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의 「천년의 금서」…소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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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천년의 금서」…소설일 뿐이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09 17:2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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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의 韓侯, 史實로 입증 어려워…삼한을 너무 왜소하게 보았다

 

소설은 마약과 같은 것일까. 한번 빠져들면 깨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 허구성을 발견하게 된다.

김진명의 소설 「천년의 금서」(2009년 새움)을 집어들고 손을 놓지 못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에서 시작되는 소설은 어느덧 대한민국 국호인 한(韓)의 근원을 찾아가는 젊은 사학자 한은원에게 옮겨진다. 그리고 은원이 추적한 한(韓)의 근원에 빠져든다. 그리고 사실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고조선에 앞서 한(韓)이라는 우리민족의 뿌리 나라가 중국 동북부에 있었고, 그 한이 바다를 건너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삼한을 세웠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작가는 이 스토리의 근거로 천년의 금서인 왕부의 <잠부론> 지씨성편을 들었다. 은원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 당국을 피해 마침내 이 책을 찾아낸다. 그리고 국사학계 원로들을 모아놓고 대한민국의 근원을 설명하며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김진명은 이 소설을 출간한 후 여러 군데 강연회를 통해 마침내 삼한(三韓)의 의미를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설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인양 내세웠다.

 

하지만 김진명의 「천녀의 금서」는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낸다.

첫째 그는 고대에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삼한을 지나치게 왜소하게 바라보았다.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김진명은 소설 속 주인공 은원을 통해 이렇게 주장한다.

“한을 찾아 나선 저는 처음 고종 실록을 보았고 거기에서 삼한을 잇고자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쓴다는 기록을 보았지만 저의 성씨와 내 나라 국호에 대한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압록강까지 경계를 가진 조선이 신라 백제 가야 이전의 그 작은 나라를 잇고자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종이 을미사변, 아관파천을 거쳐 1897년 칭제건원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는데, 김진명은 압록강까지 경계를 가진 조선이 한반도 남쪽의 작은 나라를 잇고자 했을까 의문을 품었다.

김진명의 인식처럼 삼한은 조선에 비해 작은 나라다. 그렇지만 그 삼한에서 신라가 건국되고,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된다. 고려는 신라를 이었고, 조선은 고려를 이으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형성됐다. 현재 우리민족의 뿌리는 삼한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진명은 역사소설 「고구려」를 썼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 김진명은 만주대륙을 호령한 고구려를 위대한 나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에 앞서 대한제국 국호의 근원이 만주 대륙 또는 중국 북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국 서적인 <시경>과 <잠부론>에 나오는 구절 하나을 찾아 억지로 꿰어맞추는 오류를 범했다.

역사는 때로는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과장을 하면 무리가 발생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삼한(三韓)’, <삼국사기>에 흩어져 있는 ‘한(韓)’이라는 기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고종실록은 일제때인 1927~1935년 이왕직(李王職) 주관하에 간행되었지만, 거기서 나오는 대한제국 연원에 관한 기록이 왜곡되었다고 할 근거가 없다.

 

둘째 <시경> ‘한혁’ 편에 나오는 한(韓)이 우리민족이란 근거가 희박하다. 한자가 같다고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이씨와 중국 이씨가 같은 한자를 쓰지만 다른 뿌리인 것과 같다. 물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한(韓)나라와 시경의 한후가 다스리던 나라는 다르다.

김진명은 <시경>의 한후가 대한민국의 한과 동일하다는 입증하기 위해 <잠부론>을 들이밀었다. 잠부론에는 “시경속 한후는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는 나라의 임금이다”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김진명은 이 대목에서 견강부회하고 있다.

주나라는 희(姬)씨 왕조다. 각지의 봉국에 희씨성을 가진 사람들을 제후로 봉했다. 적어도 춘추전국의 반란이 일어날때까지는 그랬다.

한후도 주나라 왕족인 희씨에서 갈라진 성씨일 가능성이 크다. <시경>에 등장하는 한후는 주 선왕(宣王)에 의해 책봉되었다가 평왕(平王) 때에 진(晉)에 의해 멸망한다. 한후는 주의 희성(姬姓)과 같은 동성제후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주나라가 다른 성씨를 제후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없다. 잠부론을 쓴 왕부와 비슷한 시기의 후한 학자 정현(鄭玄)은 <시경>을 해설하면서 "한(韓)은 희성(姬性)의 국(國)이다. 그뒤에 진(晉)에 의해 멸망되었기 때문에, 대부(大夫) 한씨(韓氏)가 그것으로서 읍명(邑名)을 삼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후의 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하면서 지명에 남은 이름이 나중에 춘추전국 시대의 한(韓)나라로 되살아 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김진명이 깜짝 놀란 것처럼 소개하는 한후는 그 뒤에 등장하는 춘추전국 시대 나라인 한(韓)나라의 어원이 되는 것이다.

