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사건③…박 시장의 惡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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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사건③…박 시장의 惡手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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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화국 비화> “조합에 택지 특별분양” 전격 결재

“도시계획국장.”

“예.”

“담당 국장으로 마지막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시장님 뜻에 따르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일(수서지구 택지특별 분양건)은 시장님 개인의 신상 뿐 아니라 대통령에게까지 누를 끼칠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데 대해 주무국장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91년 1월 19일 하오 늦은 시각, 박세직 서울시장은 김학재 도시계획국장을 시장실로 불렀다. 박시장이 단독결심으로 주택조합에 수서 지구 조합주택용 택지를 특별분양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결재를 한 직후였다. 주무국장인 김 국장과 담당과장인 강창구 도시개발과장이 결재서류에 사인하기를 완강히 거부했고, 박 시장과 윤백영 부시장만이 사인했다.

이날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대부분의 시청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텅빈 시장실에서 박 시장은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은 김 국장을 불러 원망조의 질문을 한 것이다. 시장으로선 청와대 뜻으로 알고 정치적으로 판단했고, 도시계획국장으로선 직업 공무원의 소신으로 법률과 규정에 의해 결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결재란에 최고결재권자들만 결재하고 실무자의 사인이 없는 수서택지 특별분양건. 이 비밀은 끝내 지켜줄수 없었고, 수서사건은 마침내 언론보도를 통해 터지게 된다.

수서 택지 특별분양이 결정되던 날은 당사자들에겐 지루한 하루였다.

이날 서울시청에서는 상오 9시부터 수서 문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국회 건설위원회의 청원심사 결과를 통보받고 이를 처리키 위해 열린 회의는 점심시간을 넘겨 하오 3시까지 계속된 마라톤 회의였다.

만자당의 이태섭 의원은 수서택지 특별분양 청원을 소개한 지역구 의원으로서, 건설부의 이동성 주택국장은 상급부처 실무국장으로 각각 참석했지만, 장병조 대통령 문화체육담당 비서관의 참석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회의는 4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국회 청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택조합이 요구한 땅을 모두 분양하는 방안 ▲청원심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안 ▲택지지구 지정 이전에 땅을 매입한 주택조합원 650명에 대해서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 ▲주택조합원 자격을 엄밀히 심사, 일부에게만 도시개발공사의 신축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 등이었다.

김학재 도시계획국장과 강창구 도시개발국장등 서울시 실무자들은 “청원심사 결과를 100%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버텼으나, 분위기는 해주는 쪽으로 돌아갔다. 장 비서관과 건설부의 이 국장이 특별분양을 고집하고 나섰다.

“수서 민원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습니다. 3,300여 가구의 집단민원이나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장 비서관)

“현행법 아래서는 ‘제소전 화해’와 같은 방법으로 토지를 취득할수 없지만 이번 경우처럼 국회 청원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을 쓰면 됩니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택지 공급 사례는 앞으로 극히 드믈 것이므로 괜챦을 겁니다.” (이 국장)

이날 회의는 특별공급 쪽으로 최종결론이 났고, 남은 것은 시장의 결심여햐였다. 박 시장은 다수인의 집단민원이고 국회의 청원의결이 있는 사안인만큼 특별공급을 결심하게 된다.

회의가 끝나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박 시장이 버럭 화를 내며 도시계획국장을 불렀다.

“왜 빨리 결재서류를 가져오지 않는 거요. 내가 사인할 테니 빨리 가져오시오.”

김 국장이 서류를 들고 황급히 시장실로 들어섰다. 담당 과장, 국장의 사인란이 공백인 서류에 박 시장이 즉석에서 사인을 했다. 그 자체로 효력이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윤백영 부시장이 “어찌 시장만 사인을 할수 있느냐”라며 부서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윤 부시장은 후에 “어느 시장이라도 그런 상황에서 특별공급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1991년 수서 비리사건이 터지자 경제저의실천연합등 시민단체 주도의 시위가 확산됐다. /'재벌때문에 나라 망하겠소' 책자 내 자료사진

 

“청와대 비리” 언론, 야당 일제 공세

5명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9명의 정치인과 관리, 한보그룹 임직원들이 대거 구속됐고, 경제기획원·건설부장관과 서울시장이 결질되었으며, 당정개편으로까지 몰고 간 수서 사건의 파장을 박 시장은 예측치 못한 것이다. 시장 결재가 나고 서일시의 김 국장과 건설부의 이 국장이 발표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서울시는 법률적으로 자신이 없습니다. 이 국장이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기자실에 같이 갑시다.”

