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혐의자, 여러 과외 사이트를 통해 대학생들과 접촉
27일, 범인이 가가와현 경찰서에 자수
새롭게 드러난 日 전자기기 부정행위 방지 규정 미흡
日 네티즌, ‘디지털 후진국’이라며 한탄
[오피니언뉴스=김재훈 일본 방송언론 연구소장] 일본에선 최근 대학 입학시험 문제가 스마트폰을 통해 유출된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 입학시험 문제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지난 15일 드러났다. 당시에는 자칭 ‘고등학교 2학년생’이 도쿄대 학생에게 스마트폰으로 시험 문제를 찍어 보내 답을 요구했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지난 27일, 범인이 자수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범인은 애당초 알려진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닌 대학교에 재학 중인 재수생으로 대학 입시 한 달 전부터 여러 대학생과 접촉해 준비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전문가들은 빠른 기술 발전으로 인해, 시험 고사장의 감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디지털 후진국인 일본이 대학 입시에서 전자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에 대한 대응마저 뒤처진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일본 언론들은 지난 15일, 대학 입학시험 도중에 ‘세계사 B’의 시험 문제를 스마트폰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자수하면서, 급전개를 맞이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애당초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추정됐던 범인이, 19세의 여대생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자칭한 인물이 대학 입시 시험 문제를 찍은 사진을 도쿄 대학의 남학생 등에게 인터넷 통화 앱인 ‘스카이프’를 사용해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경시청에 의하면, 문제를 유출한 인물은 여러 가정교사 소개 사이트를 통해서 적어도 4명의 대학생에게 ‘가정교사 실력 확인’이라는 명목으로 가정교사 채용 테스트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
27일, NHK의 밤 메인 뉴스인 ‘뉴스워치9’의 인터뷰에 응한 도쿄대학의 한 남학생은 대학 입시 한 달 정도 전에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와, 지난 15일에 세계사와 현대문의 문제를 보낼 테니 가능한 완벽한 답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여학생의 의뢰에 답하지는 못했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번 사건은 열심히 준비한 수험생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킨 비겁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TBS 뉴스의 인터뷰에 응한 교토대학의 남학생은 여학생이 15일 오전에 세계사 체험 수업을 해, 문제에 대한 답을 보내줄 수 있다면 스카이프에 추가하겠다고 했지만, 부탁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도쿄의 대학에 다니는 한 여대생은 ‘세계사 B’ 만이 아니라, 국어와 영어 등, 총 7과목의 의뢰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시험 당일에 연락이 끊겨 실제 시험 문제 사진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대학생은 대학 입학시험 문제인지 모르고 답을 보내줬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한편, 경시청에 따르면 ‘위계 업무 방해’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27일,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19세 여대생이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가가와현 경찰서에 출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여대생은 오사카의 대학에 다니는 1학년 학생이라고 전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려고 했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아 자신이 없어 부정행위를 해 버렸다’라며, ‘문제가 된 사진은 스마트폰을 상의 소매에 넣어 촬영했다. 혼자서 했으며 깊이 반성 중이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번 문제에 관해 27일, NHK의 밤 메인 뉴스인 ‘뉴스워치9’에 출연한 전문가는 통신 기술이 발달하는 가운데 시험 감독만으로 문제를 방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다른 시험장에서 감독을 맡았던 한 인물은 학생들이 스마트폰 조작에 매우 능해서 부정행위를 적발할 자신이 솔직히 없다고 말했다.
경시청에 따르면 타인을 속여 업무를 방해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50만 엔(약 52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위계 업무 방해죄’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1년에는 교토대학의 시험에서 당시 19세 남성이 휴대폰을 사용한 부정행위로 적발됐지만, 대학 측에 사죄문을 쓰는 한편, 깊이 반성했다는 이유로 가정법원이 처벌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27일, 니혼TV의 밤 메인 뉴스인 ‘news zero’에서는 처벌 여부는 본인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전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였던 와카세 마사루 변호사의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의 대학 입시 제도는 대학입학공통테스트와 대학별 본고사로 이뤄진다.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의 경우, 대학에서 전공과 관련된 교과를 사전에 지정하여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시험의 활용 여부 및 시행 방법은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 현재 일본의 국공립대학 전체와 사립대학 일부가 이 시험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대학별 고사는 대학별로 치르는 학력시험, 소논문, 면접 등이 있으며, 각 대학은 대학입학공통테스트와 대학별 고사를 종합하여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추천 입학, 특기생 전형, 부속 고등학교로부터 진학, 직장인을 위한 특별 전형 등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시험지옥'이라는 말을 낳을 만큼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하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언론에서 이 점을 다루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 일본 언론들은 매년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에 시험장 주변의 상황을 생방송으로 대대적으로 보내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한국의 학력 사회를 보도하는데 열을 올리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5년 대학 입시 때, 핸드폰 입시 부정으로 큰 논란이 됐었다. 이에 2006년부터 대리 시험을 방지하기 위해 답안지에 수험생 필적 확인란이 생긴 것은 물론,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는 등, 부정행위 방지 조치가 한층 엄격해졌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 대학 입시에서 전자 기기에 의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국가 지침 제정이 되지 않아, 부정행위 발각은 시한폭탄과 같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결국 이번 사태가 터지자 ‘디지털 후진국 일본’이라는 이미지만 더 강해졌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한탄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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