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주는 52주 최저가 경신해
美, 대러에 기술 수출 통제에 FDPR까지
현지 자동차 및 부품 생산 직격탄 우려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핵 위협 카드까지 꺼내드는 등 갈수록 악화되자 국내 증시도 변동성 높은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가 잇따르면서 국내 산업계 중 반도체와 자동차업종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후 2시5분 기준 대표적인 반도체기업이자 기술주로 꼽히는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과 비교해 600원(0.83%) 떨어진 7만1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8만300원에서 다음날 7만8800원으로 2% 가까이 하락한 뒤 두 달간 11% 넘게 빠졌다.
같은 시간 SK하이닉스 역시 전 거래일 대비 1000원(0.81%) 내린 12만2000원에 거래 중이다.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본격 고조된 지난 17일부터 이날까지 약 8.27% 하락했다. 네이버 종목토론방에는 “10만 원 이하로 떨어지는 날 조만간 올 듯”이라는 한탄이 가득하다.
현대차, 기아도 주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 이날 오후 2시5분 기준 현대차는 전 거래일 대비 2500원(1.44%) 떨어진 17만1500원에 거래 중이며 기아는 1.36% 떨어진 7만2800원에 거래 중이다. 현대차(16만8000원), 기아(7만1500원), 현대모비스(21만9000원), 현대위아(5만8800원) 등 현대차그룹주 모두 이날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의 주가 하락세는 지수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5일 종가 기준 이달 들어 현대차, 기아 등이 속해있는 KRX 자동차 지수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리노공업 등이 포함돼있는 KRX 반도체 지수는 하락률 4.48%, 3.17%로 1, 2위를 기록했다.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포괄적 제재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해당 종목들의 주가를 찍어 누르는 모양새다. 앞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반도체·컴퓨터·정보통신·센서/레이저·항법/항공전자·해양·항공우주 등 7대 분야 57개 품목·기술의 대러 수출을 독자적으로 통제하는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미국 밖에서 제조된 제품이라도 미국산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제품은 미국산으로 간주해 러시아에 수출 시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해외직접제품규칙(FDPR)도 제재에 포함했다. 이는 과거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적용했던 규제다.
애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네온가스와 팔라듐 주 생산국이라 사태 장기화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관련 종목 주가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출 통제까지 참여하게 되자 투심이 얼어붙었다.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생산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도 미국의 기초 설계 기술이 적용돼 있다. 한국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수출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이로 인해 일반적인 반도체 사용량이 둔화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더욱이 반도체 수급난으로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한국의 대러 수출 품목 가운데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 수출 비중은 각각 25.5%와 15.1%를 차지한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신차 시장의 23%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러시아로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와 기아 러시아 공장으로 납품되고 있다. 이번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대차·기아의 생산, 유통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서방의 금융 제재 발표 이후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인 30% 가까이 폭락했다. 미국과 유럽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중앙은행을 제재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해당 금융 제재가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판매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과 원가 상승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수출 판매 비중이 높은 기아의 손익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간 분쟁이 장기화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업계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업계 확인 결과 국내 반도체 업체별로 네온가스 재고량이 비교적 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전쟁 이슈로 인해 단기적으로 네온가스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화하지 않는 한 심각한 우려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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