 

소설은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 처음 한(韓)의 서쪽에서도 한씨 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 후에는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는 잠부론의 구절을 소개한다. 이 대목이 김진명이 「천년의 금서」에서 주장하는 하이라이트다.

연나라는 베이징 근처에 있던 나라다. 만주에 가깝다. 이 한나라가 위만 조선에 망해 바다를 건너갔다는 게 잠부론의 주장이고, 김진명은 여기서 김명을 받았다.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패해 바다를 건너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기록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비롯해 기존 사서에도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잠부론>의 구절과 연결하면 <시경>의 한후가 베이징 근처에 나라를 통치했고, 그 후손이 바다를 건너 한반도 남쪽에 내려왔고, 대한제국은 그 한을 이어받았다는 게 김진명의 결론이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차이점이 드러난다.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는

“(조선)후(侯) 준(准)은 왕을 칭했는데, 연나라의 망인인 위만에게 공격당해 나라를 빼앗긴 바 되어, 그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한(韓) 땅에 살았으며, 한왕(韓王)을 자칭했다.” (侯准既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지> 글귀를 직역하면, 고조선 준왕이 이미 존재하는 삼한 땅에 도망와 그 곳의 지명을 성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삼한의 근원인 한(韓)이 한반도 남부에 이미 존재했는데, 준왕이 나중에 한씨로 성을 바꾼 것이다.

김진명은 왕부의 <잠부론>의 내용을 신봉하는 경향이 있는데, 역사적 사실들이 사서에 따라 달리 기술되는 경우는 흔하다. 역사서를 쓰는 사람들이 확보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부론>은 소설속 주인공 은원이 밝히듯 정식적인 역사서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서술은 다르다.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는 소설적 소설로는 가능한 일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할까 두렵다. KBS 역사드라마처럼…

 

 

소설의 흐름(요약)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고종이 1897년 칭제를 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데서 시작된다.

작가 김진명은 고종황제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한반도 남쪽의 작은 나라 ‘삼한’에서 나라 이름의 연원을 찾은데 의심을 품었다. 그는 한은원이라는 사학자를 통해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국호에 들어간 한의 뿌리를 찾아 나선다. 그 뿌리는 고조선에 앞서 존재한 한이라는 나라에서 찾았다.

소설속 주인공 한은원은 의문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조선은 과거의 조선, 즉 고조선을 잇겠다는 뜻이었다.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부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을 잇고자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지었을까?”

 

소설은 김미진이라는 한 여교수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미진은 자살의 동기가 없어 이를 이상하게 여긴 형사가 사건을 타살로 보고 수사를 시작한다.

형사는 여교수의 장례식에서 주인공 이정서를 만난다. 이정서는 사건을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다. 중국으로 건너간 정서는 이 사건이 여교수의 친구이며 자신의 친구였던 한은원이 남겨놓은 수수께끼를 찾아 나선다. 여교수가 살해당했다면 같이 연구를 했던 은원이도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서는 그녀의 뒤를 쫓는다.

간발의 차이로 계속 은원을 놓치던 와중에 삼대공정을 추진하는 중국 기관에 들어가게 된다. 중국 기관의 함정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은원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준다.

한국으로 돌아온 은원은 심의회를 열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의 유래를 밝혀 낸다.

 

소설은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학자인 펑타오의 취중발언에서 극적으로 전환된다.

 

펑타오는 거듭 술잔을 들이키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전 하, 상, 주 시대에는 동이가 한(韓)이에요. 그들이 세력을 한창 떨칠 때였지요. 지금의 한국인들은 고조선밖에 모르지만, 고조선 이전에 한이 있었어요.”

상상도 못할 역사가 대취한 펑타오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209쪽)

 

21장 ‘심의회’ 편은 이 소설의 결론이자, 김진명의 주장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돌아온 은원은 국사편찬위원회 심의회에 참석해 그동안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국사학계의 원로 교수들은 젊은 사학자 은원에 대해 적개심을 머금고 바라보았고, 은원은 그들에게 차근차근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설명한다. 은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시경(詩經)>입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시경>. 사서삼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고 공자가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던 바로 그 <시경>에 우리 조상의 나라가 한이라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은원은 준비한 <시경>을 펼쳐 보았다.

『한후(韓侯)는 맥족을 복속시키고 그 땅의 제후가 되었다.』

은원은 페이지를 넘기더니 다시 한줄의 문장을 읽었다.

