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주목해야 할 중국의 '공동부유론'
상태바
 [최석원 칼럼] 주목해야 할 중국의 '공동부유론'
  •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 부문장
  • 승인 2021.09.3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 부문장] 지금으로부터 30년 정도 전인 1993년에 개봉한 영화 ‘데몰리션맨’은 기본적으로 오락 SF 영화지만, 미래에 대한 흥미 있는 설정이 들어 있다.

특히 자율주행 시스템과 사고가 나면 부드러운 거품이 순식간에 굳어 탑승자를 보호하는 자동차, 두뇌를 직접 연결해 서로의 자극을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 등 근사한 미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도 그렇지만, 미래 기술을 다룬 영화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일부 선각자(엘리트)와 그 주변인들이 만든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온 사방이 통제 하에 있는 사회와, 그에 반대해 지하 세계에 숨어 살며 자유를 주장하고 때로는 소소한 테러로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를 혼란시키는 집단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윗 사회에서는 과거에 범죄 혐의로 동결됐다가 풀려난 주인공 형사가 욕을 할 때마다 이를 지적하는 기계가 경고장을 날리는 장면이, 아래 사회에서는 주인공이 햄버거 재료가 쥐고기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어찌 보면 조지 오웰의 고민이 담긴 세상인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영화가 심심치 않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영화의 결론은 비슷하다. 영웅이 나타나 자유를 주장하는 집단과 함께 사회를 통제해 온 엘리트를 무찌른다.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주인공이 아래 세상의 리더에게 이런 취지의 얘기를 한다. 양 쪽의 균형을 맞추는 세계를 만들라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적 생각이며, 미국식 자유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결론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고민이 다시 시작된다. 어떤 게 더 좋은 세상인가. 영화 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양 쪽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과연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엘리트가 정하는 시스템이나 도덕률 내에 편입되어 사는 게 좋은가, 아니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게 좋은가?

나아가 혹시 이문열의 소설 ‘칼레파 타칼라’에서처럼 균형을 잡겠다고 나서는 새로운 엘리트가 이전 권력자의 여자를 안고 장막 안으로 숨는 것은 아닐까? 더 중요하게는 경제적으로 국민의 삶이나 기업 활동, 전체적인 성장과 분배에 어떤 세계가 더 나을까?

중국 정부의 뚜렷한 정책 변화

최근 중국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을 보면 영화 데몰리션맨이 떠오른다. 그러한 세상으로 가려는 첫 걸음으로 생각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 소수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부를 공유하자는 이론)'이 공식으로 전면에 등장한 이후 이러한 변화의 신호는 뚜렷하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올해 국정 키워드를 ‘공동부유’로 정하고 얼마 전 공식 석상에서도 공동부유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시진핑 공산당 주석이 '공동부유론'을 내건 이후 규제 강화 등 뚜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많은 분야에서 공동부유론을 반영하는 직간접적인 규제와 압박이 진행되고 있고, 자연스럽게 정책의 엘리트주의적인 색깔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상식과 도덕에 대한 공산당의 판단이 반영된 규제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다.

알리바바, 텐센트, 디디추싱 등 이미 크게 성장한 플랫폼 기업들에 대해 데이터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다른 플랫폼 기업들의 해외 증시 상장 역시 통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해당 기업들의 대주주 겸 경영자를 불러서 압박하는 것은 일상화됐고, 이후 경영진 교체가 이뤄진 경우도 발생했다. 또한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앞다퉈 기부금을 내 놓고 있다. 

사교육 규제도 도입됐다. 지난 7월24일 의무교육 단계에 있는 학생들의 입시 사교육을 전면 금지했는데,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급락했고, 강사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중국에서도 대입 경쟁이 치열하고, 이에 따라 소득 및 자산 격차에 따른 사교육 격차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5월에 시진핑 주석이 이러한 문제 의식을 담아 사교육 산업 규제를 지시한 후 최고 강도의 규제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에 유사한 정책이 도입된 바 있는데, 40년이 지난 중국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게임 산업과 팬클럽 활동에 대한 규제도 도입됐다. 중국 정부는 8월 30일에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시간을 일주일에 3시간, 구체적으로는 금요일과 주말, 그리고 공휴일에 오후 8∼9시 사이 1시간 동안만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8월27일에는 이른바 ‘무질서한 팬덤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해 미성년자가 연예인을 응원하기 위해 돈을 쓰거나 팬클럽 가입자들끼리 온라인에서 싸우는 것 등을 금지했다. 가수의 음반 역시 1인당 1장씩만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방송, 연예계에서 정부 또는 공산당의 정책에 반하는 언행을 한 연예인들, 즉 정치적 입장이 정확하지 않고, 당과 국가와 한마음이 아닌 사람은 방송에 출연할 수 없도록 했다. 방송 관련자들의 정치적 소질 배양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 언론 및 문예관을 교육해 인민의 입장과 정서에 적합한 방송만을 내 보내도록 하는 조치도 도입됐다.

