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고 깊은 맛으로 부탁해요
상태바
담백하고 깊은 맛으로 부탁해요
  • 김이나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10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의 맛…이해, 신뢰, 소통, 교류 등 차분한 과정 거쳐야

[김이나 칼럼니스트] 요즘 TV를 켜면 쿡방 아니면 먹방, 둘 다 아니면 아기들 세상이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예능국 더 나아가 방송사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도 전해지니 말그대로 효자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정글에 가서도 먹고, 남의 집에 가서도 먹고, 해외에 가서도 먹고. 먹는 사는 게 사실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것이니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는 정말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물론 먹방, 쿡방이 최근 생겨난 장르는 아니다.

먹방은 오래전부터 맛집 탐방의 포맷으로, 쿡방은 독립된 요리 프로그램 혹은 평일 오전 주부들 대상 프로그램에 한 코너로 이어져 왔다.

맛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소문이나 명성에 많이 경도되는 까닭에, TV에 등장하는, 아니 더 나아가 간혹 최고라 검증된 맛집에 열광하게 되었고 또한 지금처럼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주변 맛집을 검색할 수있는 모바일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 맛집 탐방 프로그램은 시청률도 높았고 신뢰도도 높았다. 시청자들은 주말의 교통 정체를 무릅쓰고라도 이번 주말에는 꼭 가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 unsplash

 

그러나 이런 먹방 프로그램의 역기능이 점차 대두되면서 즉, 실컷 찾아간 맛집이 알고보니 방송사에 일정 광고비 혹은 제작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전파를 산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서, 그리고 또 하나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등장한 블로거들이 일정 비용을 받고 맛집을 홍보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그러한 정보를 의심하게 되었다.

먹방이 점차 “볼 거리”로 입지가 좁아지는 반면 최근 등장한 쿡방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문 셰프들이 직접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으로 한식 위주이던 예전과 달리 다양한 쟝르의 레시피로 시청자를 끌고 있다. 또한 한식조차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좀 더 단순화된 레시피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남녀 불문하고 나를 위한 한 끼 좀 더 선심을 쓴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같은 레시피라도 취향에 따라 재료나 소스를 조금씩 가감할 수도 있는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알려주기도 한다. 미각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된장찌개 하나만 하더라도 수십 수백 가지의 레시피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MBC 홈페이지

 

모두의 혀를 만족시키는 음식이 과연 있을까.

민족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경험도 다르니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본다 하더라도 그 품평은 백인백색일 것이다. 맛은 주관적이고 서술적이지만 지속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최근엔 미식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방송은 먹방도 쿡방도 아니다. 미방(味放) 이라고 해야할까. 말하자면 맛에 대한 로포르타주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평가가 이어진다. 단순히 “맛있다”를 떠나서 형용사, 부사가 따라 온다.

어느 고추장 광고 카피(“맛있게 맵다”)처럼 시원하게 매운 맛, 담백한 끝맛, 자극적인 첫맛 등등. (사실 맛에는 단 맛. 신 맛, 쓴 맛, 짠 맛, 감칠 맛이 있다. 매운 맛과 떫은 맛은 혀와 입의 내부에서 느끼는 피부감각.)

이러한 맛에 대한 코멘트를 넘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뜻을 짐작하기 쉬운 맛이 또 있다. 담백한 맛과 깊은 맛이다. 아마도 인공 감미료를 쓰지 않고도 감칠 맛이 느껴지는, 기름 지지 않고 간이 적당한 음식을 맛 볼 때 느끼는 맛은 담백한 맛, 오랜 기간 숙성된 혹은 오랜 시간 우려낸 음식을 맛 볼 때 느끼는 맛은 깊은 맛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의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가 담백하고 깊은 맛이라 정의하는 그 맛을 외국인들은 과연 어떻게 느낄 지 모르겠다.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그 맛에 대한 정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 음식 (이른 바 K-food) 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사실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이미 한류 문화에 선호도가 높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형용하는 담백하고 깊은 맛을 이해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란하고 급조된 정책들로 한류 문화를 알리는 것은 따라서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해, 신뢰, 소통, 교류 등 일련의 차분한 과정들을 거쳐야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이 가능할 것이다. 드라마 간접광고로 손쉽게 상품을 팔아보겠다는 조급한 생각들이 결국 정치와 주변 정세에 따라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담백하고 깊은 맛, 오래 걸리지만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맛. 그런 상호 신뢰 관계.

앞으로 세계 시민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이나씨 ▲몽고식품 마케팅 총괄 고문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Tag
#N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