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역사] ③ 무너진 '성수대교(1994년)ㆍ라오스댐(2018년)'...공통점은 '주먹구구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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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역사] ③ 무너진 '성수대교(1994년)ㆍ라오스댐(2018년)'...공통점은 '주먹구구 관리'
  • 유태영 기자
  • 승인 2022.02.04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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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강 성수대교 상판 48m 붕괴돼 32명 사망
SK건설이 시공한 라오스 댐 붕괴…사망 71명·이재민 7000여명

대한민국이 산업화하면서 건축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고층 건물은 물론이고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대교도 짓는다. 아파트는 필수재가 됐고, 백화점·마트에선 생필품을 구매한다. 마포대교·성수대교는 서울 강남북을 잇는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건축물이 붕괴돼 생사의 기로에 서게도 한다. 국내외 붕괴사고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유태영 기자] 다리와 댐이 붕괴해 수십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국내외에서 발생했다. 다리와 댐은 사회간접자본(SOC)으로서 무엇보다도 안전성이 우선이다. 하지만 한강 다리가 무너져 평소처럼 등교 버스에 올라탔던 학생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갔다. 라오스에선 선진국에서 첨단 기술로 튼튼하게 공사한다고 생각했던 댐이 무너져 수십명을 사망케 하고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이 물에 잠겼다.

성수대교가 '뚝' 끊겼다…32명 사망

1994년 10월 21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다리가 순식간에 '뚝' 끊어졌다.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등교하고,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오전 7시 38분에 '성수대교' 상판 48m가 붕괴돼 한강 수면위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32명이 숨졌고, 17명이 다쳤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 무너진 성수대교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 무너진 성수대교 모습. 사진=연합뉴스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처럼 예견된 사고였다. 사고 발생 당일 생벽부터 성수대교 상판 이음매에 균열이 있다는 신고가 여럿 서울시에 접수됐지만 방치한 결과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책임은 시공사인 동아건설과 보수 및 관리기관인 서울시의 책임이 각각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수대교는 건설당시 '트러스식' 공법으로 다리를 건설했다. 이 공법은 이음새가 딱 들어맞지 않으면 무너질 위험이 높은 공법이었다. 완공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음새를 유지관리 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1979년에 건설된 성수대교는 사고시점에 이미 완공된지 15년이 넘어 유지보수가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당시 MBC 보도에 따르면 사고현장 수중촬영 결과 단단히 잠겨있어야 할 볼트가 손으로 돌려도 될 정도로 헐거웠다고 보도됐다.

서울시는 교량 보수 및 관리에 미흡했다. 성수대교는 설계 당시 하루 통행량 8만대를 견딜 수 있게 만들었지만, 실제 하루 통행량은 설계 예측량의 2배가 넘는 16만대 이상 이었다. 더욱이 사고 발생 전년도인 1993년에 동부간선도로의 강북구 구간(성수~상계) 구간이 개통하면서 교통량은 더욱 늘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통행량 폭증 + 과적차량 단속 미비 = 피로균열 누적

통행량이 폭증하는데도 불구하고 과적차량 통행 단속에도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당 최대 18톤 하중을 견디게 설계됐지만 성수대교 북단에 있는 삼표산업 레미콘 공장에 드나드는 레미콘 트럭은 한 대당 최대 25톤에 달하는 과적차량이었다. 통행량 폭증과 과적차량 단속 미비로 피로균열이 생길수 밖에 없는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사고 발생 당시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은 사고 직후 바로 경질됐다. 성수대교를 시공한 동아건설에 대한 처벌은 사고 발생 8년후인 2002년에 내려졌다. 대법원은 서울시가 동아건설을 상대로 낸 구상금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동아건설)는 원고(서울시)에게 19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희생자 배상금 및 위로금, 다리 재시공비 등으로 860억여원을 이미 지출한 상태였다. 

다리 중간이 끊긴 성수대교는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짓기 시작해 1997년 7월 완공돼 차량통행이 재개됐다. 마포대교·양화대교 등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재시공하거나 전면보수에 들어가 대형참사의 재발을 막았다.

 

붕괴된 보조댐 아래 인근 마을이 물에 잠긴 모습. 사진=연합뉴스
붕괴된 보조댐 아래 인근 마을이 물에 잠긴 모습. 사진=연합뉴스

라오스댐 붕괴…사망 71명·이재민 7000명 발생

SK건설이 라오스에 짓고 있던 댐이 붕괴돼 수십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수천명에 달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2018년 7월 23일 라오스에서 발생한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다.

이 댐은 당시 SK건설(지분 26%)이 시공을 맡았고, 한국서부발전(지분 25%)은 발전소 운영을 담당했다. 태국 RATCH(지분 25%)와 라오스 국영기업 LHSE(지분 24%)은 전기판매를맡았다. 합작법인 'PNPC'가 건설중인 '세피안-세남노이(Xe Pian-Xe Namnoy)' 보조댐이 무너져 5억톤 가량의 물이 하류로 쏟아졌다.

이 댐은 2019년 2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중이었다. 발전용량은 410㎿(메가와트)로 총 사업비는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다. 공사비는 7억1000만달러(약 8000억원) 규모다.

이 사고로 인해 하류지역 13개 마을이 잠겼고, 1300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이재민 7000여 명을 포함해 1만1000여명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라오스 정부가 공식 확인한 사망자는 71명, 실종자는 131명이었다. 

댐 붕괴로 라오스 인근 국가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댐 붕괴로 인한 홍수가 캄보디아 동북부 17개 마을을 덮치면서 북부 스퉁트렝 주(州)의 세콩강 인근 거주민 2만5000여명이 급류를 피해 집을 비우고 대피소로 향하는 등 인접국가로까지 피해가 확산됐다.

이 사고에 대해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은 서로 엇갈린 해명을 했다. 당시 SK건설 측은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보조댐이 넘친 것"이라고 사고 원인을 설명했다. 서부발전 측은 "사고 발생 3일전부터 댐 중앙에 침하가 확인됐고 날이갈수록 더욱 침하범위가 넓어지며 붕괴했다"며 상반되게 설명했다.

댐 붕괴에 대한 피해 보상안이 나오기까진 2년이 소요됐다. 지난 2020년 7월 라오스 정부는 댐 프로젝트 사업자 'PNPC'가 보상·복구비로 약 1094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중 약 629억원은 희생자와 재산 피해 보상에 쓰이고, 약 467억원은 인프라 복구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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