“장관님(이상희 장관)이 동의만 한다면 같이 가겠습니다.”

발표일은 이틀 뒤인 1월 21일(월요일)롤 잡았다. 서울시의 발표에 이례적으로 건설부 국장이 장관의 허락을 받고 참석했다. 결재에 참여한 윤 부시장이 발표 내용을 읽어 나갔다.

“공영개발한 택지를 특정 주택조합에 공급함으로써 무주택 서민용 아파트 공급에 차질은 예상되지만, 국회 건설위원회가 주택조합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특별 공급해주도록 권유,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실무적으로 고충이 많았던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이번 결정이 법에 위반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서울시청 출입기자들의 타깃은 건설부의 이 국정이었다. 법적 타당성 여부, 특혜설 여부가 거론되면서 이 국장은 쩔쩔 맸고, 이내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러면 부임한지 24일만에, 그것도 민감한 사안을 단독 결심으로 처리한 박 시장은 부임 당시 수서 문제를 몰랐던 것일까. 서울시장의 민원처리가 청와대 문화체육담당 비서관의 협조요청으로 간단히 이뤄질 일인가. 수서문제를 접근할 때 생겨나는 의문들이다.

부임 이틀후인 1990년 12월 29일 박 시장은 시청뒤 ‘향진’이라는 일식집에서 출입기자들과 망년회를 겸해 첫 대면의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수서 문제의 신중한 처리가 거론됐다.

“시장님, 수서 택지 특별 분양에 관한 건을 아십니까. 수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수서 문제는 뜨거운 감자 격입니다. 수서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박 시장은 외모에서 풍기는 풍채처럼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 식시 시간 한시간을 군복무 시절의 무용담으로 일관하며 좌중을 이끌어갔다. 박 시장은 수서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해를 넘겨 91년 1월 4일 청와대의 장 비서관은 김핵재 도시계획국장을 사무실로 불렀다.

“국회가 청원을 의결해 서울시에 통보까지 했으니, 박 시장에게 최우선적으롷 수서 민원 건을 보고해 처리하십시오.”

장 비서관의 말은 지시조였고, 최후통첩에 가까웠다. 그는 이어 신임 인사차 청와대를 방문한 박 시장에게 수서건을 다시 한번 주지시켰다.

“다수의 집단민원인만큼 수서 택지 특별공급 요청 민원을 조속한 시일 내에 긍정적으로 처리해 주십시오.”

1월 18일 건설부는 택지공급 승인권한을 건설부 장관에서 서울시장과 직할시장 및 도지사에게 위임했고, 다음날인 19이;ㄹ 서울시에서 관계기관회의가 열리고, 박 시장은 특별공급을 결심, 마침낸 결재서류에 사인을 했다.

당시 박 시장의 심경변화와 결재과정을 수서특별공급 문제를 직접 취급했던 실무자들의 얘기를 통해 짚어보자. K씨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비서관 수준에서 협조요청한다 해서 서울시장이 결심할 정도의 조그마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박 시장이 그런 결심을 하려면 적어도 통치권자와의 교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박 시장은 군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심증을 잘 읽었을 것입니다.”

수서 택지공급 민원건은 당시 권력실세롤 꼽히던 박 시장의 전격 처리로 일단락되지는 않았다. 이른바 ‘공안정국’에서 반격을 꾀하던 정치권 일각에서 수서 민원의 반칙처리에 관한 정보와 상세한 자료가 흘러들어갔다. 여의도 국회의원 사무실 근처에는 의원 비서관들 사이에 수서 문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됐다.

“청와대를 공격할수 있는 자료를 입수했다 하던데, 이번 국회에서 거론될지 모르겠어.”

“무슨 자료인데.”

“청와대가 직접 관련된 비리가 있다는 것 같아. 물증도 있다는 거야.”

“그게 뭐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수서택지 특별분양건은 청와대가 직접 개입했다는 거야. 이를 입증하는 문건도 봤어. 서울시 공무원들의 불만도 대단하다던데….”

국회 주변에서 이런 얘기가 오갈 무렵, 1월 31일 서울시는 수서지구 고도제한을 해제, 5층밖에 짓지 못하던 건축물 높이를 15층까지 허용해 특혜의혹을 또 한번 일으켰다. 국회 주변에서 오가는 소문을 추격하던 한 조간신문은 91년 2월 3일자 1면 톱기사로 ‘수서택지분양 특혜 의혹’ 기사를 보도, 수서사건이 마침내 불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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