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세상읽기]⑲ 車업계는'짝짓기'의 계절...모터스 딱지 떼고 '합종연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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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세상읽기]⑲ 車업계는'짝짓기'의 계절...모터스 딱지 떼고 '합종연횡'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1.31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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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차 업계, 친환경차 전환 박차
전기차, 전통의 차 산업 경계 허물어
K-배터리,글로벌 완성차와 동맹 가속
한은 "정책 대응 및 규제 개혁 속도 내야"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다른 업종 기업 간 합자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불과 40년전 노트북은 공상과학 영화의 소품 정도였다. 20년전 스마트폰은 먼 미래의 상징일 뿐이었다. 이제 인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버금가는 이동 수단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10년 후 늦어도 20년후 세상을 또 한번 바꿔 놓을 ‘모빌리티’. 아직도 모빌리티에 대한 개념은 모호하다. 모빌리티는 인류가 육·해·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 자동차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모빌리티를 준비하는 글로벌 자동차·IT업계 동향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대한민국의 대표적 굴뚝산업이었던 자동차 업계가 변화하고 있다. '모터스' 간판을 떼고 다가올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맞아 전자와 IT 업계와 손 잡으며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GM의 옛 CI(왼쪽)와 미래차 시대로 전환 의지를 담은 새 CI 모습. 사진제공=GM

기아·GM의 사명·로고 변경의 의미

지난해 1월15일 기아자동차는 1990년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지 13년 만에 '기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명에서 '자동차'를 뺐다. 기존 제조업 중심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전동화와 자율주행을 바탕으로 친환경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를 위해 중장기 '플랜S'도 마련했다. 플랜S는 전기차와 모빌리티, 목적기반차량(PBV)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대차 역시 사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자동차를 빼면 같은 집안인 현대그룹과 사명이 겹쳐 고민도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도 지난해 57년 만에 로고를 교체했다. 1938년 창사한 GM은 1964년부터 파란 바탕에 하얀 알파벳 대문자로 쓴 'GM' 로고를 사용해 왔다. 그동안 중간에 음영효과를 넣는 등 소소한 변화가 있었지만 지난해 전격적인 변화를 선택했다.

GM의 새 로고는 미래 친환경차 시장을 노린 포석으로 풀이된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 알파벳 소문자 'gm'은 탄소배출 제로로 청명한 하늘과 전기차 플랫폼인 얼티엄을 의미한다. 소문자 'm' 주변의 흰 공간은 전기차 플러그를 상징한다는 게 GM의 설명이다. 

이탈리아와 미국 합작 자동차 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 그룹 푸조시트로엥(PSA)은 지난해 '스텔란티스'로 합병했다. 이 합병으로 피아트, 마세라티,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푸조, 시트로엥, 오펠, DS 등 14개 브랜드가 스텔란티스 산하로 뭉쳤다. 스텔란티스는 연간 60억 달러(약 6조8000억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브랜드를 퇴출해 이 비용을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분야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전통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사명 교체와 로고 변경, 합병 등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오닉5 티저. 사진제공=현대차

차 산업 경계 허무는 전기차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오랜 시간 엔진과 변속기 등 기술 장벽이 높은 고유 영역을 지켜오며 남다른 기술과 특허를 바탕으로 다른 업종 기업의 진출을 원천 차단해 왔다. 세계 시장을 주름 잡는 독일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와 폴크스바겐, 미국의 GM, 일본의 도요타 그리고 한국의 현대차그룹등은 엔진과 변속기 등의 자체 설계와 생산 능력 확보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높기만 했던 기술장벽은 전기차 시대 허물어졌다. 전기차 시대 가장 중요한 배터리 기술력과 생산력은 차 기업이 아닌 한국과 중국, 일본 배터리 기업이 쥐고 있다. 전기차에 쓰는 모터는 내연기관의 엔진이나 변속기 등 구동 계통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기술 장벽이 낮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세계 각국은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은 2034년 일반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금지한다. 일본도 2030년대 중반까지 순수 내연기관을 퇴출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EU)은 205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해 전기차 시장 육성에 나섰고, 미국도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2050년 타놋 배출 제로를 목표로 제시했다. 한국 역시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을 목표로 친환경차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이 2025년 10%, 2030년 28%, 2040년 58%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20년 뒤 도로를 달리는 차량 중 절반은 전기차가 될 전망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합작법인 ‘얼티엄셀스’ 생산 공장.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K-배터리, 글로벌 완성차와 동맹 가속 