최근 중국이나 홍콩의 유명 연예인 중에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와 공개적으로 친정부적 발언을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온다. 연예인들이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경우야 서구 사회에서도 흔히 발견되지만, 논란이 되면서 갑자기 활동이 중지되는 경우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위험요소가 된 헝다그룹

최근 들어서는 대형 부동산개발업자인 헝다그룹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는 헝다그룹의 파산설이 돌고, 달러화 표시 채권의 이자 지급을 연기했다는 소식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위험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사실은 작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 즉 자산격차 해소 정책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자산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불균형이 인민의 불만을 극대화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시각이다. 이 같은 공부론적 시각은 가상자산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대한 규제를 처벌까지 강화하는 정책의 배경이 되고 있다.

당연히 전세계적으로 찬반 양론이 격렬하다. 한편에서는 소수 엘리트들이 국민들의 생활과 사고 전반에 걸쳐 특정한 방향성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극대화된 소득 및 자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 잘하는 엘리트들이 소수에게 쏠려 있는 부를 다수에게 재배분하는 정책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중국 국내에서도 여론은 갈리는데, 과거의 문화 대혁명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사람들과 공산당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문제는 정답이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미국의 좌파와 우파도 같은 논쟁을 지속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논쟁이 치열하다.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 더 합당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선택이 다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공산당의 선택은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정책 변화는 우리나라 경제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우리 당국도 비슷한 정책을 도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서로 다른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국내에서는 중국에서와 같이 직접적인 기업 규제나 이념적 강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최근 국내에서도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데이터 집중과 대형 플랫폼의 골목 상권 침투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등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도 반독점 규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현상이라 판단된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소득 및 자산가격 격차 확대 등으로 '큰 정부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임 관련 셧다운 규제의 합리적 변경 등을 감안하면 중국의 선택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 역시 분명해 보인다.

중국 헝다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중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中 공산당의 선택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교역, 국내 주요 기업들의 중국 진출 상황을 감안하면 최근 중국 공산당의 정책적 선택이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중요해 보인다. 중국 성장률이 떨어지거나, 중국의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우리 기업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부유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의 정책 변화는 주주로부터 비주주로, 기업으로부터 가계로, 고소득층으로부터 저소득층으로의 자원 배분을 촉진할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증시에,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다소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국 증시나 미국에 상장되어 있는 중국 기술기업, 또한 중국의 규제로 타격을 받게 된 게임업체의 주가는 최근 크게 떨어진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역시 증세(增稅)가 예상되는데, 기업에 대한 증세는 세후 이익으로 평가되는 주주 가치를 줄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선택이 기업가 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중국 증시와 경제의 부진은 우리 증시에 단기적인 대체효과로 나타날 순 있으나, 좀 더 길게 보면 부정적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충격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한쪽 방향으로의 지나친 확신을 갖지 않아야 할 것이란 판단이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소득과 자산 격차의 확대를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장기 성장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소득 또는 거액 자산가 계층의 낮은 소비성향과 저소득 또는 자산이 없는 계층의 높은 소비성향 하에서 진행된 격차의 확대는 만성적인 유효수요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유동성 정책은 자산 가격 거품과 붕괴로 연결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공동부유론'은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결국 중국 공산당의 선택이 초래할 결과는 앞으로 더 장기간에 걸쳐 평가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중국 증시와 경제에 부담이 예상되고, 이에 대한 부담은 우리 증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변화가 미칠 영향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막연한 우려보다 더 필요한 일로 생각된다.

 

● 최석원 부문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부터 지식서비스 부문장으로 일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