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규제산업 '금융업계'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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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규제산업 '금융업계' 초긴장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01.12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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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 통과…6개월 후 시행
KB국민·기업은행 올 3월 주총서 후보 추천
"견제와 균형의 원리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 필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노동이사제 법안(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공공부문 노동이사제가 정식으로 도입되면서 이와 관련된 노조추천이사제가 민간으로 확산될 지 금융권이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은 공공부문만 해당되지만, 민간 중에서도 규제산업인 금융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지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회 사외이사로 참석시키는 제도로 이사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통상 노조추천이사제는 노동이사제의 전 단계로 여겨진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공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행은 법 공포일로부터 6개월 뒤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은 비상임이사에 노동자 대표의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노동자 중에서 3년 이상 재직한 1명에게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참모회의에서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되는 법안"이라며 "우리 사회의 경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보·예보·캠코 등 5개 공공기관 하반기부터 노동이사제 도입

앞으로 131개 공공기관은 하반기부터 근로자측 비상임 노동이사 1명을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금융권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공공기관은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신보), 예금보험공사(예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등 총 5곳이다. 

다만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한국투자공사 등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법적 대상이 아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금융권 공공기관들은 법안이 시행된 이후부터 노동이사제를 적용할 전망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올해 10월경 기존 비상임 이사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이에 맞춰 노동이사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신보는 이달 2명의 비상임 이사 임기가 만료되지만 노동이사제는 법 시행 이후에 도입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금융권 공공기관들이 법 시행 이전에 노동이사제를 더 일찍 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캠코의 경우 오는 4월 2명의 비상임 이사 임기가 만료되며, 주금공은 오는 6월 3명, 예보는 8월 초 3명의 비상임 이사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한 금융공기관 관계자는 "현재 공운법 기준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6개월 후에 법안이 시행되기 때문에 그때까지 제도를 만들어서 법안 시행에 맞춰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확산 주목…KB국민·기업은행 주총서 후보 추천 계획

관건은 금융권에서 노조추천이사 선임 움직임이 얼마나 확산되느냐다. 이번 개정법 통과로 국책은행 등 기타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강하게 추진될 전망이다. 또한 민간 금융사들도 개정안 통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수출입은행에서 지난해 9월 금융권 최초로 노조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가 임명된 바 있다. 기업은행에서도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했지만 선임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이에 기업은행 노조는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2명의 사외이사 교체시기에 맞춰 후보를 추천한다는 계획이다. 

KB국민은행 노조 역시 올 3월 주총에서 한 명의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사회에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할 목적으로 후보 추천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타공공기관인 산은이나 수은은 아직 대상이 아니지만 국책은행이니만큼 노조를 중심으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강하게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민간에서도 금융노조 등을 통해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면 그 다음에 시중은행 각 지부별로 노조추천이사제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에 노동계·재계 입장 엇갈려

노동이사제 도입을 놓고 노동계와 재계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가 긍정적인 입장을 내세운 반면 재계는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먼저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협의회(한공노협)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에게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경영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이해당사자로서 잘못된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작점으로써 이 제도는 충분히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이사제는 한국사회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킬 수 있는 큰 발전"이라며 "워낙 큰 변화다 보니 우려나 저항이 크긴 하지만 노동이사제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니 앞으로 성과를 보여주면서 참여를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노동계와 재계가 오랜 기간 동안 대립해오다 보니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일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은 강성노조로 인해 노사 간 갈등과 쟁의행위가 빈번한데 이런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공기관의 효율적인 경영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정치 투쟁이 활발한 우리나라 노조의 특성상 공공기관 이사회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높다"고 비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입장문을 내고 "노동이사제는 일부 유럽국가에서 도입한 제도로 우리나라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풍토와는 맞지 않다"며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데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노동조합이 더 강한 힘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 국민들의 이익과는 반대될 수 있다"며 "공공기관에서 임금을 더 올리고 소위 말하는 '철밥통'을 강화하면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이사제 본질에 맞게 운용해야...제도적 보완 필요"

이에 향후 노동이사제 운용 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가 노동이사를 독점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노조만이 아닌 전체 직원들이 노동이사를 선출하는 방식이 더 노동이사에 부합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노동이사가 노조와 손잡고 경영진을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서 제도적인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조합원과 경영진의 일원인 이사의 신분은 이해충돌 관계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노동이사 임기 중에는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재준 노동연구원 박사는 "노동이사는 경영을 하는 데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냥 거버넌스 상 감독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본래의 역할이 무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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