국내 배터리 업계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전기차 배터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미국에 전기차 전용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고 현지 시장 대응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이미 미국에 배터리 합작사를 만들었고, SK이노베이션도 포드와 유럽에 합작사를 세운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처 확볼르 위해 글로벌 완성차와 K-배터리가 적극적인 합종연횡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으로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를 세운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의 전기차 전환을 위해 2025년까지 130GWh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2030년 이를 26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 성능을 고도화하고 각형 타입으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구현한 바 있다. '젠5'는 삼성SDI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니켈 88% 함량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술이 적용돼 한 번 충전에 주행거리가 600㎞에 달한다. 삼성SDI는 젠5 배터리를 BMW,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에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유럽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작사는 터키가 유력시 되는데 미국 외 유럽에 합작사를 짓는 건 처음이다. 합작사에서는 파우치 배터리가 생산될 계획이며,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공장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포드는 '마하-E'에 이어 'F-150' 등 전기차 전환을 위해 SK이노베이션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사업 협력을 전방위 확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서 중국 창저우에 베이징자동차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합작사는 베이징자동차 전기차 '마크5'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베이징자동차는 고급 전기차 브랜드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손을 잡았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 베이징자동차 등 완성차와 협력을 확대하면서 2030년 연간 500GWh 이상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자동차와 인도네시아에 합작사를 설립한다. 국내 배터리와 완성차를 대표하는 양사가 손잡고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2023년까지 1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며, 배터리 생산량을 계속해 늘리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 것은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 매장량 세계 1위 국가다. 니켈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핵심 소재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 90% 함량 하이니켈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앞세워 테슬라, GM, 현대차 등 세계 주요 완성차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인도네시아 공장 건설을 계기로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역량을 강화해 아세안 시장을 넘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미국 테네시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도 건설한다.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제1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양사는 2개 합작 공장에서 2024년까지 70GWh 이상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이는 1회 충전 시 500㎞ 이상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100만대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합작사는 일본 혼다에도 배터리를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혼다는 도요타, 닛산과 달리 전기차 전환에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배터리 수급처로 제조 기술 및 생산 투자에 가장 앞서가는 LG에너지솔루션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은 IT와 자동차의 경계를 허무는 미래차 산업이 전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은 "IT와 경계 허무는 미래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 견인"

산업간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산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 당국의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14일 'BOK 이슈노트'에서 '빅블러 가속화의 파급효과: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빅블러 현상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산업군으로 자동차 산업을 꼽았다. 내연기관 시대가 저물고 대신 전자 부품의 비중이 커지는 전기차와 IT기술이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IT 산업과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각 기술 간 시너지 효과도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전기차 기술이 발전할 수록 자율주행 관련 기술도 빨리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은행은 이런 변화가 자동차 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기술과 더불어 공유차 서비스 등이 발전하며 이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구조가 재편되거나, 기반시설(인프라)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운전자 없이 스스로 주행하는 대중교통이 발달하며 해당 산업이 변화하고, 차량 무인 소환기술로 고속도로 인프라가 바뀌고 도심 주차난이 해결돼 관련 기반 시설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연관된 철강과 건설, 보험 등 산업은 비즈니스 모델 전환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현장의 변화 속도를 당국의 정책이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기업 KPMG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주행 관련 정책·입법요소 준비 정도는 조사 대상인 30개국 중 16위에 불과했다. 자율주행 관련 기술 혁신(7위), 인프라(2위) 등의 지표는 상위권을 차지한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정선영 한국은행 거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미래차 시장의)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함에 따라 지난 10년보다 향후 10년의 변화가 훨씬 광범위하고 역동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이 IT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변화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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