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러시아 제재 놓고 정면 대립'···반도체서 첫 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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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러시아 제재 놓고 정면 대립'···반도체서 첫 힘 대결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2.03.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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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너지 제재와 달리 기술 제재는 중국도 영향권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놓고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에 반기를 든 중국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AP/연합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놓고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에 반기를 든 중국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AP/연합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주도하는 것에 중국이 반기를 대립하고 있다.

미국이 금융과 에너지 제재에는 이행에 참여하지 않는 제삼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조건을 아직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분야에는 세계 모든 기업이 따라야 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한 상태여서 중국이 물러서지 않고 대결을 택한다면 미중 양국 간 치열한 '제재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러시아와 거래하려면 폐업 각오하라는 미국

현재 미국의 대러 경제 제재는 크게 일부 금융기관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하는 금융 제재, 러시아의 경제 의존도가 높은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막는 에너지 제재, 반도체·전자·통신 등 분야 제품 수출을 규제하는 기술 제재 세 갈래로 나뉜다.

이 중 중국 입장에서 특히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 자국 기업에까지 불똥이 떨어진 반도체 등 기술 제재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제재가 명분 없는 특정국의 일방적 제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이행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을 피력 중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 전자(반도체)·컴퓨터, 통신 등 7개 분야 기술을 활용해 만든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규제하는 제재를 발표하면서 FDPR를 적용했다.

FDPR는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자국 기술을 썼다면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 조항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생산 설비 및 재료, 핵심 부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핵심 기술이 쓰이지 않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미국 독자 제재의 효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FDPR의 가공할 영향력은 한때 세계 최대 5G 중계기 공급 업체이자 삼성전자와 더불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이던 화웨이의 '몰락'을 통해 잘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9년 화웨이의 공급망 마비를 겨냥한 제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제재 초기만 해도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재에도 끄떡없다면서 '때릴 테면 더 때려보라'는 식으로 미국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미국은 2020년 화웨이 제재에 FDPR를 도입했다. 그 여파로 화웨이는 타인완(臺灣) TSMC, 삼성전자 등 어느 곳에서도 첨단 공정 반도체 부품을 구매하지 못하게 돼 사세가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대러 기술 제재의 '구멍'이 되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면서 중국이 만일 '도전'을 해온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강력한 경고음을 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8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를 콕 집어가며 만일 중국 기업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문을 닫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SMIC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도 향상이라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규모 직접 투자를 단행하고, 파격적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육성 중인 기업이다.

늘 물러나던 중국, '반격 무기' 반외국제재법 꺼내드나

주목되는 것은 향후 중국의 선택이다.

앞서 화웨이, SMIC, 센스타임, DJI 등 많은 중국 기술기업이 먼저 미국의 기술 제재 표적이 됐다.

중국은 그때마다 미국의 제재를 강력히 성토하고 '모든 필요한 조치로 반격하겠다'고 공언하곤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대미 반격 조치가 나온 적은 없었기에 반격 발언은 실질적 의미가 퇴색된 내부 청중을 향한 수사로 전락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미중 신냉전이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점점 대담해진 중국이 과거와 달리 미국과 제재 영역에서 본격적인 맞대응에 나설 시점을 재고 있다는 관측도 점차 대두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이 미국과 '제재 전쟁'을 치르기 위한 법적·제도적 준비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작년 6월 반외국제재법을 도입했다. '부당한' 제재에 대항해 중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해당 조치 결정이나 실시에 참여한 외국의 개인·조직을 보복 명단(블랙리스트)에 올해 중국 입국 제한, 중국 내 자산 동결, 중국 기업·개인과 거래 금지 등 각종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비록 미국의 대러 기술 제재가 직접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 만일 집행 과정에서 중국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중국이 반외국제재법을 발동해 반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한다.

노동 전문 로펌인 세이파스 쇼의 폴 하스웰은 SCMP에 "해당 법은 중국 이익에 반하는 제재에 초점을 맞추지만, 다른 나라 법인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중국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적용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반외국제재법을 발동하면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제재 주먹' 사이에서 어디에 맞는 게 덜 아플지를 판단해야 하는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반외국제재법을 근거로 미국의 제재 이행을 위해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끊은 TSMC를 제재할 수도 있다.

중국이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제재를 가하는 것이 자국 산업에도 너무 큰 상처를 주고 가뜩이나 악화한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 첨단 기술 산업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전략적 목표로 추진 중인 가운데 자국이 절실한 첨단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와 거래를 끊는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자해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5G·반도체· AI·바이오 등 중국의 거의 모든 핵심 산업을 압박하는 제재망을 넓혀가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마냥 기술 분야에서 '난타'를 당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거대한 자국 내수 시장을 무기로 반외국제재법을 발동하는 반격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단 중국은 이번엔 표면적으로는 대러 제재가 자국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표명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중국 기업과 개인의 합법적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처리하면서 중국의 우려를 엄정하고 진지하게 다뤄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권익을 해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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