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착시…「반도체 공화국」 함정 빠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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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착시…「반도체 공화국」 함정 빠질수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04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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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단일품목의 착시현상…다른 분야 경쟁력도 필요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경제용어 사전을 뒤져보면 "단일 품목 수출에 의존해서 경제가 움직이는 나라"라고 되어 있다. 멕시코 남쪽의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가들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바나나를 따서 미국에 수출하고, 그 수익금으로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이들 국가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대표적인 나라로 엘살바도르, 그레나다, 니카라구아, 온두라스등이 꼽힌다.

미국은 바나나 공화국들의 이해관계에 깊숙하게 개입해 왔다. 이 지역에 반미정부가 들어서면 CIA가 개입해 정부를 전복하고, 마약소굴을 공격하는데 자금을 지원했다. 언젠가 유럽국가들이 과테말라, 온두라스등에서 생산되는 바나나의 수입을 금지하자, 미국이 나서서 통상 압력을 가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미국의 보호를 받는 나라들이다.

한국 경제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비유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자존심을 상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히 바나나 공화국과 다르다고 할수 없다.

 

▲ /그래픽=김송현 기자

 

4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날 코스피는 전거래일보다 21.57포인트(0.97%) 오른 2,241.24에 거래를 마감했다는데, 이는 이전 사상최고치인 2011년 5월 2일의 기록(2,228.96)를 12.28포인트 차이로 경신한 것이다.

미디어들은 ‘코스피가 새 역사를 갈아치웠다’느니, ‘박스피의 오명을 떨쳐버렸다’느니 자화자찬하고, 여의도 증권가의 분석가들은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증권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오르는 것은 경제 여건이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길 일이다. 지난해말 탄핵 정국 이후 오는 9일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미증유의 정치 상황이 전개되고, 새로운 정부에서 어떤 정책이 나올지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주식시장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증시 상승의 원동력을 들여다보면, 아찔하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종가기준)은 이날 기준으로 317조원이다. 코스피의 전 최고치를 기록한 2011년 5월 2일의 137조2천830억원에서 2.3배로 불어났다. 코스피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당시 10.98%에서 이날 19.05%로 두배 가까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3.0%나 급등했다.

또다른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는 2011년에 시총이 20조원으로 코스피 전체에서 12위, 비중은 1.63%에 머물렀다. 이 회사 주가는 현재 시총 규모가 40조원으로 불어나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자리로 뛰어올랐다. 시총 비중은 2.43%로 높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전기전자 업종이 코스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수 상승이 이들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주가 사상치 경신은 반도체라는 단일주에 의한 착시 효과라는 점을 간과할수 없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이날까지 코스피는 13.2% 상승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코스피 상승은 0.3%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2010년 1월 4일 코스피 종가를 100으로 했을 때 코스피는 132.13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110.85에 불과하다고 대신증권은 추산했다. 따라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두 반도체 회사의 주가 상승을 빼면 코스피 지수는 1,880.28밖에 되지 않는다 것이다. 이날 현재의 주가와 비교하면 무려 360.96포인트나 차이난다.

 

한국경제, 특히나 한국 증시는 반도체라는 단일 제품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공화국'과 다를게 무엇인가. 세계 1,2위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해 올들어 수출이 크게 회복하고,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메모리분야 반도체 생산량이 세계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회복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착시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경기와 흐름을 같이 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4~95년 반도체 값이 금값이었을 때 한국 경제는 초유의 호황을 누렸다. 반도체가 달러를 벌어들였기 때문에 원화는 달러당 700원대의 강세를 보였고, 기업들은 은행 빚을 얻어 흥청망청 써댔다. 그러나 1996년부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는 꺾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IMF 위기를 맞게 됐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후 1998~99년 세계 반도체 경기가 또다시 살아나자 한국 경제는 급속히 회복됐고, IMF 위기 때의 위기 의식을 금새 잊어버렸다. 그러던 반도체 가격이 2000년대초 하락하고 D램 가격이 1달러 대로 떨어지자, 한국 경제가 제2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증시 활황이 불러온 또다른 착각은 외국인에 의한 증시 지배라는 점이다.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장주의 3분의1이 되는데, 대기업의 경영권 유지지분, 공기업 지분등을 거래되지 않는 지분(untradable stock)을 제외하고는 거래 주식의 3분의 2을 차지한다. 사실상 우리증시는 외국인들의 놀이터다. 외국인들이 우리증시에 들락날락하면서 만들어 놓은 현상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미국의 금리인상이 더딜 것이라는 분석 등등이 한국 증시를 밀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한국 증시가 자동인출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그들은 한국 증시가 오를만큼 올랐으니, 이젠 숏세일(short sale)을 해서 이익을 챙겨야 할 때를 판단할 것이고,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한국에서 돈을 빼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터지는 것은 개미군단이라고 하는 국내 소액투자자들이다. 결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투자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셈이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 우대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데, 정확치 않다. 작금의 미국 경기 호황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때 만들어놓은 제조업 중시 정책의 결과물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의 보호무역 정책이 세계 경제를 둔화시킬 것이며, 감세정책이 재정적자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

 

주식시장이 오를때는 모든 게 좋게 보인다. 그러다가 내려갈때는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된다.

올들어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좋고 거시 지표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외생변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났다거나, 정부의 거시정책 컨트롤이 유효했기 때문은 아니다.

현재 증시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고치를 더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증시가 오를수록 착각이 심해질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 5~7년은 더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 우리 경제와 증시를 버틸수 있을까. 3~4년전 조선산업이 활황을 보일 때 우리는 세계 1위의 우리 조선업이 영원히 갈줄 착각했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은 “GE가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산업의 기복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도체 한 종목에 의한 주가 상승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산업구조가 반도체 중심으로 짜여진 것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반도체의 경쟁력은 키워 나가되,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너무나 상식적인 명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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