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엑세쿠탄스」 되읽기… 인간의 처형 본능 살아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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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엑세쿠탄스」 되읽기… 인간의 처형 본능 살아 나나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7.03.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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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탄핵기각 직후 이문열작…"인간은 신과 다른 무리를 처형한다"

이문열의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는 ‘처형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넨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種)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을 정했다. 그는 인간에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학명을 붙였다.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린네 이후 학자들은 학문적 견해에 따라 인간을 여러 가지로 분류했다. 경제학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economicus: 경제적 인간), 언어학자는 호모 로켄스(Loquens: 언어적 인간), 생물학자는 호모 에렉투스(erectus: 직립인간), 사회학자는 호모 루덴스(ludens: 유희적 인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정치학자는 호모 폴리티쿠스(politicus: 정치적 인간)라고 명명했다.

소설가 이문열이 규정한 호모 엑세쿠탄스(Homo Executans)는 그가 만든 학명이다. 엑세쿠탄스는 영어인 ‘사형을 집행하다’(execute)에서 나온 합성어이다.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 의해서 적이 된 상대를, 그들을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문열은 2006년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출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를 받았다가 기각된 이후 이른바 ‘386세대’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던 시절이다.

이문열은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처형하는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속성을 부여했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정치하게 어우러지며, 해방과 구원의 문제를 밀도 있게 성찰했다.

그는 지난 3월 4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실이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이 ‘부역자’로 낙인찍히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이 보수정권의 정책을 뒤엎으려는 ‘적폐청산’의 기치를 높이 올리는 시기에 11년전에 나온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는 나름 의미있는 소설이라 하겠다.

소설의 주인공 신성민은 소위 386세대로 대학 시절 한때 운동권이었던 그는 서울의 한 증권회사 과장이다. 2003년 대통령 선거 바로 전 막달라 마리아의 현신이라 볼 수 있는 ‘마리’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고 이후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보일러공과 적(敵)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시민단체 ‘새여모’의 무리들이 그의 주변에 출몰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 <세계의 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 책 표지

 

2003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얼마 전의 서울.

85학번인 주인공 '신성민'은 386세대 운동권의 평균치쯤 되는 이력을 쌓은 사람이다. 졸업 후 증권사에 들어가 운동권 후배 '안정화'와 함께 살지만 그녀는 "이대로 살 수 없다"며 떠난다. 혼자 지내던 그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2003년 어느날, 직원들과 나이트클럽 '샹그리라'에서 '마리'와 하룻밤을 보낸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교회, 성경 등과 관련된 이해 못할 내용의 이메일이 발송된다. 자신은 한 적이 없는 주식 매수, 매도 주문이 그의 단말기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와 회사도 그만둔다.

이후 서초구 비닐하우스촌 '하꼬방'에서 살면서 젊은 보일러 수리공을 만난다. 수리공은 실수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망치로 내리치고 쇠톱에 손을 다친다. 하지만 "일을 끝낸 뒤 손을 씻는 걸 보니 두 손 모두가 말짱했다."

이상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 만난 마리는 자신이 막달라 마리아이며, 신성민은 "그 분(보일러 수리공)을 지켜드리러 온 수호천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안정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그는 하꼬방을 나와 그녀와 살기 시작한다. 친여 시민단체 '새여모'(새 세상을 여는 모임) 간부인 그녀의 소개로 새여모를 지주회사 격으로 둔 '새누리 투자기획'에서 일하게 된다. 재개발지역 철거 소식을 전하던 TV에서 우연히 마리의 모습을 본 신성민은 그곳으로 가 마리와 보일러 수리공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수리공이 병색이 짙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기괴한 재현극"을 목격한다.

수리공은 철거용역업체의 스파이로 몰려 새여모 조직에 의해 숨지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수리공의 부활을 믿는 마리 일행은 새여모의 대표를 처단한다.

보일러 수리공(예수 그리스도)을 지지하는 마리 일행, "민족 민중 민주의 기치를 지닌 지하단체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합법적 시민단체로 거듭난" 새여모 조직(敵 그리스도)이 모두 사라진뒤 신성민은 증권사에 복직된다.