『한후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 딸을 시켜 밤시중을 들게 하였다.』

 

“<시경>은 주나라 때부터 춘추 중기 사이의 일들을 기록한 겁니다. 한후가 나오는 이 한혁 편은 주나라 선왕대의 일을 쓴 거지요. 주나라 선왕은 기원전 827년부터 782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즉 한후는 이 시기에 주나라를 방문한 겁니다. 이성구 교수님의 말씀을 다르면 기원전 405년 이후의 인물이 기원전 800년 무럽의 과거로 돌아가 주나라 선왕을 난난 게 됩니다.”

 

“이 한후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춘추전국 시대의) 그 한나라 임금이 아닙니다. 그 한나라보다 최소한 400년에서 600년 전에 존재 중이던 나라의 임금입니다. 그리고 한후의 나라 한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중국의 모든 서적 중에는 우리의 고대국가 한이라는 단어가 꼭 세 군데에서 나옵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삼한, 또 하나는 바로 이 <시경> ‘한혁’ 편의 한후, 그리고 또 한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한후가 우리나라 사람인 것을 명백하게 증명합니다.”

“한을 언급하고 있는 또 한권의 책은 후한의 학자인 왕부가 쓴 <잠부론(潛夫論)>입니다.”

"왕부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 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씨의 근원을 파헤쳐 <씨성본결>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라졌습니다. 다만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그가 <잠부론> ‘씨성’ 편에서 한씨의 유래를 다지면서 바로 <시경>에 나왔던 한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원은 <잠부론 씨성편의 한 구절을 스크린에 비추었다.

『시경속 한후는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는 나라의 임금이다.』

 

“우리의 조상이 오성취루를 기록한 기원전 1733년보다 약 천년후인 기원전 827년에서 782년 사이에 한후는 주나라 선왕을 방문했고, 그로부터 천년후 왕부는 자신의 저서 <잠부론>에서 이렇게 썼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모든 역사책에서 찾을수 있는 한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기자조선이 어디를 말하는지는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기자가 동쪽으로 갔든 안갔든 그건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기자가 살던 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에 이미 동쪽에 중국과는 다른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기자동래선은 말해주는 겁니다.”

“조선이란 국명이 처음 등장하는 건 기원전 3세기 이후에 들어서서입니다. <상서>라든지 <삼국지 위지>라든지 <산해경>이라든지 하는 책에 처음 조선이 등장하는 거죠. 기자가 동쪽으로 갔다는 기록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한후는 이미 기원전 9세기 무렵의 기록에 나옵니다. 그러면 한과 조선중 어느게 먼저인지 자연히 알수 있을 겁니다.”

 

은원은 <잠부론> 씨성 편의 페이지를 넘겼다.

“한이라는 성씨의 유래이자 삼한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보세요.”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 처음 한(韓)의 서쪽에서도 한씨 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 후에는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이 대목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이것이 삼한의 유래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위만에게 망해 바다를 건너간 사람이 고조선의 준왕입니다. 한후의 후손이고 성이 한씨입니다. 그가 건넌 바다는 황해입니다. 고조선이 위만에게 망하자 그는 한반도 남부로 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국호를 썼습니다. 한후의 한이 한반도 남부에서 되살아난 겁니다.”

 

“우주 오랜 옛적부터 우리의 고대국가는 한이었지만 그후 어느 시점부터 조선이라 불린 겁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제가 가진 한이라는 성이 중국의 한나라에서 왔다는 얘기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글자인 대한민국의 한도 중국에서 와야 하는 건데 우리의 조상이 중국의 한나라를 따르자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을 찾아 나선 저는 처음 고종 실록을 보았고 거기에서 삼한을 잇고자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쓴다는 기록을 보았지만 저의 성씨와 내 나라 국호에 대한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압록강까지 경계를 가진 조선이 신라 백제 가야 이전의 그 작은 나라를 잇고자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서를 뒤져도 한의 유래를 찾을 수 없었지만 우리는 분명히 중국 춘추전국의 한과는 다르다는 신념이 제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성씨의 유래를 더듬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러다 만난 책이 왕부의 <잠부론>입니다. 그래서 한씨는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 훨씬 이전에 우리의 조상이 이룬 나라로부터 나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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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2018-07-08 13:32:03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것이 아닙니다.
발해가 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한 신라발해2국시대였죠
신라는 조선의 정신을 계씅하지 않았습니다.
고려는 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했습니다

2017-10-05 17:14:54
고려는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닌가요... 태조 왕건의 정책들만 봐도 신라를 배척하고 고구려를 이어 세운 국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kim 2017-05-14 15:57:43
기자님은 '이성구 교수님의 말씀을 다르면 기원전 405년 이후의 인물이 기원전 800년 무럽의 과거로 돌아가 주나라 선왕을 만난 게 됩니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것이 이때까지의 역사관의 오점을 찾아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