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를 찾아서] 비운의 월광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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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를 찾아서] 비운의 월광태자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1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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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멸망으로 가야 연맹은 역사에서 사라져

 

대가야가 멸망한 후에도 마지막 왕인 월광태자(月光太子)에 대한 전설은 남아 있다.

월광태자는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의 10대손이자, 시조 아진아시왕(伊珍阿豉王)의 9대손이다. (정견모주를 모시는 사당은 경남 합천 해인사 경내에 있는 국사단이다.)

아버지는 대가야의 9대왕인 이뇌왕(異腦王)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딸이다. 두나라가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었지만 후에 신라가 동맹을 깨뜨리고 대가야를 멸망시켰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맹이 없는 법. 그후 월광태자는 승려가 돼 가야산 아래 월광사(月光寺)를 짓고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일설에는 월광태자를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대가야 제10대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사서의 세대 수와 전설의 세대 수에 차이가 있지만, 전설은 전설로 받아드리면 되지 않을까.

 

▲ 월광사지3층석탑 /사진=김인영

 

왜왕의 죽음

 

대가야가 소멸되자, 『일본서기』는 매우 슬픈 톤으로 기록했다

 

“흠명(欽明) 23년 봄 6월, (천황이) 가로되, “(중략) 어찌 온천하(率土之賓)의 임금과 신하(王臣)로서 사람의 곡식을 먹고 사람의 물을 마시면서 누가 이를 참아 들으며, 마음에 애도하지 않을 것인가. 하물며 태자와 대신들은 서로 도와서 피를 토하득 울고 원한을 품는 연고가 있다. 대신의 지위에 있으면 몸을 괴롭히는 노고가 따르는 것이다. 선제의 덕을 받아서 후세를 이었다. 그리하여 마음을 다하고 장을 빼어 같이 간역을 베고 천지의 통혹을 설욕하여 군부의 원수를 갚지 못하는 것을 죽어서도 신자(臣子)의 도를 다하지 못한 한을 남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가야의 멸망으로 가야 연맹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아울러 대가야 병탄을 끝으로 이사부의 이름도 역사에서 사라진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함락하자, 왜왕 킨케이(欽明)는 화병을 얻어 죽는다.

 

『일본서기』는 이렇게 적었다.

 

“흠명(欽明) 32년 (571년) 4월 15일, 천황이 중병으로 누웠다. 황태자는 출타하고 없었다. 역마를 달려 불러들여 누은 자리에서 손을 잡고 “짐은 병이 중하다. 후일의 일은 그대에게 맡긴다. 그래서 신라를 쳐서 任那(가야)를 세워라. 옛날처럼 두 나라가 서로 친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달에 천황은 드디에 내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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