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부흥⑤…퇴조하는 미국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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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부흥⑤…퇴조하는 미국 노동운동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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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호황의 비밀은 노동탄력성…노조도 임금인상보다 고용안정에 중점

 

미국 중부 위스콘신주 ‘메릴’ 이라는 자그마한 도시의 월마트 쇼핑센터에서는 팽팽한 긴장 속에 투표가 진행됐다. 파트타임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였다.

1998년 8월 8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 아칸소주에 있던 월마트 본사 간부들은 며칠 전부터 대거 이 마을을 찾아와 근로자들에게 노조를 만들지 말라고 설득했다. 노조 설립 핵심멤버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노조는 꼭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에게 역설했다. 투표결과는 54 대 27. 일주일에 210 달러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월마트 근로자의 절대 다수가 노조 설립에 반기를 들었다. 노조를 만들어 봉급을 올리기 보다는 점포가 문을 닫아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이날 메릴에 있는 1,366호 점포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더라면, 월마트는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들어서는 기록을 남길뻔 했다. 당시 캐나다 지역을 합쳐 2,747개 점포에 74만6,000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미국 최대 소매 체인망을 형성하고 있는 월마트는 창업이후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메릴에 앞서 미주리 주의 두 개 점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고, 캘리포니아의 한 점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월마트는 철저히 근로자들에게 노조를 만들지 말라고 설득, 성공한 바 있다.

월마트 전 점포 가운데 노조를 만든 곳은 한군데 있다. 디트로이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 윈저 점포에 노조가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노조도 설립 직전에 근로자 찬반 투표에서 1백51 대 43의 압도적인 비율로 노조 설립안이 부결됐지만, 그곳에는 미국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캐나다 온테리오 주정부는 투표 결과를 인정치 않고, 노조 설립을 허용했던 것이다.

 

▲ /그래픽=김인영

 

1990년대에 미국 경제는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미국은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에 밀려 2등 국가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짙었다. 그러던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난 배경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예방적 금리정책을 취한 점 ▲기업들의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인력 축소) ▲정부의 재정적자 축소 및 규제완화등 모두가 미국을 재기하게 한 배경으로 설명되는 요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조의 쇠퇴와 노동운동의 변화가 장기호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국노동조직인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는 1955년 미국 노동운동을 양분하던 AFL과 CIO가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통합, 78개 산별 노조와 1,300만명의 노조원을 확보, 세계 최대의 노동 조직으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AFL-CIO의 조직율은 전체근로자의 35%에 이르렀다.

미국의 노조 조직율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25%대를 유지했고, 철강, 자동차, 기계, 유화, 철도등 제조업에 막강한 주력군을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진 80년대 후반들어 노조조직율은 20%대 이하로 떨어졌고, 1997년엔 14.5%로 하락했다.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하고 정치활동을 벌여야 할 노동자 단체가 이젠 살아남는데 급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1998년 2월초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FL-CIO 동계 대회에서 당시 존 스위니 위원장은 “노조 가입자가 상당한 수준에 있지 않으면 임금을 올릴수 없다”면서 집행예산의 45%를 조직확대에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동자들의 무기력과 패배주의, 노조간부의 귀족주의를 청산할 것을 주장하며 집권에 성공한 스위니 위원장도 노조 탈퇴 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협상테이블의 주도권보다는 노조 가입율 저하를 막는 것이 절박한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경제가 1980년대의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기업주들은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지 않으면 더 많은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노조를 하는 것보다 회사에 협조하는 것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확산됐다. 기존의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다투는 것보다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우는데 협력하는 자세로 근로자들의 사고가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들이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을 추진하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노조도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안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됐으며, 회사의 경영정책에 호응하며 근로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선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픽=김인영

 

1997년엔 포드자동차와 미국자동차노련(UAW)은 대단히 중요한 노동협력을 체결했다. 회사측은 노조 가입 근로자의 95%에 대한 직업 안정을 보장했고, 노조측은 조립공장과 부품공장 근로자의 임금 격차를 인정했다. 더 이상 과격한 인원 정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회사측의 양보사항이고, 노조도 더 싼 부품을 외부에 발주하는 것보다 부품 공장에 낮은 임금의 근로자를 고양할수 있도록 양보했다.

차등임금을 인정하는 것은 노조로서 양보하기 힘든 사안이다. 그러나 포드 노조는 일본자동차에 밀려 불황에 허덕이면서 회사의 경쟁력 회복이 곧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80년대초 포드 자동차가 14개 공장을 폐쇄할 때 매파가 지배했던 UAW의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조가 쇠퇴하고 노동운동이 유순해졌지만, 미국 경제는 90년대 들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엄청난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21세기에 진입하기 직전에 미국의 실업율은 30년만에 최저치인 4.2%까지 떨어졌다. 미국경제에서 실업률이 5.5%면 완전고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해왔던 경제학자들이 아연해 할 정도다. 1995~97년 사이의 3년 동안 실업률은 3% 포인트 이상 하락했고, 8백만 명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고용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노동가능인구 6,600만 명의 일자리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은퇴한 노인네들도 마음만 먹으면 동네 체인점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대학졸업생에게도 구인 요청이 쇄도, 졸업 전에 입도선매하지 않으면 명문대 출신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또다른 특이한 현상은 고용이 늘어나지만, 고용비용, 즉 인건비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호황으로 공장 가동이 활발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 노동시장에 수요공급에 애로가 생겨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경제논리다. 그러나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4년과 95년에 직장을 잃고 96년에 직장을 새로 구한 미국인들의 실질 임금은 14%나 줄어들었다. 대기업들이 대규모 인원 감축을 단행하면서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이 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으로선 경영여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지만, 근로자들로선 그만큼 임금과 복지혜택이 줄어드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 호황이 가져온 그늘이라 하겠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향유한 호황이 독일과 일본을 패망시키고 나타났다면, 20세기말 10년간의 호황은 1980년대말 소련을 비롯, 공산권이 붕괴된 후 나타났다. 노동자의 천국을 꿈꾼 이상주의 국가가 20세기말에 유물이 되어 버렸고, 21세기엔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가 심판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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