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언」…드라큘라와 역사가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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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언」…드라큘라와 역사가의 대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20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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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작가 코스토바의 10년에 걸친 드라큘라 추적기

2008년 읽은 책이 미국 여성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Elizabeth Kostova)가 쓴 장편소설 「히스토리언」(Historian)이었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지 3년만이다.

참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동유럽의 역사와 드라큘라,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역사학자의 이야기를 소설화했다. 언제라도 드라큘라가 옆에서 나올듯한 흥미진진함도 곁들였다.

작가 코스토바는 예일대를 나온 뒤 잡지 편집자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소설 습작을 해왔다. 그녀의 성인 코스토바는 불가리아인 남편 기오르기 코스토브의 성을 여성화한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어온 드라큘라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하고, 취재하기 위해 동유럽을 돌아다니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격려를 받아가며 그녀가 10년간 쓴 작품이 ‘히스토리언’이다. 그녀는 뒤늦게 미시간대 창작과정에 들어갔는데 졸업 작품으로 보통 단편을 써 내는 관행과는 달리 장편 ‘히스토리언’을 제출했다. ‘히스토리언’은 출간되지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드라큘라를 쫓아다니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 /책 표지

 

소설에서 ‘나’로 나오는 열여섯 살 소녀는 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다가 낡은 책과 편지 뭉치를 찾아내는데 거기에는 드라큘라를 찾아 나선 역사가들의 투쟁기가 기록돼 있다. 흥미를 느낀 소녀에게 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로시가 드라큘라를 앞서 찾아 나선 내력에 대해 들려준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책은 드라큘라를 찾아 나선 사람들에게 한 권씩 전달된 책인데 발신자가 분명치 않다.

 

나는 책을 꺼내 별생각 없이 훑어보았다. 표지는 낡고 부드러운 가죽이며 내지들도 아주 오래되어 보였다. 책은 거의 저절로 중간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리고 두 페이지 가득, 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고 날개를 활짝 펼친 용이 그려져 있었다. 목판화였다.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낸 야수의 발톱에 작은 깃발이 걸려 있고 그곳에 고딕체로 딱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드라쿨리아(Drakulya).’

그 단어를 보고,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브램 스토커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극장에서 신인 여배우의 목에 이빨을 들이대던 벨라 루고시(1931년 작 「드라큘라」의 주인공)도 떠오르기는 했다. 그런데 단어의 철자도 이상하고 책도 분명 아주 오래된 종류였다. 더군다나 학자 신분으로 유럽사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아니던가. 나는 책을 잠깐 훑어본 후, 전에 읽은 글을 떠올렸다. 드라쿨리아는 실제로 ‘용’ 또는 ‘악마’를 뜻하는 라틴어이며, 또한 왈라키아의 폭군이자 카르파티아 산맥의 영주 ‘말뚝왕’ 블라드 체페슈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전쟁 포로는 물론 가신들까지 너무나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한 자다. (본문 중에서)

 

책에는 날개를 활짝 편 드래건이 그려져 있는데 그 발톱에는 고딕체로 ‘드라쿨리아’라고 쓴 깃발이 꽂혀 있다. 소녀는 드래건이 역사상 밝혀지지 않은 드라큘라가 묻힌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 드라큘라는 현재 루마니아의 북쪽 지역인 왈라키아의 15세기 폭군인 블라드 체페슈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소녀의 아버지 폴은 드라큘라가 수세기에 걸쳐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역사를 조작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큘라는 그들 바로 곁에 와 있는 것이다.

드라큘라는 오스만투르크의 침입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민족 영웅이었지만, 잔인한 고문과 살인을 자행한 공포의 폭군으로 변했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왈라키아를 지나는 독일 상인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요구해 악명이 더 높아졌으며 그가 숨진 뒷날 그의 무덤을 파 보니 텅 비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드라큘라는 고서를 수집하고 탐독하는 학자적 면모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큘라는 곧잘 잔혹한 흡혈귀로 묘사돼 왔지만 코스토바는 이런 시각 대신 잔인하면서도 지성적인 인물로 그를 되살렸다.

 

“로시 교수는 저희에게 특별한 분입니다. 지도교수이시기도 하지만, 우리… 저에게 특별한 정보를 남기기도 하셨죠. 그리고 지금은 실종되셨습니다.”

투르굿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실종?”

“예.” 나는 머뭇머뭇 로시와의 관계, 논문 지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발견한 이상한 책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책에 대해 설명할 때 투르굿이 벌떡 일어나며 손뼉을 쳤으나, 그래도 말은 하지 않고 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해서 로시에게 책을 가져간 이야기, 로시 교수님이 자신의 책과 만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세 권의 책.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이제 세 권, 마법의 숫자다. 대체 그 책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아니 관계가 있기는 한 걸까? 이스탄불에서 로시가 행한 조사는 물론 ?투르굿은 그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옛 지도들의 윤곽이 용의 이미지와 흡사하다는 그의 견해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로시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설명했다. 그날 저녁 연구실 창문을 넘어간 기이한 그림자, 그 이후 내가 반신반의 상태에서 그를 찾기 시작한 경위까지 모두. (본문 중에서)

 

편지를 읽은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드라큘라의 실제를 추적하러 나선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과거와 드라큘리 후손인 어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접하게 된다.

소녀는 드라큘라의 실체를 밝혀내려는 역사가의 사명 의식도 알게 된다. 그녀는 영원히 죽지않는 존재, 드랴큘라의 진실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자신이 드라큘라와 맞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한 시간쯤? 그때 그녀가 갑자기 신음을 흘리며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왜 그래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헬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상처요. 다 낫긴 했는데 이렇게 가끔 쑤셔요…. 내가 폴과 가까이 해도 괜찮은 거겠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디, 헬렌, 내가 좀 볼게요.”

헬렌은 아무 말 없이 스카프를 벗고 가로등 불빛을 향해 턱을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목에 보라색 상처 두 개가 보였다. 다소 안심은 되었다. 다시 공격당한 흔적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상처에 입술을 갖다 댔다.

“오, 폴, 안돼요!”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그녀는 방어하듯 손으로 상처를 덮고 잠시 후 다시 스카프를 맸다. 감염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전보다 더 조심해 그녀를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오래전에 했어야 했는데…. 이걸 목에 걸어요.” 미국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구입한 작은 십자가였다. 목에 걸자 목걸이는 스카프 아래로 조심스럽게 늘어졌다. 그녀가 십자가를 어루만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본문 중에서)

 

작가 코스토바는 10년에 걸친 집필 기간을 통하여 드라큘라라는 소재를 조사해왔다. 그 시작은 동유럽에 여행을 갔던 어린 시절 드라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느 날 떠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그녀는 드라큘라 이야기의 시작이 된 왈라키아 군주 블라드 3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녀는 완전한 픽션도 완전한 고증도 아닌 역사가 전설로 자리잡아가기까지의 드라큘라를 살리기 위하여 노력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 고증을 위해 동유럽 역사를 공부하고 인터뷰, 강의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았다.

그녀의 소설은 단선적인 이야기 구도가 아닌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플롯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주인공, 주인공의 아버지, 그 스승으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시간대의 3명의 역사가가 얽히고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했고 바로 그런 구성이 실타래처럼 풀리는 재미를 더했다.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통하여 드라큘라는 그동안의 단편적이었던 흡혈귀라는 설정을 뛰어넘은 지성적인 영주로서의 인물로 되살아났다. <히스토리언>은 본격 문학이라기보다는 팩션으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모험서다.

▲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출판사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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