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늘 카카오 공동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예전 NHN 시절부터 김범수 의장은 수많은 젊은 창업자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종종 표명해왔다. 게임 및 포털 등 IT업계에서 김범수 의장을 따르는 기업가가 유독 많은 이유이다. 다른 많은 창업자들이 사업 육성에 포커스를 둔다면 김범수 의장은 인재 육성에 포커스를 둔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경영진은 김범수 의장과 함께 지난 10년의 성장과정을 대체적으로 함께 해온 인물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카카오가 지향하는 목적과 방향성을 잘 알고 있다고 이들은 강조해왔다.
그러나 외부에선 카카오가 그룹이나 계열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면 정말 이들이 생각하는 공동체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보여준 도덕적 해이
2021년 최고의 공모주는 카카오페이였다. 카카오페이는 ‘누구에게나 이로운 금융’임을 내세우며 국내 기업 최초 100% 균등배분 청약 방식을 도입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182만명이 당시 카카오페이 청약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 카카오페이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주가추이와 실적에 가장 민감한 기관조차 꾸준히 해당 주식을 사들였다.
카카오페이는 상장 후 한 달도 안되어 상장 첫날 대비 50% 이상 주가가 급등했다. 보통의 공모주가 공모일로부터 5일 이내에 주가 거품이 빠지는 반면 카카오페이는 한달 내내 주가가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성장성이 높다는 이유로 기관이 카카오페이 주식을 매수하자 해당 주가가 고평가되었다고 생각했던 개인들도 다시 카카오페이 주식 매수에 나섰다.
상승 국면에 들어선 카카오페이의 주가에 찬물을 끼얹은 요소가 내부 경영진이라는 점에서 대다수 투자자는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보통의 경영진이 기업의 주가를 지키기 위해 추가로 주식을 매수하거나 성과창출 방안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젊고 혁신적인 기업가라고 불렸던 카카오페이의 경영진은 상장 후 한 달 만에 무려 900억원의 주식을 팔았다.
개인과 기관이 카카오페이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장기투자에 나선 반면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지금이 고점이기에 얼른 주식을 팔아 차익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회사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내부 경영진이 솔선수범(?)에 나서며 주식을 처분하자 카카오페이 주가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개미투자자가 한 둘이 아니다.
40대 중반의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이번 주식 매도를 통해 469억의 차익을 거두었다. 개인적 사정으로 주식을 처분했다고 밝혔으나 금액 자체가 너무 컸기에 그의 항변은 설득력을 잃었고 오히려 개미투자자와 노조의 분노 그리고 구성원 반발이라는 역풍에 직면했다. 주식을 신속히 처분한 경영진이 생각한 기업가정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범수 의장, 카카오 공동체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카카오의 창업자이자 카카오 공동체의 실질적 리더인 김범수 의장은 2007년 NHN을 떠나면서 100명의 CEO를 육성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가정신을 더 많이 확산시켜 자신보다 유능하고 창의적인 기업가를 키워가겠다는 그의 생각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이를 위해 그는 카카오에서도 수평적인 문화를 구축, 관리와 통제 대신 권한위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권한위임을 하기에 앞서 카카오가 어떤 세상을 원하고 있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사업을 하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김범수 의장은 외부 고객 그리고 내부 조직 구성원에게 이 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카카오 공동체 CEO들과 토론했어야 하는데 이런 얘기도 내부에선 들리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카카오의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골목상권 진출 논란과 수수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범수 의장은 사과를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의장이 사과를 했다는 건 카카오가 그룹 차원에서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그림이 부족했다고 봐야 한다. 방향성 없이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또 다른 문제는 곧바로 터질 수밖에 없다.
수평적인 문화가 아닌 비전과 미션이 문제의 본질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모든 언론이 카카오의 독립경영과 수평적, 자율적 문화가 이번 문제를 초래했다고 제기한 점이다. 카카오 공동체의 김범수 의장이 독립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조성한 결과 이런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모든 언론은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수평적인 문화가 아닌 CEO의 비전과 미션 제시가 부족했다는 점에 있다.
수평적이고 독립적인 문화가 자유방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경영과 문화를 조성하지만 이들이 사업 확장에 혼선을 겪지 않는 이유는 창업 초기부터 비전과 미션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CEO와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기 때문이다. CEO는 조직 내부에 컨트롤 타워를 신설하기에 앞서 먼저 비전과 미션을 고민해야 한다.
기업가는 사명감이 투철하고 기업가정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버나드(Banard)는 비전·가치관을 토대로 의욕을 지닌 사람들이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기업가정신의 본질을 이해하는 CEO를 육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카카오를 이끌고 있는지 김범수 의장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사명감과 철학이 없는 기업가만큼 위험한 요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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