오용으로 준비된 게 없음을 확인한다. 아! 이 참극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뉴스 시작 1시간 15분이 남은 시점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 그냥 준비된 대로 정가 소식과 한미 FTA 추가협상 압박이 이어질 경우 우리의 대책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를 내보내는 방법이 쉽고 안전하다. 아니면 지금부터 모든 걸 뜯어고쳐 새 판을 짤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위험도가 그만큼 높아진다. 내 뜻대로 기자들이 움직여줄지도 미지수였고 시간이 너무 조금밖에 남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05시 50분: 어렵겠지만 <북 ICBM 도발 특집 뉴스>를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05시 51분: 정치부 기자에게 기 작성한 출연 방송 원고 삭제하고 ICBM 뉴스 준비하라 지시한다. 자기들도 뉴스 밸류로 볼 때 그게 맞겠다고 인정한다. 순순히 응해주었다. 다음 국제부 야근데스크로 전화해서 워싱턴, 베이징, 도쿄 지사로 연락해서 미, 중, 일의 반응 기사를 라디오 뉴스용으로 준비하라는 부탁을 한다. 가부간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05시 55분: 구성작가에게 전화해서 오늘로 예정됐던 ‘한미 FTA 재협상 요구’ 관련 인터뷰 예약자에겐 양해를 구하고 북한 ICBM 도발 사태와 관련한 인터뷰를 할 전문가를 섭외해달라고 부탁한다.

 

 

물색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어떻게 하지? 아직 특파원 쪽 소식은 없고 전문가 인터뷰도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거라 섭외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06시 07분: 작가로부터 ‘김용현 교수 섭외됐습니다.’는 카톡이 왔고 ‘휴! 고마워!’라는 답을 보냈다.

06시 14분: 워싱턴은 TV뉴스 화상통화로 출연하는 특파원이 아닌 다른 특파원이 라디오 <뉴스의 광장>에 방송할 수 있다는 통보가 왔다. 다만 중국은 도저히 아니 되어서 베이징 특파원이 6시 TV 생방송 끝내고 녹음해서 중국 외교부 반응 등을 묶어서 보내오겠단다.

06시 15분: 라디오 뉴스 큐시트 작성에 들어간다.

06시 22분: <특집 뉴스의 광장> 큐시트 작성을 끝내고 오프닝 멘트 작성에 들어갔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황헌입니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도발로 한반도가 다시 격랑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뉴스의 광장 7월 5일 수요일 순서는 북한의 ICBM 도발 뉴스를 중심으로 긴급 특집 편성으로 방송합니다. ...”

그렇게 30여 분 정신없이 원고를 써나가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52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일단 마지막 출연 기자의 교육정책 관련 질문 내용은 수정하지 못한 채 10층 라디오 스튜디오로 부리나케 올라간다. 단 뛰는 건 금물이다. 숨이 턱에 닿는 뜀박질을 했다간 그 여파가 15분 이상 지속돼서 방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7시 정각을 알리는 시보와 함께 시그널 뮤직이 나가고 이어서 오프닝 멘트를 읽었다. 그렇게 30여 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이 없다.

“사드 배치를 한 목소리로 반대하던 시진핑과 푸틴도 김정은의 어제 ICBM 도발을 경고하는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미국은 김정은이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걸로 간주합니다.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도 근본적으로 새로 판을 짜야할 시점입니다. 수요일 뉴스의 광장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라는 클로징 멘트를 날리고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뉴스를 마치고는 간추린 뉴스를 담당하는 임지현 앵커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런 날도 기념이니까...

정말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고마웠다. 특집 뉴스를 불과 40~50분 만에 짜서 내보낸 보람은 크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쟁이다. 김정은 너는 왜 내게 먼저 전쟁을 하게 만드는 것이냐?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고 난 뒤의 허탈감이란... 구내식당에 내려가 맞이한 아침 밥상이 제법 먹음직하련만 오늘은 영 구미가 동하지 않는다.

내일은 내일이다. 이제 털고 오늘 이 더위와의 전쟁에서 또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전쟁은 계속되는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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