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갑질’ 사태 이후 10년간 시총 62% 증발
한진그룹도 오너리스크 오명 못 벗고 있어
“대주주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해야” 목소리도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연초부터 예상치 못 한 오너리스크로 해당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 오너리스크 하면 떠올랐던 위법 행위나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기업 대표로서의 책임감을 잊은 채 본인의 위치를 활용한 독점적 언행으로 내부 임직원 및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소액주주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 대주주 국민연금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멸공’ 발언에 ‘먹튀’ 논란까지…다양한 오너리스크 종류
오너리스크란 재벌 회장이나 대주주 개인 등 총수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의 경영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기업과 임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오너가 잘못된 언행으로 기업을 존폐 기로에 서게 만들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최근 가장 화두가 된 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멸공’(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를 멸한다는 뜻) 발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5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 간 개인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멸공 관련 게시글을 올려왔고, 해당 발언은 정치권 이슈로까지 번졌다.
일부 소비자들은 스타벅스를 비롯한 신세계 계열사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는 등 논란은 일파만파 퍼졌다. 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여파가 수만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 부회장에게 해당 발언을 멈춰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정 부회장은 1월13일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며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입니다”라고 사과글을 남기며 일단락 됐다.
다만 이 기간 동안 신세계,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I&C. 이마트 등 신세계그룹주는 적으면 2%에서 많게는 7%까지 내려앉았다.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1월11일에는 하루 동안에만 신세계그룹주 약 2400억 원에 달하는 시총이 날아가기도 했다.
새로운 유형의 오너리스크 직격타를 맞게 된 개인투자자들은 “(정 부회장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자그마치 재벌 오너로서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회사 이익이 줄어들 수 있고, 주주 피해가 갈 수 있는데 갈수록 오너리스크 큰 기업으로 느껴진다”며 비판했다.

카카오도 해당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 그룹 중 한 곳이다. 연초 108조2432억 원이었던 그룹주 시가총액은 한 달 새 약 30조 원이 증발했다. 플랫폼 규제 리스크로 주가 상승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경영진의 주식 대량 매도가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앞서 지난해 12월10일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CEO) 등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은 회사 상장 약 한 달 만에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보유 지분 44만993주를 팔아치웠다. 여기에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도 지난해 8월 상장 직후 지난해 4분기 중 스톡옵션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잇따른 ‘먹튀’는 투자심리를 위축시킨다고 분석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가 위법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시장의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수익성 회복을 통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주가 반등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탈세 의혹에 휩싸였다. 김 의장 소유의 케이큐브홀딩스가 지난 2014년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 과정에서 8863억 원을 탈세했다는 혐의를 받아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남양유업의 오너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5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와 그간 남양유업 불매 운동에 관한 책임을 진다며 회장직 사퇴와 회사 매각 의사를 밝혔고, 남양유업 주가는 기존 30만 원대에서 70만 원대로 2배 넘게 치솟았다. 주인이 바뀐다는 소식에 오래된 오너리스크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연 한앤컴퍼니와의 매각 계약을 철회하는 것을 넘어서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지자 남양유업의 주가는 다시 30만 원선으로 줄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시가총액 역시 2012년 말 대리점 갑질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7209억 원에서 지난 달 28일 종가 기준 2704억 원으로까지 쪼그라들며 62% 이상이 날아갔다.
그런가하면 과거 오너리스크가 아직도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으로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시가총액 2000억 원 이상이 증발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018년에는 차녀 조현민 당시 진에어 전무가 ‘물컵 갑질’ 사건으로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한편 조현민 ㈜한진 부사장은 지난 12일 한진그룹 2022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2020년 12월 한진칼 전무에서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불과 1년 만이다.
한진그룹은 조 사장이 한진의 물류사업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하고, 업계 최초로 물류와 문화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진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020년보다 13% 늘어난 2조5033억 원을 기록한 데 반해 영업이익은 1058억 원으로 2020년보다 1억 원 감소했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하라” 목소리도
오너리스크 및 경영진리스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상할 수 없는 돌발 악재인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 입장에서 대응하기에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기존의 불법 행위나 도덕적 해이 뿐 아니라 기업 대표로서의 책임감보다 본인의 지위를 이용한 독단적인 언행을 특별한 제재 없이 자유로이 펼침으로서 기업 이미지에 해를 끼치고 있다.
노동·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에게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24일 참여연대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이 회사와 주주가치를 훼손한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부실공사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카카오·카카오페이는 무분별한 물적분할과 임원들의 먹튀 매각으로 주가가 대폭 하락했으며,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회사 경영을 자의적으로 좌지우지하는 현재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사회가 책임 있는 경영의 주체로서 나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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