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올해 대선을 다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평하고 있다. 지속되는 코로나19 확산세, 세계 경제질서 재편, 급변하는 산업환경과 외교안보 상황임에도 정책 논쟁은 온데간데 없다. 급기야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 세리모니를 여당은 정치 보복으로 비방하고 있고, 이재명 후보의 발차기 제스처 역시 국민 앞에 발을 드는 무례한 행위로 야당은 비방하고 있다.
이쯤 되면 상대 후보가 무엇을 얘기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비난부터 하고 보자’는 프레임에 모두 올인한 모습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비장한 각오가 상대에 대한 더 강력한 비방으로 전환되고 있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이번 대선을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부르는 이유다. 국가원수를 선출하는 선거임에도 정책 논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선은 포지티브가 아닌 네거티브의 싸움
생각해볼 점은 이번 대선이 역대급인지는 몰라도 늘 대선은 각 당이 상대를 비호감으로 낙인 찍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데 있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정치인과 언론에서는 정책에 대한 토론이 사라졌다고 지적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정책이 승부를 가른 경우는 없었다. 인물의 비호감이 승부를 좌우하는 핵심 열쇠였을 뿐이다.
정치를 시작하는 모든 후보들은 진흙탕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후보는 신드롬을 등에 업고 대선 출마를 선언,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네거티브를 모두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후보 역시 당내 경선에서 상대의 네거티브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후보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상대의 흠집을 찾아내 국민에게 “저 사람은 도덕적으로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네거티브에 대해 난색을 표명한 후보도 막상 선거에 돌입하면 슬그머니 네거티브 카드를 다시 꺼낸다. 미래를 논해야 하는 대선에서 늘 선거 이슈는 후보의 과거에 집중된다.
매번 선거를 지켜보며 각 당의 비방 공세에 실망하는 유권자가 한 둘이 아니지만 선거에 대해서는 베테랑인 정당이 네거티브 게임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만큼 효과적인 전략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선이든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특정 정책보다 상대 후보를 깎아 내려서 우리 후보의 자존감과 위상을 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건 정당의 핵심공식이다.
2009년 언론과학 학술지에 게재된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 효과’ 연구를 살펴보면 네거티브 비방은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오히려 높이는 효과가 존재한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입증했다. 상대에 대한 거친 비난이 유권자들의 실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지만 오히려 자기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를 훨씬 결집시킬 수 있는 효과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보다 훨씬 네거티브의 강도가 높다고 유권자들이 느끼는 이유는 네거티브를 전달할 수 있는 경로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신문과 지상파에 국한되었던 전달 경로는 이후 종편, 케이블 채널, 인터넷, 유튜브, SNS 등 전방위로 확장되었다. 캠프 입장에서는 24시간 모든 채널을 동원해 상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네거티브를 하기가 유리해졌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는 다양한 정보 전달 경로를 통해 네거티브를 벌인 결과, 인터넷을 통한 네거티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상대 후보를 공격할수록 유권자는 반대 후보의 지지세를 위협으로 각인하고 훨씬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 상대를 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는 지지세를 되려 강하게 결집시킨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지 정당이 없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집단에서 오히려 네거티브 효과는 더욱 강력하게 발휘된다는 점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계층인 무당층 유권자가 후보 간 비방과 네거티브 공세에 훨씬 심각하게 반응, 최악의 후보를 걸러내기 위해 투표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네거티브 게임은 그래서 오늘도 논스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티브 게임을 희망한다
국내만의 문제도 아니다. 1985년 미국의 정치과학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정치 행위에 미치는 네거티브 효과’ 연구를 살펴보면 미국에서도 지지 정당이 없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집단이 흑색선전과 비방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투표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즉, 정책 논쟁보다 해당 인물의 도덕성 논쟁이 관심을 끌기에도, 그리고 투표 독려에도 쉽다.
라우(Lau) 럿거스대 교수는 부정적 메시지가 효과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본능을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 규범적으로 모두 행동할 것이라는 기본 믿음을 머리에 각인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누군가에 관한 부정적 평판, 루머, 뒷담화 등은 우리의 기본 믿음과 배치되기에 실제보다 훨씬 더 이야기의 관심과 몰입을 증폭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선이 상대를 죽여야 승리하는 네거티브 게임이 아닌 후보의 역량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포지티브 게임이 되길 희망한다. 네거티브가 핵심 전략이기에 비난, 비방에 몰입한다고 해서 당선된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기존 연구도 상대에 대한 비방이 지지세는 결집시키지만 선거 승리에 결정적이라는 결과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했던 2012년 18대 대선을 토대로 메시지의 긍정-부정 효과를 분석한 결과, 후보에 대한 긍정적 언급횟수가 많을수록 당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후보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언급은 당선 가능성을 높였지만 상대에 대한 비방은 선거 승리 또는 당선 가능성을 높이진 못했다.
지지세 결집과 선거 승리는 엄연히 다르다. 네거티브 게임에 올인한다면 지지세를 결집시킬 수는 있어도 선거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 그리고 승리한다고 해도 이후 경제, 외교 정책에서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긴 더더욱 어렵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리더로서 상대에 대한 비난보다 자신의 품격과 위상을 강화하는 포지티브 게임에 집중해야 한다.
지지세 결집에 유리한 네거티브와 선거 승리에 유리한 포지티브, 선택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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