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르』…비틀린 세상을 당당하게 사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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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르』…비틀린 세상을 당당하게 사는 여성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06.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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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셸, 폭력에 무너지지 않고 강하게 대처하는 현대여성

 

폭력 앞에 약하고, 폭력을 당했을 때 피해의식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영화 『엘르』(Elle, 2016년)의 주인공 미셀은 강한 여성이다. 물리적, 정신적 폭력 앞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영화의 시작은 폭력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날 미셸은 괴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뒤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이웃 주민들을 몰살한 살인자이자 방화범을 아버지로 둔 딸이라는 트라우마로 평생을 경계하며 살아왔다.

일반적인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영화의 포장일 뿐이다. 실제로 폭력의 피해를 입고 정신적 폭력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다양하다. 때론 냉소적이고, 때론 관대하고, 때론 성적 자유로움을 이끌어간다. 상식적 관념의 틀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고 애매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 본성으로 들어가면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원래 복잡하고 이해할수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 /영화 포스터

 

모든 사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때론 화내고, 때론 용서하고 때론 어머니이고 때론 딸이다. 그런 모습이 영화속에 녹아 있다. 폴 버호벤(Paul Verhoeven) 감독은 미셸을 통해 여러 사건에 난타 당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하고 비범하고 현대적인 여성(elle=she)을 그려 냈다. 아니,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가 그 역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미셸은 장기수로 옥살이를 하는 아버지에게, 다른 남자를 만나는 어머니에게, 흑인 애기를 낳은 여자를 쫓아다니는 아들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퍼붓는다. 속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은 당당함이다.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가족과 친지들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친구의 남편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도 친구에게 말한다. 여성은 피해자라도 사실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의 타부를 그는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인간 본성으로 돌아온다. 강함 이면에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쓰러지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의 딸임을 깨닫는다. 마음의 적이었던 아버지를 30년만에 찾아가는 것도 그를 마음 속에서 용서했기 때문이다. 항상 모자라는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받아주는 것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친구의 남편, 괴한으로 밝혀진 이웃집의 잘생긴 남자에 대한 연정 등은 여인으로서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 /영화사이트

 

엘르는 선과 악의 개념으로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헐리웃 영화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유럽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간 내면을 다루었다. 물론 괴한의 폭행과 그를 복수하는 과정은 선과 악의 개념이 들어가지만, 그가 이웃집 사람임이 밝혀졌을 때 그 허망함, 그리고 그의 부인과의 무미건조한 대화…. 슬픔과 고통, 원수와 같은 미움 가운데 담담하고 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셸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는 놀라울 정도로 과감하고 섬세한 연기로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는 평가다.

폴 버호벤 감독은 처음에 『엘르』를 헐리웃에서 찍으려고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샤를리즈 테론, 샤론 스톤, 제니퍼 제이슨 리, 마리옹 꼬띠아르, 다이안 레인 등을 캐스팅 리스트에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덕적 관념을 넘어서는 당혹스럽고 복잡한 캐릭터에 헐리웃 배우들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위페르가 이 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프랑스에서 촬영했다.

필립 지앙의 장편소설 『오…』를 각색한 영화다. 원작자와 감독, 배우와의 혼연일체가 돋보인다.

위페르는 인터뷰에서 “원작을 읽고 작가 필립 지앙을 만났더니, 지앙은 나를 위해 쓴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설을 쓰면서 여러 순간에 나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면서 ”미셸은 충격적인 상황을 겪지만 한 번도 피해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임을 밝혔다.

버호벤 감독은 “위페르는 환상적인 연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완벽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라고 그녀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12주 간의 촬영 기간 동안 위페르의 본능에 맡겼다는 버호벤은 “기본적으로 이자벨 위페르에게 의존했다. 그녀가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각본과 다른 방향으로 연기해도 그녀 스스로 보여줄 수 있도록 그냥 두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헐리웃에서 활동했다.

 

▲ /영화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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