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린 K-개미]① 해외선 거의 없는 ‘쪼개기 상장’, 한국선 유행처럼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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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돌린 K-개미]① 해외선 거의 없는 ‘쪼개기 상장’, 한국선 유행처럼 번져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2.02.0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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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어 올해도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
개인투자자들, 국내 증시 대신 해외로 눈 돌려
외국선 물적분할 거의 없어…소송에 민감해
금융·정치권, 부랴부랴 소액투자자 보호 정책 내놔
최근 국내 증권시장에서 기업의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진=Pixabay
‘코스피 3000 시대’의 주역이나 다름없는 동학개미들이 하나둘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방안이나 정책이 전혀 없어 투자할수록 손해 본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때 국내 증시를 이끌었던 개인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지, 그에 대한 대책은 없는지 3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최근 국내 증권시장에서 기업의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처음으로 국내 주식 거래 활동 계좌 수가 5000만개를 넘어서는 등 모두가 주식 투자에 빠졌지만,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개미의 불만이 커지자 한국거래소에 정치권까지 나서 부랴부랴 개인투자자들의 마음 달래기에 나섰다.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은  올해도 계속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특정사업부를 떼서 별도 법인으로 설립하는 것이다. 이때 모회사는 떼어 낸 사업부에 대한 지분을 100% 소유해 지배권을 행사한다. 이에 따라 기존 모회사의 주주는 분할된 자회사의 주식을 가지지 못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물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 이후 기업공개를 하는 것이다. ‘쪼개기 상장’으로 불리는 해당 행위는 모회사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 이미 상장한 회사가 알짜배기 사업부를 자회사로 뗀 후 또 상장하게 되면, 모회사의 주주가치는 감소할 공산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해야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보호 정책 하나도 없이 회사의 자금 조달에 대한 재무 부담을 시장에 떠넘기고 있다”고 말한다. 모회사의 주가 하락에 대한 피해를 개미들이 고스란히 본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IPO 대어로 불렸던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모두 쪼개기 상장으로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기업들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자회사로 상장시킨 후 한 달간 주가가 31.46% 떨어졌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역시 지난해 5월11일 상장하자 모기업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당일 3.58% 빠졌다. 현재 연고점에 비해서 34.20%가량 떨어진 상태다. SK그룹의 배터리 사업 성장 가능성을 보고 SK이노베이션에 투자한 이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인한 LG화학의 주가 하락이 문제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12월8일 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가와 공모일정이 공개된 후부터 최근까지 두 달여간 약 15% 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첫날인 지난달 27일에는 60만5000원을 찍으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올해 상장 예정
올해 상장이 예정돼있는 기업들의 대부분이 모회사를 두고 있다. 자료=각 사 및 증권업계

올해도 기업들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모빌리티가 상장을 예고했으며, 이마트에서 분할된 SSG닷컴이 상장 준비에 한창이다. 이밖에도 CJ그룹의 CJ올리브영, SK스퀘어의 SK쉴더스와 원스토어 등이 있다. 

다만 쪼개기 상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어 해당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지난 달 28일 SK이노베이션은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SK온 IPO에 대해선 현재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물적분할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도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게임즈 등 3개 자회사 상장으로 기업 자금을 조달했던 카카오도 재검토에 나섰다. 최근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경영진의 ‘먹튀’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상장 관련해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해외선 금지…개미 떠나자 부랴부랴 방안 제시해

국내에서는 뜨거운 감자인 쪼개기 상장이 해외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해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소송 리스크 등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유튜브를 비롯한 많은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장하지 않고 있다.

기업 분할을 하더라도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을 통해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지급하거나 현금 보상을 한다. 작년 12월10일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는 트럭사업부 다임러트럭을 분할해 독일 증시에 상장시켰고, 다임러 주주들은 다임러트럭 신주 65%를 모회사 지분율에 따라 받았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회사가 모회사와 동시 상장되는 사례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고 영국은 5%, 일본은 7% 정도 된다”며 “(양사 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쪼개기 상장으로 끊임없이 주가 하락 피해를 보면서도 별다른 보호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2월 한 달간 7조5157억 원을 순매도했다. 그 전 달인 11월에도 2조3877억 원을 내던졌다. 개미 순매도는 2020년 11월 이후 1년 만이다.

반면 해외주식 투자는 급증했다.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한 해외주식 결제대금은 3985억 달러(약 482조7800억 원)로 2020년(1983억 달러) 대비 101% 급증했다.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5일 서울 사옥에서 열린 2022년 핵심전략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5일 서울 사옥에서 열린 2022년 핵심전략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영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물적분할은 100% 자회사가 되는 사업 부문이 비중도 크고 중요해 소액주주 지분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자회사가 상장하면 지주회사 할인 등으로 모회사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떠나는 동학개미들을 붙잡기 위해 다양한 소액주주 보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회사가 물적분할 후 상장 시 신주를 모회사 주주들에게 우선 배정하는 등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물적분할과 관련해 신사업을 분할해 별도 회사로 상장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 하겠다고 언급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도 물적 분할 후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상장심사에 모회사 주주의 의견을 반영했는지 검토 내용에 포함해 향후 실행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은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의 정의정 대표는 “지배주주가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소액주주에게 전가하는 자금조달 방식이자 교묘한 논리로 허술한 법망을 피해 소액주주 권리를 짓밟는 전근대적 행태”라며 “대기업 상장사들의 무분별한 물적분할을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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