그러나 그는 호모 엑세쿠탄스를 찾아 이라크와 르완다 등 세상을 헤맨다. "어두운 신성(神性), 사악한 초월을 제거해야 할 그들이 너무 빨리 우리 땅에서 철수해 버려 적그리스도의 권능이 작동하고 있다"며 호모 엑세쿠탄스를 불러 못다 한 임무를 이행하게 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신성민이 알고 지내던 '재혁'의 입을 통해 '호모 엑세쿠탄스'를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들의 대지로 뛰어든 신성 또는 초월적 힘을 그냥 되돌려 보낸 적이 없어. 악마의 화신인 용과 사악한 요정을 물리친 영웅들. 마귀와 맞서 그들을 쫓아낸 신앙의 투사들과 마녀들을 알아보고 불태운 눈 밝고 과감한 판관들. (중략) 밝고 거룩한 신성, 선을 향한 초월적 의지들도 이 땅에 와서는 인간의 처형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어.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이 가장 대표적이고….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에게 모두 신성과 초월적 능력을 부여한다면, 이쪽저쪽 모두 처형을 주장하는 그들이야말로 호모 엑세쿠탄스가 아니겠어?"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빤히 바라보면서 때맞춰 보내는 것 같은" 정체모를 이메일이 또다른 한축을 이룬다. 이메일은 사건 전개에 따라 해방신학, 종말론, 유대 전쟁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보일러공으로 현현된 신성도, ‘새여모’ 대표로 현현된 악성도 처형되고 (먼저 ‘새여모’ 쪽이 보일러공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이후 보일러공을 따르던 무리들이 ‘새여모’ 대표를 처단한다.), 마리도, 재혁도, 성민도…… 그들 모두는 호모 엑세쿠탄스의 역할을 마치고 이 땅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신들은 고통과 번민의 땅에 태어나고, 그런 점에서 이 땅은 신들이 태어나기 좋은 곳이다. 또한 그 신들을 처형하기 위해 호모 엑세쿠탄스들이 집중적으로 파견돼야 할 곳이며, 처형의 에너지가 가장 격렬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해방과 구원, 그리고 당대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요, 창조 혹은 복원으로 새롭게 열릴 우리 시대에 대한 진정한 묵시록이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정치하게 어우러지며, 해방과 구원의 문제를 밀도 있게 성찰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초월적인 존재들을 처형해 왔다. 한편으로는 용과 마녀, 악마 등 악신(惡神) 퇴치의 신화,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신성(神性)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존재들―오르마즈드(아후라마즈다)의 예언자로 만족했던 조로아스터로부터 아프리카 오지 원주민의 목각으로 남은 이름 모를 부족신(部族神)까지―에 대한 수난과 박해의 역사가 그것을 방증한다.

 

작가 이문열은 책 출간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대로는 세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소설의 일부 대목이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는 논란에 대해 “그 부분은 전체 원고지 2800장 중 200장이 채 안 되는 분량으로 삽화나 배경 수준”이라며 “예상은 했으나 작품의 중요한 한 틀이어서 빼 버릴 수 없었다. 다른 중요한 부분은 버려두고 그 부분에 대해서만 공방을 벌이니 불만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책의 서문을 직접 읽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용서 못할 반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욕부터 하고 덤비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봐도 문학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못한 비방이요, 염치없고 상식도 갖추지 못한 정치적 시비로만 들린다.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다.”

소설에서 우파가 세상을 개탄한 이야기는 많지만 좌파가 한탄한 부분은 거의 없는 대목에 대해서도 이 씨는 “그런 부분은 지금까지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자신이 보수 우파로 불리는 데 대해 “남들이 그렇게 주장하기도 했고 나도 감수하기도 했다”며 “1980년대에는 그렇게 불리는 데 반발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 진보 좌파만 하겠다고 하면 골치 아프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홍보수석을 한 이동관씨는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에 2006년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출간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동앙닷컴 2006년 12월 06일)

 

“서기 67년부터 7년간 유대인들이 로마를 상대로 벌인 ‘유대전쟁’은 편협한 민족주의에 매몰된 유대 지도자들의 선동 때문에 일어났다. 5개월간의 예루살렘 공방에서만 110만 명이 죽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유대인들은 2000년간 나라를 잃고 세계를 떠돌았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최근 “유대인을 로마 압제에서 해방시키겠다며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유대 지도자들의 처세가 오늘 한국 상황과 흡사하다”고 개탄했다.

(중략)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예루살렘 공방 당시 유대의 두 세력 지도자였던 요한과 시몬처럼 ‘대담하게 상왕(上王) 티를 내며 일마다 나서 길길이 뛴다’(DJ) ‘로마군의 병기 몇 개를 훔친 뒤 거들먹거리며 로마를 약올리고 있다’(김 위원장)고 이 씨는 꼬집었다. DJ는 ‘민족끼리’의 공허한 구호로 남쪽 국민을 오도(誤導)하고 김 위원장은 ‘핵 불장난’으로 민족을 절멸(絶滅) 위기로 몰고 간다는 지적이다.

▷유대사가(史家)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유대전쟁 때 유대인의 참혹한 피해는 로마군이 저지른 학살보다 주전파(主戰派)와 화해파의 대립, 그리고 주전파 내부의 주도권 다툼에 따른 인민재판식 처형과 약탈에 주로 기인했다.’ 햇볕정책이 낳은 ‘남남 갈등’도 ‘외세보다 무서운 내분’으로 역사에 남을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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